이 글은 [월간 신문과 방송] 2015년 2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네이버 레터에 실렸던 글의 일부를 활용했으나 매체 산업의 관점애서 바라보는 네이티브 광고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어 일부를 다시 썼습니다.   




디지털 마케팅, 보다 정확히 말해 마케팅의 디지털화는 모든 광고주의 화두이다. 온오프라인 통합 이벤트, 마이크로사이트, 소셜 미디어, 모바일 어플리케이션, 빅데이터와 웨어러블 기기의 연동 등 다양한 방향으로 진화 중인 디지털 마케팅과 달리 매체 광고 비즈니스의 디지털화는 여전히 배너 광고로 통칭되는 전통적인 노출형 디스플레이 광고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본고는 언론 매체의 기사 콘텐트가 과거와 같이 연속적인 ‘지면’이 아닌 분절적 웹페이지에 흩어져 있는 상황에서 독자들의 콘텐트 소비 행태는 어떻게 달라질 수 밖에 없고, 이는 언론 매체의 광고 비즈니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또한, 이 같은 환경 변화를 극복하고자 등장한 콘텐트 마케팅, 네이티브 광고 등은 어떤 한계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간략히 다뤄보고자 한다.



매체 콘텐트 소비 행태의 불가피한 변화


방송 콘텐트를 볼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방송사가 정해준 편성표를 기준으로 콘텐트를 선택하고 시청한다. 인쇄 매체의 지면을 읽을 때 사람들은 첫 페이지부터 차례로 신문사 (혹은 잡지사)가 제시한 전반적인 구조와 흐름 안에서 개별 기사를 읽고 소비한다. 이처럼 전통적인 매체 소비자들은 매체의 개별적인 콘텐트를 소비한다기보다 매체 자체를 소비하는 경향이 상대적으로 강했다. 콘텐트의 정확성, 신속성, 중립성, 독자 관점과의 합치성 등 저널리즘의 전통적인 가치가 매체 평가의 중요 기준이 되었고, 이는 매체의 판매 부수 혹은 시청률을 좌우하여 광고 매출에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일반화로 매체업의 장벽이 낮아짐에 따라 소규모 디지털 매체가 크게 증가하였고, 포털, 검색 엔진, 소셜 미디어, 입소문 등 독자를 매체로 유입시키는 경로가 다양해짐에 따라 매체의 소비는 개별 콘텐트의 소비로 전환되었다. 즉 이제는 ‘중앙일보를 구독한다’, ‘KBS 뉴스를 봤다’, 혹은 ‘○○신문은 믿을만 하다’는 식보다 ‘네이버에서 기사를 봤다’ 혹은 ‘□□□□ 기사 (특정 기사 제목)를 읽었다’는 식으로 기사 콘텐트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 것이다.


이는 모든 언론 매체로 하여금 기사의 제작과 유통을 다시 생각하게 하고 있다. 과거의 매체 광고 비즈니스가 정확성, 신속성, 신뢰도 등 언론의 전통적인 가치에 더해 각 매체사가 표방하는 주의(主義), 그리고 이에 동조하는 소비자군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던 반면, 현재의 매체 비즈니스는 개별 콘텐트에 대한 주목 확보와 노출이 절대적인 가치가 되었다. 이에 따라 정확성, 중립성보다 속보성과 주목도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많은 매체의 운영이 변화했고, 언론사는 자사의 主義나 브랜드로 독자를 이끄는 것보다도 파편화된 개별 기사가 최대한 많은 독자의 주목을 끌어 노출되게 함으로써 광고 수익을 극대화하고자 한다. 


과거처럼 소비자가 구조적으로 매체의 콘텐트를 대하지 않고, 수많은 다양한 채널과 다양한 콘텍스트에서 콘텐트를 접하게 된 현 상황에서 앞서 말한 매체 비즈니스의 변화는 일견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주목과 노출에 매몰되어 정확성을 경시하는 행태, 타 매체의 기사를 확인이나 허락 없이 인용하거나 전재하는 행태, 이목을 끌만한 기사(특히 연예 분야)를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노출량을 늘리려는 일부의 행태는 전체 저널리즘의 신뢰를 떨어뜨린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한다. 일부 언론사들은 이 같은 현상에 대해 ‘뉴스는 (자사의 뉴스가 아니더라도) 넘쳐나고, 독자들이 직접 정보를 선택, 소비하기 때문에 정보의 선택, 평가는 독자에게 맡기고 매체사는 최대한의 정보를 최단시간에 제공함으로써 알 권리를 충족시켜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변하기도 한다. 이처럼 독자의 선택에 책임을 지우는 방임적 저널리즘은 속보성에 중점을 두고 독자의 이목을 끌어 노출을 극대화하여 시장에서의 생존을 최우선으로 둔다는 점에서 저널리즘의 전통적인 가치와는 다소 궤를 달리하는데, 비즈니스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무조건 옳지 않다고만 비판하기는 어렵다. 모든 매체가 이를 지향할 때 혼자만 뒤처질 경우 도태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규모 디지털 언론사와 달리 조중동이나 지상파 방송 같은 유력 전통 매체가 위 방식을 따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이는 뉴욕타임즈와 같은 더 크고 전통적인 언론사들도 공유하는 고민이다. 독자들이 콘텐트의 품질을 내세운 자사를 떠나 버즈피드, 허핑턴포스트, 쿼츠 등의 매체로 옮겨가는 것을 바라보며 언론의 전통적인 가치와 비즈니스를 위한 가치 중 어느 것을 우선시해야 하는지 고심하고 있는 것이다. 



네이티브 광고: 광고의 미래인가 실착(失錯)인가


비즈니스로서의 매체 진화를 위해 언론사가 처음 시도했던 것은 콘텐트의 유료화이다. 그러나 가뜩이나 유료 콘텐트의 기반이 약한 우리나라에서 유료화 자체의 성공 가능성은 크지 않았고, 대부분의 언론사는 결국 광고에서 답을 찾게 되었다. (콘텐트 제휴, 부분 유료화 등 다양한 콘텐트 판매가 시도되고 있으나 여기에서는 논외로 한다.) 그리고 배너 광고 등 전통적인 노출형 광고의 효과가 급감함에 따라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광고 방식이 바로 ‘네이티브 광고’, 즉 ‘신뢰받는 콘텐트 공급업자로서 언론의 지위를 십분 활용한 마케팅 메시지 제작 유통’이라고 할 수 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기존 광고가 ‘광고’라는 형식에 갇혀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데 한계가 있었다면 네이티브 광고는 광고를 기사처럼 보이도록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얼핏 애드버토리얼을 떠올릴 수 있지만 애드버토리얼의 제작 주체가 브랜드이고, 브랜드가 만든 콘텐트를 매체의 지면에 기사처럼 보이도록 집행하는데 것임에 반해 네이티브 광고는 제작 주체가 언론사이고, 브랜드와 언론사가 브랜드 관련 콘텐트를 실제 기사의 형태로 구성해 게재하는 것이다. 즉, 네이티브 광고는 매체와 브랜드가 함께 쓰는 기사형 광고인 것이다. 


네이티브 광고는 브랜드의 메시지에 언론사의 신뢰감을 실을 수 있다는 장점과, 브랜드와 언론사가 협력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는 이유로, 그리고 광고의 낮은 신뢰도를 매체의 후광으로 보완한다는 면에서 매체와 광고업계 모두를 위한 윈-윈 전략으로 포장되기도 한다. 게다가 뉴욕타임스, 워싱턴 포스트, 포브스, 가디언 등 유수의 언론사들이 이를 실험, 채택하고 있다는 점은 네이티브 광고가 광고의 주류로 부상할 것 같은 인상을 주기도 한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점은 네이티브 광고는 독자가 기사를 바라볼 때 갖는 ‘중립성에 대한 신뢰’를 광고에 활용하는 방식이라는 점이다. 예전에는 뚜렷이 구분되던 저널리즘과 광고의 차이를 모호하게 만드는 것, 즉, 광고비를 받고 게재하는 상업 콘텐트를 마치 중립적인 기사인 것처럼 혼동하도록 하는 방식이라는 점에서 네이티브 광고는 비판과 규제에 직면해 있다. 네이티브 광고의 더 큰 문제는 소비자들이 점차 네이티브 광고 역시 광고 상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이에 따라 네이티브 광고의 신뢰도 역시 일반 광고와 마찬가지로 하락할 것이라는 점이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네이티브 광고의 신뢰도 하락으로 인해 자칫하면 기존 저널리즘의 신뢰마저 함께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이다.


[표] 네이티브 광고의 특징 


(주: 도표의 이미지는 [월간 신문과 방송]에서 만들어주신 이미지를 가져왔습니다.) 



