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s2013. 4. 6. 07:18

지난 달 저희 본부에 합류한 신입사원들에게 추천하고픈 책과 블로그들입니다.
메일로 보내려다가, 나중에 또 쓸 일이 있겠다 싶어 이 곳에 올립니다.

 

 

 

A. 필독 도서 - 교양서

 

 

 

쉽게 읽게 되진 않는 책들이지만 신입사원처럼 갓 시작하는 분들에게는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책들입니다.
읽다가 어렵다고 생각되시면, 그때마다 '
독서백편의자현 (讀書百遍意自現)' 이라는 고사를 꼭 기억해 주세요.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시는 분들은 클릭해서 들어가보시면 됩니다.)   

 

 

 

B. 추천 도서 - 업무 관련

 

 

 

 

C. 추천 블로그 - 업무 관련

 

디지털 마케팅 관련, 혹은 새로운 기술이나 트렌드 등에 대한 인사이트는 책보다는 블로그에서 얻고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블로그를 다 보고 있을 수는 없지만, 제가 즐겨 참고하는 블로그를 몇 곳 소개해 드립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인터넷 환경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좋은 글 한 편.  

"한국 인터넷에서 잘못 끼워진 첫 단추, 그 이름은 네이버" (http://sungmooncho.com/2010/03/21/naver/)

 

 

즐거운 공부 되시길.


 

 

추신: 다른 추천하고픈 책이나 블로그가 있으시면 댓글로 올려주세요.  


Posted by ecarus
Thoughts2012. 8. 13. 18:34

런던 올림픽이 폐막했습니다. 이전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언론의 주된 관심은 '누가 메달을 땄느냐, 특히 금메달을 땄느냐 혹은 못 땄느냐'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러고보면 우리나라의 사회적 특징은 '대표선수 주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박태환도, 김연아도, 손연재도, 모두 가장 선두에 서있는 사람만 각광을 받고 그 뒤에 서있는 수많은 꿈나무(?)에 실제 스포트라이트가 맞춰지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프로야구도 프로축구도 1군 뿐. 프로 리그 경기보다 항상 국가대표 대항전이 인기가 있고, 안타깝게 탈락한 선수들은 잠깐 후면 곧 잊혀집니다. 


이는 조직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 사람으로 구성된 조직이지만  잘 나가는 사람 한둘에 조명이 집중되고, 급한 일이나 중요한 일이 생기면 으레 그 잘 나가는 구성원에게 숙제와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집니다. 마치 국가대표 선수들이 그렇듯, 주어진 숙제를 훌륭히 처리해 내면 (즉, 금메달을 따면) 박수세례를 받으며 기존의 지위를 유지하고, 실패할 경우 곧바로 만회하지 않으면 잊혀집니다. 

 

중요한 것은 이렇게 '잊혀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아예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는 다른 많은 구성원들입니다. 그들의 역할은 조직 내에서 자주 간과되고 과소평가 되곤 하지요. (마치 축구의 비스타플레이어 수비수 후보처럼.)

 

'대표선수주의'는 경쟁을 부각시킴으로써 몇몇 사람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지켜보는 사람들에게 재미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는 매우 효과적입니다. 그러나 금메달 후보들에게는 지독한 부담을, 지켜보는 사람들에게는 잠깐의 대리만족 이후 공허함을 주기도 합니다.  

 

이같은 시스템은 부작용이 있습니다. 스타플레이어는 당장에는 기분이 좋을지 몰라도 금방 고갈되고, 지치게 마련입니다. 성과를 올리는 데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혼자 주목받으며 뛰는 스타 구성원은 마치 페이스메이커 없는 마라톤 선수와 비슷합니다. 감독이 가리키는 방향만 바라보고 죽어라 뛰어가지만 쉬이 지치고 기록 향상에도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2군을 키워야 합니다. 없는 2군을 키우는 것 뿐만 아니라, 스타 플레이어 외의 구성원들에게도 관심을 갖고 동기를 부여함으로써 모두가 가용한 스타플레이어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 팀도 크고 구성원들도 꾸준히 성장할 수 있습니다. 

