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가 1/4인치짜리 드릴을 사는 이유는 1/4인치짜리 드릴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1/4인치짜리 구멍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People don’t want a quarter-inch drill, they want a quarter-inch hole.)"
하버드비즈니스리뷰紙의 편집자이기도 했던 Ted Levitt 교수의 말인데, 마케팅 쪽에서는 잘 알려진 명언입니다. 소비자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똑바로 이해하라는 뜻이죠.
얼핏 당연하고 쉬운 말 같지만, 사실 모든 마케터들이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똑바로 파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소비자 스스로도 잘 모르고 있을 때도 있고, 숨겨진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때도 있으며, 때로는 마케터들 스스로 '소비자는 이것을 원한다'는 도그마에 빠져 있을 때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자주 있는 경우는 광고하는 제품의 장점을 소비자가 원하는 점인 것처럼 포장해서 호도하는 경우죠.)
오늘은 '콘텐츠는 왕이다'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양질의 콘텐츠라는 명제인데, 이 말은 과연 항상 사실일까요?
많은 온라인 마케터들은 이 말을 마치 절대적인 진리인 양 생각합니다. 어떤 사이트나 미디어를 만들거나 운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콘텐츠를 많이 확보해서 사용자를 끌어모으는 것이라는 이 말은 표면적으로는 매우 옳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말은 콘텐츠 자체를 '목적'으로 오도하고 있기도 하지요.
이 명제는 좋은 콘텐츠를 한 곳에 모아두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미디어(혹은 채널, 사이트)에게는 충분히 유효합니다. 그러나 콘텐츠를 활용해 다른 뭔가를 의도하는 미디어에게는 콘텐츠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콘텐츠는 사람들을 모으는 수단입니다. 웹사이트와 같은 미디어를 만들 때 십중팔구는 광고를 통한 수익 창출을 기대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수의 방문자가 필요하죠. 더 많은 방문자를 지속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좋은 콘텐츠를 상시 업데이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웹1.0, 심지어 웹2.0시대에서도 이 같은 공식은 유효했습니다. (비록 웹2.0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소셜미디어가 화두로 등장하긴 했지만,) 이 시대는 엄밀히 말해 '정보 포털'의 시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매체사가 만들어낸 뉴스기사든 사용자들이 만들어낸 UGC(UCC)든 사람들은 뭔가 재미있고 볼만한 콘텐츠를 원했고, 이 시대의 사용자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미디어 소비 행태는 콘텐츠의 '소비'였습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이 주로 주고받은 정보 역시 이런 콘텐츠가 다수를 차지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진이나 글, 유익한 기사 등이 모두 이런 콘텐츠에 해당하는 것들이죠. 그러니 콘텐츠가 왕이라는 명제는 유효했던 셈인데,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미디어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콘텐츠를 확보해 두고 있느냐, 혹은 얼마나 많은 콘텐츠 공급원,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느냐가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콘텐츠 공급원이란 뉴스를 공급하는 매체사 뿐 아니라 콘텐츠를 열심히 생산하는 이른바 파워블로거, 심지어 뉴스를 열심히 실어나르는 적극적인 사용자들까지 모두 포함합니다.)
그러나 웹2.0이 더 성숙해지면서 사람들이 온라인 매체를 소비하는 행태가 변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른바 소셜미디어의 시대에서는 콘텐츠의 소비 외에 타인과의 상호작용/인터랙션 자체가 주요 목적이 되고 있는 것이죠. 사람들은 친구들이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둘러보려고 인터넷을 씁니다. 페이스북이든 트위터든 사람들은 여전히 재미있는 콘텐츠를 올려두고 친구들과 공유하기를 즐기지만, 이같은 콘텐츠의 공유가 더이상 사람들이 해당 매체를 사용하는 유일한 요인이 아님은 여러분도 충분히 느끼고 계실겁니다.