네이티브 광고의 미래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네이티브 광고에 대한 매체의 관심은 높다. 지난해 10월 싱가포르에서는 ‘네이티브 광고 서밋 (Native Ad Summit 2014)’이라는 행사가 열렸는데 포브스, 버즈피드, 매셔블 등 네이티브 광고를 이해하고 적용하려는 수많은 매체사와 대행사가 한자리에 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평가를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네이티브 광고가 앞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는 이견이 없었으나 위에서 언급한 ‘신뢰’와 ‘혼동’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는 아무도 정답이랄만한 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네이티브 광고가 광고의 장기적인 형태로 정착하려면 네이티브 광고만의 가치를 명확히 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가장 시급한 것은 ‘기사와 광고의 구분을 모호하게 하는, 오도하는 콘텐트’라는 우려를 씻는 것이다. 이를 위해 독립적인 중립적 기사와 네이티브 광고를 지금보다 더 쉽게 독자가 구분할 수 있게 하는 방안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비록 광고라 할지라도 기사에 못지않은 깊이와 양질의 콘텐트를 제공하는 것과, 일반 기사에 담지 못하는 네이티브 광고만의 가치를 확립하고 독자와 광고주들에 이를 이해시키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이 같은 차별화된 가치 확립을 위해 네이티브 광고를 보다 광의의 ‘디지털 콘텐트 마케팅’의 일환에서 이해, 설계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콘텐트의 ‘프로세스’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콘텐트 마케팅은 ‘프로세스 관리’로 접근해야


학계에서 내리는 콘텐트 마케팅의 정의는 ‘수익성 있는 소비자 행동을 유발하기 위해 가치 있고 매력적인 콘텐트를 생산 및 배포하는 것, 목표 청중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이해하여 콘텐트와 청중 사이의 연결 고리를 찾는 마케팅 및 비즈니스 프로세스 (Pulizzi, 2013)’로 정리된다. 얼핏 복잡하게 들리지만 결국은 ’고객에게 매력적인 스토리 혹은 가치 있는 정보를 제작 및 배포하는 마케팅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문장호, 2014, “브랜디드 컨텐츠 중심의 마케팅”). 


콘텐트 마케팅 전략의 핵심은 ‘적합한 콘텐트를, 적합한 소비자에게, 적합한 시점에, 적합한 채널을 통해 전달하는 프로세스의 설계’이다. 즉, ‘무엇을 말할 것인가’라는 통상적인 콘텐트 전략은 크리에이티브에 국한되는 것이며, 올바른 콘텐트 마케팅은 기획, 배포, 분석 등의 전 프로세스를 망라해야 하는 것이다. 위 그림은 콘텐트 마케팅 전략에서 고려해야 하는 각 단계를 나타낸다. 첫 단계는 브랜드가 디지털 콘텐트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며 디지털 콘텐트의 역할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를 규정하는 것이다. 이어 브랜드의 목표 소비자들은 디지털 콘텐트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고 경쟁 제품의 콘텐트를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이를 통해 해당 브랜드의 디지털 콘텐트 방향을 세우고 (‘기획’), 그에 맞추어 다양한 형태로 만들며 (‘제작’), 올바른 시장에 전달되어 소비될 수 있게 ‘유통’과 ‘관리’를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콘텐트의 효과를 ‘분석’, 거의 실시간으로 추가 콘텐트 개발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콘텐트 마케팅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광고와 PR, 브랜딩의 차이를 설명하는 우스갯소리가 마케팅 업계에서 회자된 적이 있었는데, 예를 들어 어떤 남성이 술집에 들어가서 매력적인 여성을 발견했을 때 그 여성 주변에서 “나는 매력적”이라고 되풀이해서 말하는 것이 광고, 남성이 자기의 친구를 여성에게 보내 “저 친구 정말 매력적인 친구”라고 말하도록 시키는 것은 PR, 반대로 여성이 남성에게 다가와 “당신이 정말 매력적이라는 소문을 들었다”고 말하게 만드는 것이 브랜딩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콘텐트 마케팅은 이 여성의 취향을 파악한 후 ‘이 남성(주인공)이 매력적인 이유’, ‘당신이 남자친구가 없다면 새로운 기준으로 남자를 찾아라’, ‘○○ 지역에서 주목해야 할 남자 20명’ 등의 다양한 콘텐트를 만들어 그 여성 주변의 다양한 채널에 유통시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만일 네이티브 광고라면 ‘매력적인 남자를 판별하는 성공적인 방법’ 등의 콘텐트를 만들어 이 여성이 신뢰하는 친구를 통해 전달함으로써 이 남성을 다시 바라보도록 어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 친구와 남성이 이 여성으로부터 뺨을 맞지 않으려면 첫째, 이 친구는 남성으로부터 부탁을 받고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히고, 둘째, 이 남성에 대한 이야기가 모두 사실임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관건은 다시 ‘신뢰’


광고주가 브랜드에 대한 콘텐트를 기획할 때 지금까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한 신선한 접근 (예: 브랜디드 콘텐트) 혹은 다양한 이야기 원천의 활용 (예: 스토리텔링)에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최근의 콘텐트 마케팅은 콘텐트가 넘쳐나는 환경 특성상 ‘눈길’과 ‘신뢰’ 확보에 더 큰 중점을 둔다. (소셜과 모바일 등 변화된 매체 환경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지는 ‘유통 관리’ 단계에서의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콘텐트를 실어나르는 매체와 콘텐트 내용의 신뢰성이 중요해지는데, 매체 신뢰성 제고를 위해서는 브랜드가 보유한 플랫폼보다 언론 매체 (PR 혹은 네이티브 광고), 언론 매체보다 소비자의 신망있는 지인 (소셜 콘텐트 혹은 버즈 마케팅) 을 통해 전달하는 방법이 효과적이다. 


콘텐트 내용의 신뢰, 콘텐트 화자(話者)의 신뢰에 영향을 미치는 첫번째 요소는 광고와 기사의 구분 (Disclaimer) 이다. 네이티브 광고가 기사와 뚜렷이 구분되면 될수록 광고로서의 가치가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을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화자의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현재의 네이티브 광고는 대부분 기사의 탈을 쓴 광고에 가까우며, 이는 장기적으로 소비자가 브랜드와 매체에 대해 갖고 있는 신뢰를 갉아먹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버즈피드나 허핑턴포스트가 네이티브 광고의 지평을 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과 (뉴욕타임즈 같은) 전통 언론 매체가 네이티브 광고를 표기하는 방식은 차이가 있다. 거의 모든 매체가 네이티브 광고를 ‘스폰서드 아티클’, ‘페이드 포스트 (Paid Post)’ 등으로 표기함으로써 일반 기사와 구분되도록 하고는 있으나, 기사 자체의 편집에서 얼마나 분명히 구분하는지, 기사의 검색 결과에서 일반 기사와 네이티브 광고를 어떻게 구분하는지, 소셜 미디어를 통한 2차 공유를 얼마나 가능케 하는지 등에 대해 각 매체사들은 꽤 큰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최대한 분명한 구분을 통해 언론사 자체의 신뢰를 지키는 길이 네이티브 광고의 효과를 장기적으로 보존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훨씬 현명한 방안이라는 점은 두말할 나위가 없겠다.


광고와 기사의 구분으로부터 비롯되는 광고 효과의 저하에 대한 우려는 네이티브 광고의 품질 개선을 통해 극복해야 한다. 언론 기사의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행하는 다양한 방법을 네이티브 광고에도 활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언론사가 보유한 방대한 자료, 특히 광고주 브랜드와 경쟁 브랜드에 대한 광범위한 자료를 활용하거나, 다양한 이해관계자에 대한 취재를 통해 브랜드 메시지를 부각시키는 방법, 혹은 매체가 게재 중인 기획 기사와의 연계를 통해 네이티브 광고의 효과를 배가시키는 방법 등 매체사, 기자들만 다룰 수 있는 다양한 방법론을 통해, ‘일반 기사에서는 다루기 어려운 소재를 광고에서는 소개하기 어려운 깊이’로 콘텐트화 함으로써 얼마든지 네이티브 광고와 언론의 신뢰를 동시에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최근 영국 옥스퍼드대학교의 ‘디지털 시대의 저널리즘 원칙’이란 보고서를 번역 출간한 바 있는데, 이 보고서는 저널리즘과 광고의 경계가 모호해짐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언론 자유의 위협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언론 환경의 변화 역시 직시하며 ‘객관주의 저널리즘과 관점주의 저널리즘의 공존’이 가능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객관주의 저널리즘의 가치를 최대한 훼손하지 않으며, 기자/話者의 의견에 기반한 관점주의 콘텐트를 강조함으로써 브랜드와 매체의 가치를 함께 극대화하는 것이야말로 네이티브 광고의 미래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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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carus


이 글은 '광고와 컨텐츠 마케팅'이라는 제목으로 2014. 11. 13 Naver Letter에 게재되었던 글입니다. 블로그 관리를 몇 달 안했더니 이 글도 이제야 올리네요.

 

 

콘텐트 마케팅(Content Marketing)이란?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값는다’는 속담은 콘텐트 마케팅 전략의 핵심을 잘 나타냅니다. 같은 말(브랜디드 메시지)라도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득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이니까요. 속담 이야기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콘텐트 마케팅이라는 주제는 사실 그 뿌리가 꽤나 오래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브랜디드 콘텐트라는 화두는 이미 업계에서는 예전부터 이야기되어 왔고 BMW, 코카콜라 등 유수의 브랜드에서 이미 다양한 기법으로 브랜디드 비디오 등을 제작, 유포한 바 있습니다. 또한, 브랜드에 대한 콘텐트를 만드는 방식으로 스토리텔링이라는 ‘기법’ 역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업계와 학계 모두에서 주목을 받은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과 ‘콘텐트 마케팅’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학계에서 내리는 콘텐트 마케팅의 정의는 ‘수익성 있는 소비자 행동을 유발하기 위해 가치 있고 매력적인 콘텐트를 생산 및 배포하는 것, 목표 청중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이해하여 콘텐트와 청중 사이의 연결 고리를 찾는 마케팅 및 비즈니스 프로세스 (Pulizzi, 2013)’로 정리됩니다. 얼핏 복잡하게 들리지만 결국, ’고객에게 매력적인 스토리 혹은 가치 있는 정보를 제작 및 배포하는 마케팅 활동’이라는 의미입니다. (문장호, 2014, “브랜디드 컨텐츠 중심의 마케팅”). 