 

스타플레이어 한 명이 금메달을 따는 데에는 실패하더라도, 모두가 스트레스를 덜 받고, 모두 즐길 수 있으며, 이로써 언젠가 몇 명이 동메달을 따고, 그럼으로써 모두 조금씩 행복하고 발전하고 서로 격려하는 문화가 훨씬 '인간적인' 문화입니다. 

 

누가 한 말 처럼 말이죠. 

 

"한 명의 백 발짝보다 백 명의 한 발짝을 위하여."

Posted by ecarus
Thoughts2012. 8. 12. 20:30

조직이라면 일을 잘 하기 위한 프로세스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프로세스 그 자체를 목표로 오해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됩니다. 

 

중요한 것은 주어진 일을 잘 해내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지 프로세스를 지키는 것 자체가 아닙니다. 물론 주어진 프로세스와 '규칙'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프로세스를 지키려다 일 자체가 어그러진다면 그 프로세스는 아예 처음부터 시작하지 않는 편이 나은 셈이죠.

 

프로세스를 마치 절대선인 것처럼 다루는 조직은 인사와 재무가 대표적입니다. 재무 부서의 경우는 자금의 투명한 흐름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목표이므로 프로세스를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하겠지만, 인사 부서의 경우 '목표'와 '프로세스'를 혼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사의 목표는 간단히 말하면 좋은 인재의 채용과 관리, 유지 육성,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조직에 대한 애정을 갖게 해 주는 것입니다. '위에서 내려온 지시이다', '그룹 방침이라 어쩔 수 없다', '선례가 없다', '곤란하다' 등의 말을 달고 사는 인사부서라면 아마도 '프로세스'와 '목표'를 혼동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운용의 묘란 매사에 예외를 두면서 프로세스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목적이 무엇인지를 먼저 생각하고, 그에 맞게 탄력적으로, 그러나 공평하고 투명하게 목표를 이루어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가피한 경우에는 'bending the rule'을 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바로 이 때 공평함과 투명함이 필요합니다. 잣대를 조금 구부릴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모두에게 투명하게 알리고 공감을 얻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실제로는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프로세스를 '무조건' 지키려다 일을 망치는 것보다, 공감받지 못하는 임의 조치를 남발함으로써 신뢰를 잃는 것보다, 아는 사람들끼리만 통하는 별도의 프로세스를 만드는 것보다, 혹은 아무 일도 안하고 방관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이 편이 낫습니다. 


Posted by ecarus
Thoughts2011. 11. 11. 14:17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진중한 관찰로부터 비롯됩니다. 관찰은 대상을 그저 뚫어지게 지켜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꿰뚫어 봄으로써 얻어진 의미를 재조직화하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즉 관찰은 통찰을 위한 것입니다. 
 
이처럼 통찰력을 바탕으로 대상으로부터 의미를 이끌어내는 것은 논문을 쓸 때 '가설 수립'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업계에서는 가설 수립이라는 단계가 대체로 생략되지만, 훌륭한 마케터나 연구원이라면 당연히 이와 비슷한 '감'이라도 갖고 대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가설'과 '감'의 정확성은 대상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는지와 정비례합니다.
 
이어서 행해지는 여러가지 조사들, 설문조사, 실험, FGI, 관찰조사 등은 학계에서는 대부분 가설의 검증을 위한 방법으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마케터는 이런 조사 역시 관찰의 방법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라본다는 것은 단지 눈으로 바라보는 것만 포함하지 않으며, 관심있는 대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행하는 여러가지 조사 역시 관찰의 한 가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마케터는 처음에 가졌던 가설이 어떤 것이었든간에, 대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탐구의 목적으로도 조사를 활용해야 합니다. 학계에서의 조사가 검증(verify)과 확증(confirm)을 위한 것이라면, (가설 검증에 덜 부담을 가져도 되는) 업계에서의 조사는 몰랐던 측면을 발견하고자 하는 탐사(explore)의 목적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검증이든 탐사든, 적절한 방법을 이용해서 관찰을 잘 해야 한다는 것까지는 학계와 업계가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왜 관찰해야 하는가'에 들어서면 학문적인(academic) 관찰과 실무적인(practical) 관찰은 초점을 달리합니다.
 