이렇게 소비자의 행태가 변하면 마케터는 이에 대응하고, 활용해야 합니다. 콘텐츠가 주요 수단이었을 때 양질의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듯, 인터랙션이 중요 수단으로 등장했다면 더 많은 인터랙션을 가능케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자주 들락거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가능한 한 개방된 공간을 만들고 더 많은 종류의 인터랙션을 가능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Status)를 공유하는 것' 외에 다양한 종류의 공유 활동을 가능케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위치를 공유하거나 (예: Foursquare 등의 위치기반 서비스), 내가 소비하고 있는 콘텐츠를 공유하거나 (예: GetGlue), 사진이나 동영상, 슬라이드쇼 등의 콘텐츠를 공유하는 등 (예: Flickr, Youtube, SlideShare) 다양한 종류의 공유가 이미 가능하고, 공유 대상의 범위는 점점 더 넓어지고 독특해지고 있습니다.
혹은 사용자간 인터랙션의 종류를 늘이는 방법 또한 가능합니다. 콘텐츠의 단순한 공유와 안부 묻기, 채팅을 넘는 새로운 종류의 인터랙션이 계속 소개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모바일 기기로의 커뮤니케이션 외연 확장이나 페이스북이 시도하는 것 같이 채팅과 메시징, 메일을 통합하는 시도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인터랙션 종류의 확대는 개인간 커뮤니케이션(Interpersonal Communication)에만 머무르지는 않습니다. 소셜미디어의 사용자가 대외적인 (Outward, Public)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고 이에 익숙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사용자 개인의 커뮤니케이션을 다른 용도에 활용하려는 다양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지요. (더 자세한 내용은 기업 비밀이 섞여 있어 밝히기가 곤란함을 양해해 주시길. ^^;)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인터랙션의 빈도를 늘이는 방법 또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어쨌든 소셜 시대에서는 인터랙션의 총량을 늘임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을 관여시키는 것이 중요해집니다. 가능한 한 담벼락을 낮추고, 악성 콘텐츠에 대한 감시와 같이, 통상적으로 매체에 의해 행해지던 역할까지도 과감히 사용자에게 넘기는 것 역시 필요합니다. 사용자의 콘텐츠와 인터랙션이 사용자에 의해, 사용자를 위해 관리되고 감시되는 셈이죠.
안타깝게도 국내의 포털사이트들이나 주요 웹사이트들은 이같은 변화를 전향적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오히려 기존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쪽에 더 관심이 있는 듯 한데, 사용자에 대한 감시를 더 철저히 하고, 자사가 보유한 콘텐츠에 대한 관리 수위를 높이고 있으며, 사용자의 인터랙션 역시 (여전히) 자사가 쳐둔 울타리 (Walled Garden) 안에서 하도록 유도하는 편입니다. 최근들어 주요 포털 업체들이 API를 공개하고, 주요 매체사의 웹사이트들이 페이스북과 같은 외부 서비스로의 연계를 용이하게 하는 등 '변화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아직은 외부의 압력에 떠밀려 조금씩 문을 여는 정도입니다. 앞서가기 위해서는 트렌드를 읽고 소비자가 원하는 '구멍'을 제공할 줄 알아야 할텐데 아직까지는 '드릴'만 조금씩 내놓는 형국이죠.
어쩌면 사용자들에게 구멍을 제공하려면 자신들이 갖고 있는 기득권을 상당 부분 내놓아야 하는 것처럼 보이니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 즐겨 인용되는 경영/마케팅 사례들이 있죠. 20세기 초반의 포드 자동차나 십여년 전의 코닥 필름, 최근의 마이스페이스 등이 저지른 실수가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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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하실까봐 덧붙이자면, 콘텐츠가 왕이라는 명제가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소비자들은 앞으로도 계속 콘텐츠를 소비할 것입니다. 따라서 콘텐츠가 중요하다는 말은 언제나 (어느 정도는) 옳습니다. 다만 저는 그 말이 담고 있는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한 것입니다. 콘텐츠 확보가 지향하는 목표가 무엇이며, 그 목표는 지금도 여전히 콘텐츠로 달성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 거죠.
목표는 언제나 사람(Eyeball)입니다. 수익을 낼 수 있는 매체를 만들고자 한다면 말이죠.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저는 인터랙션을 제시했는데, 혹시 다른 생각이 있으시다면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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