이 같은 정의에 따르면 예전의 브랜디드 콘텐트(주: 여기서의 브랜디드 콘텐트는 브랜드를 중심으로 한 다양한 스토리를 TV 광고 등으로부터 독립된 별도의 형식으로 만들어 배포하는 활동을 의미합니다)는 물론 스토리텔링 마케팅 등 브랜드를 알리기 위한 콘텐트 활동은 모두 콘텐트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최근의 트렌드를 읽기 위해서는 이들의 차이점에 초점을 맞추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다양한 콘텐트 마케팅 활동의 차이


광고와 PR, 브랜딩의 차이를 설명하는 우스갯소리가 마케팅 업계에서 회자된 적이 있었죠. 어떤 남자가 술집에 들어가서 매력적인 여자를 발견했을 때 그 여자 주변에서 “나는 매력적”이라고 되풀이해서 말하는 것이 광고, 남자가 자신의 친구를 여자에게 보내 “저 친구 정말 매력적인 친구”라고 말하도록 시키는 것은 PR, 반대로 여자가 남자에게 다가와 “당신이 정말 매력적이라는 소문을 들었다”고 말하게 만드는 것이 브랜딩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콘텐트 마케팅은 무엇일까요? "매력적인 남자를 판별하는 12가지 특성”이라는 콘텐트를 만들어 그 여자에게 알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군요. (물론 이 12가지에는 그 남자가 가진 특징이 포함되어 있어야겠죠. 참고로 이처럼 ‘OOOO하는 몇 가지 방법’ 류의 기사는 버즈피드에서 활용해 인기를 끈 ‘리스티클 (List+Article)’이라는 콘텐트 형태이기도 합니다.) 가벼운 농담이지만 위 이야기는 누가 무엇을 어떻게 어떤 채널을 통해 말하느냐에 따라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이 구분된다는 사실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콘텐트 마케팅 역시 같은 방법으로 구분될 수 있습니다.


[표 1] 콘텐트 마케팅의 차이 

 

(주: 도표 이미지는 네이버 레터에서 만들어주신 것을 가져왔습니다.)



사실 스토리텔링이든 브랜디드 콘텐트든 굉장히 다양한 종류와 기법이 있어 각 개념을 간단히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다만 과거의 초점이 ‘콘텐트가 넘쳐나는 환경에서 사람들의 눈길을 끌기 위한 신선한 접근 (브랜디드 콘텐트) 혹은 다양한 이야기 원천의 활용 (스토리텔링)’에 주로 맞춰져 있었던 데 반해, 최근의 콘텐트 마케팅은 ‘(콘텐트가 넘쳐나는 환경에서 사람들의) 눈길과 신뢰 확보’에 중점을 둡니다. (물론 여기에 소셜과 모바일과 같은 매체 환경의 변화에 어떻게 잘 적응할지에 대한 고민은 항상 포함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콘텐트 마케팅에서는 콘텐트를 실어나르는 매체와 콘텐트 내용의 신뢰성이 중요해집니다. 같은 콘텐트라도 브랜드보다 매체사, 그것도 신망있는 정보원의 입을 통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대표적인 두 가지 방법은 소비자의 친구를 통하거나 (예: 소셜 콘텐트 혹은 버즈 마케팅)과 언론사의 기사로서 전달하는 방법 (예: 브랜드 저널리즘)이 있습니다. 언론사를 통하는 경우 그 내용은 과거 애드버토리얼처럼 기사의 탈을 쓴 광고로서가 아니라 실제 기사의 일부로 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관건은 다시 ‘콘텐트의 신뢰도’


광고가 브랜디드 콘텐트의 대부분을 이루던 시절에도 광고의 사실성 확보를 위한 다양한 규제가 있었지만, 사실 광고 내용에 대한 신뢰는 가장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광고 표현에 있어 과장이 어느정도  이해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표현의 사실성보다는 주목도가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소셜 미디어와 모바일 환경이 대세를 이루며 사용자의 공유가 브랜디드 콘텐트 유통을 위한 (거의) 가장 중요한 채널로 떠오르며 콘텐트의 신뢰도와 사실성이 예전보다 훨씬 중요해졌습니다. 특히 (언론 기사를 포함) 수많은 콘텐트가 ‘쓰레기’로 치부되는 오늘날 ‘믿을만한 콘텐트’의 파급력은 예전보다도 훨씬 강해졌는데, 브랜드 저널리즘은 바로 이러한 환경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브랜드 저널리즘


누구나 콘텐트를 만들고 발행할 수 있게 된 요즘,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 자유롭게 콘텐트를 찾아 소비할 수 있게 된 모바일 환경에서는 브랜드는 물론 유력 언론사마저 사회에 유통되는 콘텐트를 통제할 수 없습니다. 뉴욕타임즈나 포브스와 같은 매체사, 그리고 코카콜라, 제너럴일렉트릭(GE), 레드불 등 브랜드들이 실험 중인 브랜드 저널리즘은 이와 같은 변화에 적응하려는 노력의 산물입니다. 광고를 주요 비즈니스 모델로 하는 언론사 입장에서 콘텐트에 대한 통제력 약화는 곧 비즈니스의 약화를 의미합니다. 이는 광고주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제품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유통, 관리하는 일이 예전보다 어려워졌고 브랜드 마케팅이 더이상 광고주와 매체의 통제 하에 있지 않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언론사는 이런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브랜드 저널리즘이라는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았고, 이는 매체가 ‘콘텐트’와  ‘콘텐트 발행 프로세스’를 브랜드의 필요에 맞추는 비즈니스입니다. 즉, 저널리즘이 가진 기존의 신뢰도와 영향력은 물론 다양한 콘텐트를 발굴하는 프로세스를 브랜드 마케팅에 적용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광고주는 광고주가 주도하던 기존의 콘텐트 발굴, 제작, 유통 방식을 넓히고 언론사의 영향력에 힘입어 콘텐트에 신뢰성을 이식하여 소비자가 콘텐트에 대해 더 많은 흥미와 관심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포브스에서도 ‘BrandVoice’라는 서비스를 내놓을 정도로 브랜드 저널리즘은 언론사 입장에서 중요하고 새로운 시도입니다. 포브스는 4년 전인 2010년에 이미 통상적인 뉴스 생산 프로세스를 개선하기 위해 자사의 뉴스룸 조직을 개편하고 동시에 브랜드 뉴스를 보다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한 브랜드 뉴스룸 조직을 신설했습니다. 뉴욕타임즈는 2014년 발간한 혁신 보고서 (번역본 링크)’를 통해 디지털 뉴스와 콘텐트를 다루는 방식을 혁신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림 1] 포브스(Forbes)의 브랜드보이스 (BrandVoice)


(출처: 포브스, ‘네이티브 광고 서밋 2014’)

 

이같은 사례를 보면 브랜드 저널리즘이 언론사의 영역인 것으로 오해되기도 하지만, 브랜드 저널리즘은 ‘브랜드가 주가 되어 저널리즘의 프로세스를 브랜드 콘텐트 생성 및 관리에 도입’하는 것이지 언론사가 주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즉, 브랜드 저널리즘은 브랜드가 하나의 미디어로서 기능하게 하는 프로세스입니다. 앞서 든 코카콜라와 GE, 레드불 등이 좋은 예입니다 (각사 링크 삽입).



[그림 2] 브랜드 저널리즘의 건설적인 활용예: 코카콜라, GE, 레드불, HSBC Global

 


위 사례들은 모두 브랜드가 미디어가 되어 브랜드에 대한 다양한 콘텐트를 생성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과거의 홈페이지가 기업의 제품, 이념, 연혁 등을 소개하며 TV 광고 등 브랜드의 마케팅 콘텐트를 부수적으로 제공했던 데 반해 위 3곳은 브랜드가 그 자체적으로 매체의 기능을 수행하며 브랜드에 관한 콘텐트를 끊임없이 생산, 제공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예를 들어 코카콜라는 ‘행복(Happiness)’, ‘Make It Possible’ 등 브랜드를 상징하는 가치를 다양한 콘텐트 시리즈와 프로모션을 통해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하며 콜라라는 제품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콜라의 경우 마치 생필품처럼 ‘누구나 아는’ 제품이기 때문에 제품 설명이 별도로 필요하지 않다고 치부할 수 있지만, 레드불과 같이 특정 기능을 알려야 하는 에너지 드링크마저 제품이 아닌 브랜드의 가치를 콘텐트화하고 있음은 주목할만 합니다. 레드불은 제품의 각성 효과와 같은 특장점은 뒷전으로 한 채 블로그형 웹사이트를 통해 자사의 가치를 상징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얼핏 레드불은 음료 브랜드가 아니라 잡지와 같은 매체로 오해될 정도인데요, 제품이 아닌 가치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냄으로써 브랜드에 대한 애착을 공고히 하겠다는 계산입니다. 