사회과학, 특히 마케팅 분야에 논의를 한정시킨다면, 학문적인 관찰과 연구의 목적은 '대체로' 어떤 현상이 어떤 '원리'로 일어나는지를 규명하고, 이를 일반적인 이론으로 확립하는 데 있습니다.
 
반면 실무적인 관찰과 연구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을 밝혀내고, 이를 통해 그 현상이 상징하는, 그 현상이 일부를 보여주는 보다 거대한 흐름을 밝혀낸 후 이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더 중시합니다.
 
원리와 원인은 한 글자 차이지만 꽤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가 '이치'와 '불변의 작동 원리'에 대한 것이라면, 후자는 (그 깊숙한 이론보다는) 주변의 '변인', 특히 '통제 가능한 변인'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회적 현상에 착안하여 시작된 학문적 연구는 그 원리를 밝혀내기 위하여 대체로 인간의 심리 혹은 행동 양태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소셜미디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이라 해도 기존에 이미 확립된 이론을 바탕으로 가설을 수립하는 경우가 많으며, 소비자 심리와 기존 매체의 이용 행태에 기반하여 연구를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소셜미디어와 기존 매체의 기계적 차이로부터 시작하여, 소비자들이 이를 어떻게 '다르게' 인식하고 사용하는지에 연구의 초점이 맞춰지곤 합니다. 이런 연구의 경우 종종 두루뭉술하고 그닥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 결론으로 끝맺는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소셜미디어에서의 마케팅이 더 효과적인 이유는 소비자들은 주변 지인의 조언을 더 긍정적으로, 덜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심리적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업계의 실무 종사자들 입장에서는 이같은 결론은 매우 불만족스럽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결론은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내용이거나, 혹은 이미 수많은 사례로부터 입증된 (정확히는 '입증되었다고 느끼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결론도 학술적으로는 충분히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인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전파하는 데 있어 소셜미디어는 왜, 어떤 원리로 기존 매체보다 더 효과적인지를 입증하거나, 혹은 비전문가인 지인들끼리의 커뮤니케이션이 왜 전문가가 만들어낸 전문적인 정보보다 더 효과적인지를 밝혀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실무적인 가설과 연구는 궤를 크게 달리합니다.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에 대해 이론적으로 입증하기 이전부터 업계는 이미 그 중요성을 알고 있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업계의 관심은 '왜 소셜미디어가 중요한가'보다 '어떤 요인이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을 증폭시키는가', 혹은 '마케팅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의 종류, 상황, 변수는 무엇인가'에 쏠리게 마련입니다.
 