GE와 HSBC는 B2B 브랜드라는 면에서 코카콜라, 레드불과는 다른 콘텐트 접근을 보여줍니다. GE는 일반 소비자에게 익숙하지 않을 수 있는 자사의 다양한 산업군을 여러 각도에서 조명한 콘텐트로 만들어 소개하고, HSBC는 자사의 금융상품을 자랑하는 대신 ‘The World’s Local Bank’라는 자사의 강점을 부각하는 다양한 금융업계 뉴스로 채우고 있습니다. 따라서 글로벌 시장에 대한 각국의 이해와 인사이트를 얻고자 하는 금융업계 종사자들로 하여금 HSBC 웹사이트에서 관련 뉴스를 상시 얻을 수 있도록 하고 이를 통해 자사의 역량을 은연중에  과시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로 든 4곳은 디지털 콘텐트를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 제작, 배포하고 있으나 자사의 플랫폼을 매체사(언론사)처럼 운영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디지털 콘텐트를 활용하고자 하는 자사만의 철학과 원칙 위에 콘텐트의 상시 발굴, 확보, 제작, 관리를 할 수 있는 전담 조직을 운영함으로써 브랜드 저널리즘을 실제로 실천하고 있는 셈입니다. 



네이티브 광고, 조급한 업계의 손쉬운 실수가 될 수도


Owned Media 내 콘텐트 마케팅 영역에서 브랜드 저널리즘이라는 새로운 프로세스가 주목받고 있다면 Paid Media에서는 네이티브 광고가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브랜드 저널리즘과 유사하게 네이티브 광고 역시 저널리즘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기존 광고가 ‘광고’라는 형식에 갇혀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데 한계가 있었다면 네이티브 광고는 광고를 기사처럼 보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얼핏 애드버토리얼을 떠올릴 수 있지만 애드버토리얼이 ‘브랜드가 만든 콘텐트를 매체의 지면에 기사처럼 보이도록 집행’하는데 비해 네이티브 광고는 ‘언론사가 브랜드와 연관된 콘텐트를 실제 기사의 형태로 구성해 게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포브스의 브랜드보이스의 주요 역할 중 하나가 바로 네이티브 광고를 브랜드와 함께 기획하고 작성하는 것입니다.


네이티브 광고는 브랜드의 메시지에 언론사의 신뢰감을 실을 수 있다는 장점과, 브랜드와 언론사가 협력하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한다는 이유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소비자들이 점차 네이티브 광고 역시 광고 상품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각함에 따라 네이티브 광고의 신뢰도 역시 하락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더 큰 문제는 (네이티브 광고의 신뢰도 하락으로 인해) 자칫하면 기존 저널리즘의 신뢰마저 동반 추락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그림 3] 네이티브 광고 서밋 2014






지난 10월 싱가포르에서 개최된 ‘네이티브 광고 서밋 (Native Ad Summit 2014)’ 행사에는 네이티브 광고를 이해하고 적용하려는 수많은 매체사와 대행사가 한자리에 모였는데, 포브스, 버즈피드, 매셔블 등 콘텐트 마케팅에 일가견이 있다는 전문가들이 모인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앞으로의 전망에 대해서는 서로 다른 평가를 내놓아 눈길을 끌었습니다. 네이티브 광고가 앞으로 더욱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는 이견이 없었으나 위에서 언급한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다는 데에서는 누구도 선뜻 답을 내놓지 못했는데, 현재의 상황은 네이티브 광고를 위시한 콘텐트 마케팅에 대해 모두 주목은 하고 있으나 무엇을 어떻게 운영해야 좋을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정답을 갖지 못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눈앞의 신뢰도 확보를 위해 브랜드가 타고 있는 매체를 훼손하는 우를 범하지 않으려면 기사와 광고를 현행보다 더 명백히 구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광고성 콘텐트라도 그 내용이 충분히 소비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소비자와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 시급합니다. 



콘텐트 마케팅은 ‘프로세스 관리’로 접근해야


신뢰받는 콘텐트 마케팅을 위해서는 앞서 열거한 성공 사례와 브랜드 저널리즘, 네이티브 광고 등의 현상에서 보듯 디지털 콘텐트의 ‘프로세스’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림 4] 콘텐트 마케팅 설계를 위한 프로세스




콘텐트 마케팅 전략은 ‘적합한 콘텐트를 적합한 소비자에게 적합한 시점에 적합한 채널을 통해 전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무엇을 말할 것인가’라는 통상적인 콘텐트 전략은 크리에이티브에 국한되는 것이며, 올바른 콘텐트 마케팅은 기획, 배포, 분석 등의 전 프로세스를 망라해야 합니다. 위 그림은 콘텐트 마케팅 전략에서 고려해야 하는 각 단계를 나타냅니다. (출처: 에델만 디지털 코리아) 첫 단계는 해당 브랜드가 디지털 콘텐트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며 디지털 콘텐트의 역할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를 규정하는 것입니다. 이어 브랜드의 목표 소비자들은 디지털 콘텐트를 어떻게 활용하고 있고 경쟁 제품의 콘텐트를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지를 파악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해당 브랜드의 디지털 콘텐트 방향을 세우고 (‘기획’), 그에 맞추어 다양한 형태로 만들며 (‘제작’), 올바른 시장에 전달되어 소비될 수 있게 ‘배포’와 ‘운영’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콘텐트의 효과를 ‘분석’, 거의 실시간으로 추가 콘텐트 개발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콘텐트 마케팅의 요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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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carus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마케팅의 영역은 나날이 넓어지고 있다. 마케팅에서의 신기술은 마케터로 하여금 소비자에게 더 효율적으로 다가갈 수 있게 해주는 것으로 여겨지지만, 돌아보면 모든 신기술은 인간의 능력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개발되어 왔다는 사실, 그리고 다양한 디지털 기술 역시 소비자를 위한 기술이라는 점은 종종 간과된다. 예를 들어 인쇄술은 정보의 저장과 공유를, 자동차는 이동을, 인터넷은 정보의 검색과 접근을 쉽게 하는 방향으로 발전했고, 이는 모두 인간의 능력과 권한을 증대시키는 진화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기술을 마케팅에서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메시지를 더 잘 전달할 수 있게 해주는 기술이 아니라 인간의 능력을 증대시키는 기술, 즉 소비자로 하여금 메시지를 더 잘, 새로운 방식으로 이해하고 활용하게 해 주는 측면에 초점을 맞추고 바라보아야 한다.

 

스마트폰과 소셜 미디어와 같은 디지털 매체는 소비자 자신의 목소리를 더 잘 내게 하는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여러 사람에게 전달하고, 사람들을 연결하며, 흩어진 목소리를 결집하고, 이를 통해 대중의 요구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디지털 기술은 촉매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는 재스민 혁명과 같은 정치적인 상황에서는 물론 소비자와 브랜드 사이에서도 동일하게 발견된다. 파편처럼 존재하던 소비자의 의견이 공통의 장에 결집되고 이들이 집단의 목소리로 수렴되는 과정에서 소비자와 브랜드 사이의 관계는 동등하고 개인적인 관계로 치환된다. 집단적으로 수집된 (crowd-sourced) 소비자들의 의견은 그 과정에서 모두의 예상을 벗어나는 집단 의식이 될 수도, 자칫 브랜드가 의도하지 않았던 방향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마케팅은 이 같은 변화를 능동적으로 활용하는 것, 소비자들의 권한과 능력을 인정하되 이로부터 비롯되는 집단 행동을 브랜드에 유리한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다. 이는 단순히 ‘수동적 소비자’로부터 ‘능동적 소비자’로의 변화를 일컫는 것이 아니다. 현재의 능동적 소비자라는 개념이 브랜드에게 소비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프로슈머’에 머물고 있는 데 반해 앞으로는 동료 소비자들에게 브랜드의 입장을 대변하는 ‘지지자’의 개념으로 발전할 것이다. (이는 소셜 미디어의 일상화로 브랜드와 개인이 거의 동등한 영향력을 갖추게 됨으로써 더욱 활발해질 것이며,)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이 소비자에게 브랜드의 권한을 위임하는 임파워먼트 마케팅이다. 

 

브랜드가 주도하는 광고와 마케팅의 영향력이 크게 축소된 지금 소비자의 영향력을 활용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애플의 예를 들면, 세계적으로 애플 마케팅의 상당 부분은 소비자들이 대신 해주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제품 출시 전부터 제품 관련 전망을 쏟아내며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출시 후에는 다양한 제품평을 통해 애플의 마케팅을 대신 해주고 있다. 삼성전자 갤럭시 시리즈 역시 안드로이드 진영의 대표 주자로서 이같은 지지층 구축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중요한 것은 임파워먼트, 즉 브랜드의 권한을 소비자에게 얼마나 이양하느냐이다. 

 

소비자가 브랜드의 이야기를 대신 만들고 전달할 수 있게 하려면 브랜드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열린 공간에서 소비자들과 공유하고,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권한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때로는 브랜드가 원치 않는 콘텐츠가 나타날 수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조차 용인할 수 있는 포용력과 소비자에 대한 믿음이다. 

 

시장 내 브랜드에 대한 메시지는 더이상 통제될 수 없다. 예전과 같은 통제를 시도하기에 시장은 너무 커지고 다변화되었다. 앞으로의 마케팅은 통제 불가능한 콘텐츠의 범람을 인정하고, 브랜드의 우군을 만들어 이들로 하여금 브랜드의 이야기를 대신 말하게 하는 방향으로 진화해야 한다. 그리고 그 시작은 마케팅에 관한 권한을 소비자에 이양하는 소비자 임파워먼트에 있다. 

  
 
(2013년 3월에 AdFest를 준비하면서 써두었던 글인데 까맣게 잊고 있다가 이제야 '공개'로 전환합니다. 게으름을 어찌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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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carus

지난번 글에서 디지털 마케팅의 중요한 점으로 '소비자를 끌어들여 참여시키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같은 '참여'는 사실은 사람들의 심리적 본성이기도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참여를 원한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참여를 통해 얻어내는 커뮤니케이션 효과가 단순 노출 (혹은 관람)일 때보다 훨씬 커진다는 것을 뜻합니다. 
 
아무리 재미없는 드라마를 보더라도 이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씹고 화낼 때 이 드라마에 대해 사람들이 느끼는 관여도는 커집니다. 아무리 재미있는 코미디 쇼라도 혼자 보고 생각만 한다면 이 드라마보다 기억이나 관여도는 떨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경우 드라마와 코미디 중 어느 것을 더 '좋아했느냐'에 대한 답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요.) 이런 것이 참여의 힘인 셈이죠. 실제로 대부분의 마케팅 콘텐트가 호감도 면에서는 그만그만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참여의 힘은 간과할 수 없습니다.
 
 
이 외에도, 디지털 마케팅은 사람의 본성을 만족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교육시키려 하지 말고, 사람을 바꾸려 하지 말고, 
사람들의 본성을 북돋움으로써 만족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이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 사이의 협업을 독려하고 이를 통한 새로운 가치 창출을 지원하거나, 
사람들의 니즈와 소유물, 데이터를 서로 연결해주거나,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이 더 좋은 위치에 설 수 있는 매개체, 혹은 조력자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한낱 마케팅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 아니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마케팅을 그야말로 '한낱 마케팅'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입니다. 마케팅은 기본적으로 브랜드와 사용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자 가치 교환입니다. 브랜드가 사용자에게 무언가를 팔기만 하는 것을 넘어 이제는 사용자를 돕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시대가 되었습니다. 
 
IT 기술의 핵심 가치가 기능 자체가 아니라 사람들을 인간 본성으로 회귀시키는 데 있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술은 생활에 스며들고 기술은 삶을 아름답게 하는 것입니다.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역시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아름답게 헐 것인지, 삶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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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carus

출처: http://webzine.wdu.ac.kr/news_proc/news_contents.jsp?ncd=1045

 

 
제가 보는 디지털 마케팅은 판소리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

제가 판소리에 아는 건 거의 없지만, 판소리에는 창자(唱者), 고수(鼓手), 청자(聽者)가 있지요. 이 3박자가 맞아야 좋은 공연이 되듯 
디지털 마케팅도 창자(브랜드), 고수(에이전시), 청자(소비자)의 3박자가 맞아야 합니다.
 
판소리에서 고수의 역할은 무척 중요합니다. 
고수와 창자는 한 편이고 객석에 앉은 청자 또한 이를 잘 알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고수의 추임새를 창자가 하는 소리의 일부라기보다는 마치 옆에 앉은 다른 청자의 반응처럼 받아들입니다. 어깨를 들썩이게 하는 것도 소리에 빠져들게 하는 감초도 바로 이 추임새입니다. 어디에서 웃어야 할지 생각해야 할지 알게 해주는 것이 고수입니다. 결국 청자는 창자와 고수가 어울려 
만드는 한 판의 연극을 즐겁게 구경하고 참여합니다. 

 
마케팅에서의 
고수는 에이전시일 수도 있지만, 브랜드 앰배서더 등 다른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소비자는 창자(브랜드)와 고수(에이전시)가 한 편이라는 걸 잘 알지만 그럼에도 그들과 '어울려서' 그들이 
만들어내는 한 판의 소리를 즐겁게 보고 참여하려 합니다. 

 
디지털 마케팅은 이처럼 소비자를 우리의 판에서 어우러지게 해야 합니다. 에이전시는 소비자의 편에 서서 소비자를 위한, 소비자를 참여시키는 
엔터테인먼트, 쇼를 만들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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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carus

2014년 새해 첫 포스팅입니다. 새해에는 좀 더 많이 읽자는 다짐의 일환으로 아티클 더미를 아래에 적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모두 링크드인의 'Big Ideas 2014' 시리즈의 일부입니다.) 이 중 제가 흥미를 느낀, 제 일과도 연결될만한 것들을 아래에 추려봤는데도 24개나 되네요.

 

  

  
  
 
 
그리고 이건 위 시리즈와는 별도의 아티클이지만, 읽어볼만 합니다. (이 글의 주장 역시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므로 얼마든지 틀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틀릴거라고 예단하는 것보다, 맞을지 틀릴지를 가늠해보며 우리도 스스로 생각해 보게 하는 재미가 있지요.)

 

  

마지막으로, 소셜 마케팅 measurement에 대해 생각해볼만한 글을 우연히 발견해서 적습니다. 여러분도 읽어보시라는 것보다, 제가 나중에 잊지 않기 위해 붙여놓는 글이니, 읽는 건 여러분의 자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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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carus

열흘에 한 편 씩 올리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한 달이나 건너뛰었네요. 이번 편은 책의 임파워먼트에 관한 내용입니다. '책'이라고 쓰긴 했지만 사실은 책을 필두로 한 인쇄매체와 사람들의 읽는 습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분량이 길어 두 번에 나누어 올립니다. ('읽는 행위의 지평을 넓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2편에 나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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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책'이라는 매체가 Empowerment라는 개념과 결합될 경우 어떤 변화와 기회가 만들어지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자연히 종이책과 eBook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텐데, 그 전에 잠깐 책이라는 매체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까요?

 

책(冊)은 본디 대나무 조각을 엮은 모습을 상형화한 것입니다. 종이가 없던 시절, 대나무의 마디를 잘라내고 마디 사이를 세로로 쪼개 불을 쬐어 기름을 빼고 껍질을 벗겨낸 뒤 그 위에 글자를 적었습니다. 위아래는 20~25cm정도의 길이지만 폭이 고작 몇 cm에 불과했기 때문에 한 줄 씩 글자를 쓸 수 있었습니다. 이를 '죽간(竹簡)'이라고 일컬었는데 몇 장의 죽간을 가죽이나 비단 끈으로 엮은 것을 표현한 것이 '죽책(竹冊)' 또는 '책(冊)'이라는 한자가 되었습니다. 중국의 고전이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쓰여진 데는 한자가 뜻글자라는 점 외에도 죽간이라는 기록 매체의 특성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하죠. (임형석, '중국 간독시대, 물질과 사상이 만나다')

 


 

진시황이 분서갱유로 태운 책들 역시 종이책이 아니라 죽간들입니다. 중국에서 책이 죽간이 아닌 종이에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서기 105년 채륜이 종이를 만들었을 때 부터입니다. (이집트의 파피루스는 기원전 2세기까지도 거슬러 올라갑니다만.) 우리나라에서 종이책이 자리를 잡은지 천 년이 흐른 뒤에도 죽간은 종이와 달리 특별한 권위를 가진 것으로 인식되었나 봅니다. 조선시대에 와서도 왕세손이나 왕세자비를 정할 때 책봉문을 죽간에 새겨 내렸다는 걸 보면 말이죠.

 

그러니 어쩌면 옛날에 종이책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어찌 글자를 종이 따위에 써서 보관한다는 말인가!" "성현의 말씀을 보존하기에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책은 역시 대나무를 넘겨가며 읽는 것이 제맛이거늘.." 하며 탄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도 그랬듯 eBook이 등장한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은 '책'이라는 기존 매체가 주는 향수가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합니다. 책장을 넘기는 '아날로그적인' 느낌부터 종이를 접어 북마크를 해두는 느낌, 책을 읽어감에 따라 자라는 고운 손때와 책장에 꽂아두었을 때 느껴지는 뿌듯함(?), 넓은 서점을 돌아다니다 좋은 책을 우연히 발견하는 느낌, 그리고 책을 매개로 만들어지는 갖가지 인연과 사연까지, 책이라는 매체에 얽힌 사람들의 애착과 느낌은 다양합니다. 아무리 좋은 eBook이 나와도 종이책이 주는 인간적인 느낌까지 전달할 수는 없을거라고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eBook이 아무리 책장을 넘기는 이미지를 구현하고 밑줄을 치고 메모를 할 수 있게 해도 종이가 주는 느낌은 절대 재현할 수 없다고 말이죠. 


책 시장의 규모는 제한되어 있으니 eBook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책이 대중화 될수록 종이책의 시장은 어느 정도 축소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eBook이 책 읽는 문화를 바꿔버릴까 아쉬워하겠죠.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종이신문의 시장이 쪼그라든 것처럼 종이책 역시 비슷한 길을 걸을까 걱정할 겁니다. 하지만 (종이책이 아닌) 책 시장 자체가 eBook 때문에 축소될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책을 비롯한 인쇄 매체의 시장은 그 형태가 디지털로 옮겨갈 뿐 '읽을거리의 시장' 자체는 eBook이 아니라 그 어떤 것이 나와도 영향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인쇄 매체의 시장을 축소시키는 것은 eBook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 습관이죠. eBook을 비롯, 스마트폰, 인터넷, 각종 디지털 기기는 기껏해야 시장 축소의 속도를 빠르게 하는 촉매 정도의 역할을 할 뿐입니다. 


종이책과 종이신문 시장은 (적어도 우리나라와 미국에서는) 예전부터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종이신문이야 말할 것도 없고 종이책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출판 시장은 도리어 커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 눈에 수치로 나타나는 국내 출판 시장의 상당 부분은 참고서와 잡지, 그리고 얼마 되지 않는 베스트셀러가 차지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게다가 베스트셀러의 다양성은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지요. 예컨대 베스트셀러로 뽑히는 책의 장르 다양성이 줄고 있다는 점 - 말하자면 '성공학' 분야의 도서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 소수의 베스트셀러가 전체 출판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 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추세가 나타내는 현실은, 우리는 이제 '진지한' 읽을거리를 찾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당장의 필요를 위한 참고서, 성공서를 읽고, 어떤 책이 좋을지를 고민하기보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베스트셀러를 찾으며, 스포츠 신문, 인터넷, 텔레비전 등 피로하지 않게 소비할만한 읽을거리와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는 볼거리를 찾습니다. 뭔가가 궁금할 때 사람들은 과거의 배움과 지식에서 답을 구하기보다 검색창에 질문을 쳐넣습니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찾아낸 즉각적이고 표면적인 지식을 내 것으로 소화하려 하기보다 '모르면 또 검색하지' 라고 생각하며 흘려버립니다.) 

 

이 같은 추세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책 읽지 않는 문화, 배우지 않는 문화,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문화, 읽지 않아도 큰 지장 없는 문화가 생겨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은 책에서 얻는 지식이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고 구닥다리 옛이야기처럼 치부되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존경받지 않는 (존경받는 어른들이 드물기도 하지만)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자연스레 잘 숙성된 글로 표현되는 지식과 콘텐츠를 찾는 사람을 줄어들게 합니다. 니즈가 줄어들면 자연히 양질의 콘텐츠도 줄어들 수 밖에 없죠. 이는 결과적으로 교육의 질을 떨어뜨림으로써 또다시 글과 지식의 질을 낮추는 악순환을 낳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쇄매체 시장에서 종이책과 신문이 처한 위기의 본질입니다. 디지털, 모바일, 인터넷은 이같은 현상을 보여줌과 동시에 가속화 할 뿐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문제는 사실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더 크게 나타나는 문제라는 점입니다. 일본이나 중국은 잘 모르겠지만 서유럽의 경우 위에서 말한 악순환은 미국만큼 발현되지 않는 듯 합니다. 섣부른 일반화일 수 있지만, 유럽만 해도 신문을 열심히 읽는 문화가 아직 남아있는 편입니다. 독자들은 신문을 통해 사회적인 이슈를 파악하고 지식을 습득하여 이를 스스로의 삶에 사용하는, 즉 '진지한 읽기를 통해 꾸준히 정보를 소화하는 프로세스'가 남아있습니다. 

 

이는 유럽의 디지털 환경이 뒤쳐졌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읽는 습관'과 '활자의 권위'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유럽에서도 황색 언론이 발흥했지만 신문사와 신문기자는 신문의 권위와 신문 읽는 문화의 진지함, 매체의 신뢰를 지키고자 노력하고, 신문사는 권력과 거대 자본으로부터 소유를 독립시킴으로써 중립을 지키고자 노력합니다. 그리고 사회는 기자들(을 포함한 노동자들)의 고용을 안정시키는 시스템을 제공함으로써 이 같은 선순환 구조를 지원하지요. 덕분에 기자들은 말초적 기사로 독자들을 현혹할 필요가 적어지고, 안심하고 자신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 노력할 수 있으며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데 주력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신문을 '소식지'로서만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정보와 지식, 시각의 보급처로 여기게 되고, 신문은 중요한 사회적 교육 수단으로 기능하게 됩니다.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샜는데 본론으로 다시 돌아오자면,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나타나는 인쇄 매체의 위기는 eBook이나 디지털 기기 같은 기계적 요인이 아니라, 사람들의 읽는 습관, 인쇄 매체가 사회 교육에서 맡고 있는 역할, 그리고 제대로 된 언론의 부재와 같은 사회적 요인에 더 크게 기인합니다. 디지털 기기는 사회적인 흐름을 가속화할 뿐입니다. 사람들이 가벼운 읽을거리를 찾는다면 디지털 기기와 콘텐츠는 가벼운 읽을거리를 더 쉽게 접하게 해줄 것이고, 사람들이 진지한 읽을거리를 찾는다면 eBook과 태블릿 등은 진지한 콘텐츠를 쏟아낼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애플이 최근 소개한 iBooks Author 프로그램디지털 교과서 사업은 재미있는 함의를 갖습니다. 이 두 가지 이니셔티브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키워드는 두말할 것도 없이 '임파워먼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편화되어 있던 개인 저자들(author)을 임파워하는 것이 iBooks Author라면 디지털 교과서는 교사와 학생을 임파워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여기에 추가해야 할 중요 수혜자는 바로 일반 독자, 즉 일반 대중입니다. 바로 모든 사람의 저자화(著者化)와 디지털 교육 콘텐츠의 대중화를 통해서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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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carus

임파워먼트의 네번째 주제는 디바이스, 그 중에서도 스마트폰입니다. 사용자에게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임파워먼트'의 대상은 인터넷 서비스와 같은 소프트웨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스마트폰 같은 하드웨어의 기획과 설계, 디자인은 물론, 디바이스의 활용하는 방법과 디바이스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도 '임파워먼트'라는 개념을 통하여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의 제목은 (스마트폰의) "enabling 'by' empowerment"라고 했습니다. 영어를 쓰고 싶어서가 아니라, 마땅한 우리말을 찾을 수가 없더군요. 짧은 우리말 실력이지만, "enabling 'by' empowerment"를  굳이 번역해 보자면 '소비자에게 기회와 권한을 줌으로써 그들의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스마트폰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사용자에게 더 많은 권한을 줄 때 스마트폰의 역할과 함의가 확장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스마트폰이든 피처폰이든 '전화기(폰)'의 일차 목적은 '연결'입니다. (그 외의 목적으로 전화기를 들고 다닌다면 그건 휴대용 컴퓨터이거나 PDA이거나 내비게이션이라고 보는게 맞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연결’은 대화 상대방과의 연결 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의 연결, 정보와의 연결 등 다양한 모습을 갖지만, 결국은 ‘끊어지지 않고 연결되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어로 하면 'stay connected' 정도가 되겠네요.


사람들 사이를 '연결'하는 것은 전화 통화와 메시징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통화는 KT/SKT 같은 통신 서비스를 통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VoIP 서비스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일단 '통화'에 대해서는 미루어두고 지금은  메시징을 통한 연결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SMS는 휴대전화의 가장 오래된 기능 중 하나입니다. 통신사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문자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죠. (예를 들어 하루에 수백통의 문자를 주고받는 중고생들을 생각해 보세요.) 스마트폰이 등장한 후 카카오톡 (이하 '카톡') 같은 SMS 앱이 등장했을 때 사실 저는 그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습니다. 문자 메시지는 이미 범용적으로 제공되는 서비스라는 점, 앱을 별도로 내려받아 앱을 쓰는 사람들끼리만 메시징이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광고 외의 수익화 방안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장점이라고는 다른 나라에 사는 사용자들끼리 자유롭게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 정도..? 제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죠. ^^; 
카톡의 성공의 근간을 살펴보면 'Enabling by Empowerment' 개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카톡의 성공은 어떤 사람에게는 기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카톡의 성공을 들여다볼 때에는 카톡 이전에 이미 국내외 여러 메시징 서비스가 있었으나 그 어느 것도 카톡만큼 성공하지 못했음과, 카톡이 기존 문자 메시지 서비스, 메신저 서비스와 차별화된 효용성을 제공했음에 먼저 주목해야 합니다. 


카톡 이전에 이미 WhatsApp 이라는 어플리케이션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있고요.) 기능은 초기의 카톡과 동일했으며, 유료(그래봤자 2불 미만)라는 점이 약점이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 어플리케이션의 가치는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기 비싼 환경에 있는 사람들 간에 자유로운 문자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했다는 점이었죠. 건당 수 백 원의 비싼 요금을 물지 않고도 전세계 어느 곳에 있는 지인과도 자유롭게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WhatsApp의 인터페이스는 카톡과 거의 유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hatsApp은 우리나라에서는 카톡이 되지 못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카톡과 달리 유료 어플리케이션이었다는 점과 (초기에는) 그룹 채팅을 지원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그룹 채팅은 카톡을 단순한 문자 메시지 어플리케이션을 넘어 채팅 혹은 메신저 어플리케이션으로 자리잡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국내 소비자들이 익숙해하고 좋아하는 기능을 잘 잡아낸 카톡의 주요 차별점이었다고 평가되죠. 사용자들로 하여금 더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제공한 셈입니다. 카톡이 그룹 채팅 기능이 우리나라 사용자들에게 중요하게 평가된다는 시장 조사를 미리 했었는지 안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카톡은 그룹 채팅을 비롯한 몇몇 새로운 기능을 출시했고 이걸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는 사용자들에게 맡겼습니다.


만일, 그룹 채팅을 포함한 채팅 혹은 메신저 기능이 카톡의 주요 성공 요인이었다고만 평가할 경우 기존의 메신저 프로그램들은 왜 카톡 같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네이트온, MSN 메신저 등 내로라하는 메신저 서비스들 역시 스마트폰용 어플리케이션을 내놓았는데, 인터넷에서 구축된 사람들끼리의 네트워크를 모바일 환경에서도 접근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이는 일견 올바른 접근인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서비스들은 각각 자기 서비스 사용자들끼리만 이야기할 수 있게 했다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는데, 이는 휴대전화의 사용환경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고 데스크탑 사용 환경을 그대로 휴대전화에 적용함으로써 저지른 실수였습니다.


휴대전화 사용자들은 각각 인터넷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력하고 Relevant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습니다. 바로 ‘전화번호부’입니다. 기존 메신저 프로그램의 사용자들은 컴퓨터가 켜져 있을 때에 키보드를 이용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대상일 뿐,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가장 자연스럽고 훨씬 가까운' 네트워크는 전화기의 전화번호부 안에 저장되어 있는 지인들이고, 메신저의 친구 목록은 이와 절대 경쟁할 수 없음을 간과한 것이죠. 전화번호부에 기반한 카톡이나 WhatsApp과 달리 메신저들은 MSN 사용자들끼리, 네이트 사용자들끼리만 쓸 수 있는 폐쇄형 메신저를 고집하다가 결국 경쟁에서 밀려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카톡(을 비롯한 모바일 메시징 서비스들)의 성공 요인은 ‘기존의 전화번호부와 연동’하여, ‘무료’로, 일대일 혹은 단체 ‘채팅’을 가능하게 한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사실 스마트폰 사용자들로 하여금 기존 문자 메시지보다 좀 더 ‘자유로운’ 메시지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 것 이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 즉 ‘Enabling by Empowerment’의 사례가 되는 것이죠.


전화기의 ‘연결’이라는 특성에 기반한 Enable/Empowerment가 카톡에 의해 일부 구현됐다면, 이후에는 어떤 종류의 ‘연결’이 전화의 새로운 킬러앱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무엇을 ‘연결’함으로써 사람들을 Empower하고 Enable할 수 있을까요? 


(1) 사람들의 '관심사'를 연결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전화기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게 유지하는 도구’라는 점을 되새겨야 합니다. 전화를 받고 걸 수 있게 네트워크 내에 유지시키는 것이 일차적 기능이라면, 이 같은 ‘연결 유지 상태’를 활용하는 다양한 방법이 나타날 수도 있을테니까요. 


전화번호부에 있는 나의 지인들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등록된 친구들보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전부 그런건 아니지만 서로에 대한 접근성이 더 뛰어난것 만큼은 분명하죠.) 다시 말해 이들은 나에게 어느 정도는 관심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 외 ‘다른 용도’로 이 네트워크가 활용될 수도 있는데, 예를 들면 네이버의 지식인 서비스 혹은 Quora, (지금은 사라진) Aardvark 같은 Q&A 서비스를 지인들에 국한된 모바일 Q&A 서비스로 만드는 것도 가능합니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떠올려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검색을 하거나 주변의 알만한 지인에게 물어보게 마련입니다. 저녁 회식 장소를 정하기 위해 맛집을 찾거나, 아이가 아프거나, 볼만한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할 때 우리는 인터넷을 뒤지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 전에 주변에 있는 가까운 사람 (주: 여기서의 '가까운 사람'은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금방 연락하기 좋은 사람, 즉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사람을 포함합니다) 에게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문가가 아니라도 말이죠. 이처럼 일상 속에서 궁금한 점이 생겼다거나 혹은 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을 때 지인들에게 단체 메시지를 보내고 그들의 답을 기다리는 서비스가 구현될 수도 있겠네요. 채택된 답변을 제공한 지인에게는 소정의 보상을 제공하고, 이렇게 쌓여지는 정보는 ‘나’를 위한 유용한 데이터베이스가 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사람들의 지식들이 모인 소중한 자산이 된다. 사람들의 답변은 문자 메시지 같은 일방향적인 것이 될 수도, 혹은 사람들의 답변을 한 자리에 모아 작은 채팅이나 포럼처럼 만들어질 수도 있으며, 맛집, 육아, 영화 등 내가 관심 있어 하는 주제는 지인들의 답변과 맞물려 ‘어떤 사람이 어떤 주제에 관련 있는지’를 자동 분류하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육아에 관한 질문에 답하는 지인들은 자동으로 육아 카테고리에 등록이 되는 식이겠죠.) 


(2) '주변 사람'들을 연결


위에서 상상한 서비스가 ‘지인들’ 간의 네트워크에 기반한 Q&A라면,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그들이 있는 공통의 위치를 기반으로 한 Q&A 서비스를 만드는 것 역시 가능할 것입니다. 익숙치 않은 동네에서 어떤 장소를 찾거나 추천을 부탁할 때, 같은 지역에 있는 사람들, 혹은 그 지역을 잘 안다고 등록해 둔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메시지를 보내 질문할 수 있겠죠. 이렇게 모아진 답변은 점진적으로 해당 지역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될 것이며, 지역 기반 소셜 네트워킹 (예: 모르는 사람들끼리라도 ‘지역’이라는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어울리도록 하는) 은 물론, 해당 지역의 새로운 (지식 기반)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토대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위에서 예를 든 두 가지의 서비스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닌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조사 없이 그냥 즉석에서 만들어낸 사례들입니다.)  하지만 어떤 형태가 됐든 제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모바일 서비스든 모바일 디바이스든 '사용자에게 권한과 자유를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관심을 연결함으로써 사용자들에게 새로운 네트워크를 제공하고 이로 인해 사람들의 능력을 배가시키는 것, 혹은 주변에 위치한 사람들을 연결함으로써 즉각적인 지역 정보를 얻어내고 이로 인해 사람들의 능력을 늘리는 것. 이런 종류의 'Enabling by Empowerment'가 많은 것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점입니다.

통화 역시 마찬가지겠죠. 음성통화든 영상통화든 지금은 모두 어쩌면 '통화는 일대일 통화'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통화'라는 행위의 어떤 점을 다시 들여다볼 때 '사람들에게 권한을 제공하고, 자유도를 높여 새로운 기회가 창출'될 수 있을까요? 그룹 통화(컨퍼런스 콜) 외 어떤 것을 새로운 가치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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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루폰이든 티켓몬스터든 혹은 위메프든 소셜커머스가 공동 구매에 그치고 있다는 비아냥을 벗어나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용자 개인의 역할을 확장해야 합니다. 사용자의 역할 확장이란 구매자, 입소문 전파자, 혹은 구매 유발자의 역할 이상으로 권한을 확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재의 (이른바) 소셜커머스 서비스들은 모두 개인 구매자들을 모으는 것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개인들로 하여금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혹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든) 매력적인 할인 혜택에 대해 소문을 퍼뜨리게 하여 목표했던 참여자/구매자 수에 도달하게  함으로써 할인을 제공하는 업체/매장에게는 최소한의 마케팅 효과를 보장하고 개인들에게는 할인 혜택을 제공하며 소셜커머스 업체에게는 수수료 수익을 가져다주는, 말하자면 일석삼조의 프로세스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세 가지 장점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이므로 이 중 하나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소셜커머스의 비즈니스 프로세스 전체가 흔들리게 됩니다. 문제는 이 세 가지 장점 중 '마케팅 효과'가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소셜커머스가 등장했던 초기에는 '소셜'을 활용한 듯한 서비스의 특징과 파격적인 할인율에 힘입어 업체/매장을 알리는 기제가 어느정도 작동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셜커머스라는 시스템이 일상화돼버린 후, 유사한 서비스가 우후죽순 등장한 후에는 신선함은 거의 없어졌고, 소셜커머스의 할인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많은 업체들은 프로그램을 통해 구매를 한 소비자들이 일회성 소비에 그칠 뿐 반복 방문 혹은 충성도 제고에는 효과가 없었다고 불만을 터뜨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일부 몰지각(?)한 매장/업체들이 소비자에게 잘못을  저지른 일도 많았습니다만.


이제는 소셜커머스의 관건은 누가 더 매력적인 제품/매장을 찾아내서 파격적인 할인을 제공하는지가 돼버렸습니다. 이전투구의 시기로 접어든 셈입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마케팅 효과가 담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현재의 모습이 계속될 경우 소셜커머스는 '쿠폰 마켓'으로밖에는 진화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같은 상황의 해결책은 참여하는 업체들의 마케팅 효과를 올려주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기존의 소셜머커스 프로세스는 마케팅 효과를 향상시키는 것에 한계가 있습니다. 기존 프로세스는 소비자를 구매자/입소문 전파자로만 간주하기 때문에 무슨 방법을 취하든 결국 소비자가 해당 딜을 보게 하고, 관심있는 소비자를 모아서 참여하게 하는 것에 그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소셜커머스에서의 임파워먼트는 이와 같은 소비자의 역할을 파격적으로 확대함으로써 마케팅 효과를 제고하는 것에 주안점을 둡니다. 소셜커머스는 개인 소비자들을 모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이 주도권을 가질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현행과 같이 (매력적인 딜을) 구경하고, 소문 내고, 할인을 받게 하는 것 외에 또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힘과 기회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사룔자에게 좀 더 많은 권한을 주는 것 만으로도 기존의 마케팅 효과는 크게 향상될 수 있습니다. '소비자의 관여와 인터랙션이 높아질 때 마케팅 효과도 높아진다'는 것은 디지털 마케팅의 가장 핵심적인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기회를 부여 받았을 때 스스로 새로운 기회를 찾아냅니다. 싸이월드가 그랬고 이베이, 페이스북, 트위터 등 성공한 서비스의 대부분은 서비스 기획자가 생각했던 효용 이상의 무언가를 사용자들이 스스로 찾아내고 실행함으로써 폭발적인 성장의 계기를 맞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소셜커머스에서의 임파워먼트는 파편화된 소비자들이 모여 공동구매를 하도록 하는 것을 뛰어넘어 판매는 물론 거래를 촉진하는 것까지 사용자에게 맡겨버릴 때 진정한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쿠폰이든 할인이든 주어진 과실을 따먹는 것을 넘어 과실을 직접 만들어내고 더 넓은 기회를 사용자들이 직접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 사람들이 소비자를 넘어 진정한 '사용자'가 될 수 있게 해 줄 때가 소셜커머스에서의 Enabling "by" Empowering 이 적용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이같은 임파워먼트는 (LBS에서의 임파워먼트와 마찬가지로) 사용자들이 스스로 재미와 의미를 만들어내게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우리는 흔히 '소비자가 아니라 사용자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사용자는 적극적인/능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내는 참여자입니다. 서비스 기획자가 이들을 (능동적이든 적극적이든) 소비자로 간주하면 이들은 소비의 틀에서 빠져나오려 하지도 않고 당신을 위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해 주려 하지도 않습니다. 사용자들은 서비스의 ‘의미’를 인식하는 순간 스스로 강해지고, 스스로의 활동 공간을 넓히며, 그 과정에서 재미와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고, 궁극적으로 당신(서비스 운영자)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주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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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퀘어, 고왈라, 혹은 국내의 아임인 등 현존하는 모든 위치기반 소셜 서비스(Location-based Service, LBS)의 한계는 그것이 주는 ‘재미’에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페이스북 플레이스나 옐프 등 위치 외에 부가적인 가치가 있는 경우 (예를 들어 페이스북은 소셜 네트워킹에, 옐프는 POI-Point of Interest 소개에 더 방점이 찍혀있는 경우죠) 는 이러한 한계에서 약간 비껴나 있지만 순수하게 장소 체크인 활동으로부터 시작한 서비스의 경우 ‘지속적으로 사용해야 할 효용성'이 부족합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소셜 네트워크는 지인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말하고 싶은, 혹은 남들에게 주목받고 싶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에 직접 닿아 있습니다. 따라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커뮤니케이션형 소셜 서비스들은 쓰다가 중단했을 때 어느 정도의 상실감을 느끼게 마련이죠. 이는 심심하다는 것 이상의 중요한 상실감입니다.  


하지만 LBS는 그렇지 못합니다. 내가 어느 곳에 있었다는 것, 어디에 누가 있다는 것, 어디를 가면 주로 누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와 거리가 멉니다. 마치 매일 일기를 쓰면 삶이 풍요로와질 수는 있지만, 쓰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에는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혹은 열심히 사용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그만두더라도 상실감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 LBS는 ‘하면 좋지만 안해도 그만인’ 서비스인 셈이죠. 


Brightkite를 필두로 LBS라는 서비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그리고 수많은 매체들은 독특한 ‘게임 요소’를 언급하며 새로운 서비스의 출현에 관심을 표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간과한 것은 앞서 말한 ‘하면 좋지만 안해도 그만’이라는 서비스의 본질적 성격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그 어떤 게임도 영원히 재미있지는 않다’는 사실 역시 간과되었습니다. 


LBS가 등장한지 고작 2년이 지난 지금, 게임 요소에 의존했던 LBS는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Mayor 시스템’을 심화시켜도, 주어지는 ‘뱃지’의 수를 늘리고 등급을 나누어도, 혹은 뱃지를 바탕으로 한 마스터 구조를 만든다 해도 (주: 말하자면 커피숍에 자주 가는 사람을 바리스타, 공항에 자주가는 사람을 젯세터라고 이름을 붙여 사용자들의 카테고리를 나누는 식), 그 게임 요소의 뿌리는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있었던 ‘뱃지’ 시스템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에 흥미를 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설사 이런 새로운 시도들이 신선한 재미를 준다 해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지루해져 버리는 구조임은 부인할 수 없죠. 결국 뱃지, Mayor 등의 체크인 횟수를 바탕으로 한 이른바 '게임 요소'는 그 한계가 명확하며, 서비스의 성장을 위한 곁가지 요소가 될 수는 있어도 서비스를 장기적으로 이끌어갈 핵심 성장 요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서비스의 장기 성장 동인, 그리고 사용자로 하여금 서비스를 반복 사용하도록 하는 것은 결국은 ‘효용성’입니다. 쓰다가 안썼을 때 상실감을 주는 본질적인 효용성. LBS가 100% 게임을 지향하는 것이 아닌바에야 재미는 부차적인 요소일 뿐입니다. (100% 게임이라 해도 재미를 지속시키고 제품 수명을 늘리기 위해서는 인간의 동기 – ‘이 게임은 ***한 장점이 있기 때문에 해야 돼’라고 느끼게 만드는 – 가 고려되거나, 혹은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중독성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효용성'이란 바로 ‘나에게 도움되는 무엇’을 의미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형태가 ‘경제적 이익’임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아쉽게도 기존의 Mayor나 뱃지 시스템은 이 같은 ‘도움’을 주는 데는 무척 취약합니다. 물론 공짜 커피를 얻어마시는 등의 잠깐의 우월감을 느낄 수는 있지만, 누구도 공짜 커피를 위해 꾸준히 체크인을 할 수는 없으며, 어떤 가게도 Mayor에게 무한정 공짜 커피를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이럴바에야 소셜커머스에서 제공하는 쿠폰이 서비스의 효용성을 좀 더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문제는 쿠폰이라는 도구 자체가 이제는 너무 일상화 되어있는데다가 (서울 시내 거리에서 뿌려지는 수많은 헬스클럽 할인 전단지를 생각해 보면 아실 수 있습니다), 쿠폰의 효용성이 대체로 소비자의 심리적인 Threshold를 극복할만큼 대단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소비자의 심리적 문턱을 넘지 못하는 몇 가지 대표적인 이유 - 서비스 제공자가 만든 쿠폰은 사용자가 원하는 장소 혹은 관심 있는 분야의 쿠폰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간혹 사용자와 들어맞는 쿠폰이라고 해도 사용자가 원하는 시간대와 안맞을 수도 있고, 할인폭이 작아서 흥미를 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소셜커머스는 ‘반값’이라는 큰 할인폭으로 소비자의 시선을 끌고, 소비자의 평소 관심(예: 맛집, 건강, 여행 등)을 파악한 후 그에 맞는 쿠폰을 보내주기도 하며, 소비자가 있는 장소 주변에 한정된, 혹은 지금 당장 사용해야 하는 할인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모두 쿠폰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상식적인 접근들이죠. 


그러나 어떤 시도가 됐든 이들은 모두 쿠폰의 일방향적 성격에 기반한 것들입니다. 사용자가 원하는 가게에서, 원하는 시간대에, 만족스러울 정도의 할인을 받게 하기 위해 소셜커머스 업체들은 최대한으로 맞춰진 (customized) 쿠폰을 제공하려고 노력하지만, 이는 당연히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쯤에서 두 갈래로 써내려온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첫째, 효용성이 낮다는 LBS의 단점은 사용자에게 좀 더 직접적인 효용성 (예: 쿠폰) 을 제공하는 것으로 돌파를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쿠폰의 근원적인 단점은 서비스 제공자가 사용자의 필요를 짐작하여 만들고, 사용자에게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 두 가지 단점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편이 바로 사용자 임파워먼트입니다. 


임파워먼트는 사용자들이 스스로 재미와 의미를 만들어내게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LBS 서비스 제공자는 지도와 지도 위 소셜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사용자들이 자유롭게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이를 통하여 효용성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Mayorship이 됐든 뱃지가 됐든, 아니면 또다른 보상이든 그것을 가장 잘, 적시에 알 수 있는 것은 기획자가 아닌 소비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보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한 LBS의 진화 방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부터 열까지 소비자에게 맡긴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용자가 원할 만한 가치를 미리 예측하고 설계하며 방향을 제시하되, 사용자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가치에 맞추어 재빠르게 변신하는 기획, 이를 가능케 하는 유연한 구조가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 스티브잡스가 ‘소비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기 전까지는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고 했지만, 세상의 모든 마케터가 잡스가 아닌 바에야 소비자의 직관과 집단 감성에 의존하는 편이 오히려 덜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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