종종 업계는 이를 추론하기 위하여 수많은 사례 연구를 동원합니다. 이미 행해진 남들의 마케팅 사례들을 분석함으로써 일반적으로 통용될 수 있다고 믿어지는 몇 가지 방법론을 도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학계의 시각으로 볼 때는 '전혀 완전치도 않고 불안정하며, 일반화될 수 없는' 그야말로 하수로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학계와 업계의 간극은 좁히기 어려운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시작점이 다르고, 추구하는 목표가 판이하니까요.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방법은 서로의 차이를 잘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앞에서 학문적인 연구는 현상의 '원리와 이치'에 초점을 맞추고, 업계의 연구는 '원인과 변수'를 중시한다고 설명한 바 있는데, 이 차이로 인하여 양측은 서로 다른 관찰의 범위를 갖게 마련입니다. 학계는 일반화할 수 있는 이치(혹은 이론)를 정립하기 위해 새로운 현상과 기존 현상 간의 차이에 집중합니다. 자연스레 작은 부분들을 세밀히 관찰하는 경향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반면 실무적인 관찰은 작은 부분보다는 현상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나아가 그 현상이 속해 있는 더 큰 흐름(트렌드)을 읽어내는 것에 집중합니다. 소셜미디어라는 같은 주제를 놓고서도 '인간과 매체의 특성'을 중시하는 학계와 '소셜미디어가 상징하는 거대한 흐름과 함의'를 분석하는 업계의 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서로의 간극을 좁히고 공승(共勝, 윈윈^^)하기 위해서 먼저 업계는 학계와 함께 공생하는 법을 찾아야 합니다. 실무자들은 학계의 연구가 (앞서 말했듯) 그 목적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이를 자신들이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공부해야 합니다. 학계의 연구가 고루하다고 비판하더라도 그 이후에는 연구를 개선할 방법을 함께 찾아야 합니다. 아울러 기존에 행해지고 있는 업계의 연구 방법이 비생산적이며 올바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개선점을 찾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논리 없이 행해지는 끝없는 사례연구나, 인구비율의 변화 정도만을 추적하는 단순한 분석 등이 있겠습니다.)
 
그리고 학계 역시 업계의 통찰을 흡수해야 합니다. 마케팅 분야는 업계와의 협력 없이 학계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대단하고 새로운 이론을 논리적으로 입증해 냈다고 해도 업계에서 확인되기 전에는 효용이 없습니다. 업계가 알고 있는 현상과 사실들을 학계에서 흡수함으로써 업계와 같은 속도로 세상의 변화를 인지해야 합니다. 지금보다 더 열심히 공부함으로써 업계 실무진들로부터 존경받는 연구자가 많아져야 합니다. 이어서 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연구가 무엇인지 알아내서 실제 현장에서 쓰일 수 있는 연구들'도' 해야 합니다.
 
학자는 연구비를 타기 위한 연구가 아니라, 업계에서 원하는 연구가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진행해야 합니다. 시시한 학술지에라도 실려서 실적을 채우는 데 쓰이는 날림 연구보다, 다소 오래 걸리더라도 기업이 실제 사용하게 되는 연구가 더 값지다는 것을 연구자와 학교 모두 깨달아야 합니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학계와 협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생색내기용 연구비 지원은 그만해야 합니다. 자사의 마케팅 전략이 논리적이라고 매체와 클라이언트에게 주장하기 위해 내세우는 공동 연구는 그만둬야 합니다. 임원과 사장이 함께 어울리기 위한 (그럼으로써 학자연 할 수 있는) 자문교수는 내보내야 합니다. 
 
학계와 업계의 연결은 기업 최일선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기업이 먼저 일선 실무자와 학교를 직접 연결해줌으로써 사용 가능한 연구들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합니다.


Posted by ecarus
Thoughts2011. 7. 27. 00:42

지난주 (7/24자)  '나는가수다'를 보면서, 
장혜진씨의 공연을 보고 와닿은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좋은 노래와 좋은 PT 사이의 공통점에 대한 건데요. 많이들 느끼시는 점이겠지만.
(주: 100%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1. 진정성
가수가 단지 '노래를 부르는 것'과 노래 속의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음정, 박자, 테크닉을 완벽히 소화해서 노래를 멋들어지게 부르는 것과, 노래는 다소 '삑사리'가 나더라도 '혼'을 갖고 부르는 것의 차이는 누구나 알아챌 수 있죠. 장혜진씨의 노래는 파워에서는 옥주현씨보다, 기교에서는 박정현씨보다 뛰어나지 않았지만, 장혜진씨의 노래를 듣고 있는 동안은 마치 마주앉아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아마도 가장 큰 차이는 감정 이입일 것이고, 듣는 이로 하여금 감정 이입을 하게 하려면 부르는 사람이 그 노랫말의 주인공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진실된 느낌과 열정을 노래에 쏟아야 할 것입니다. 
 
PT도 마찬가지겠죠. 화려한 슬라이드와 미사여구, 완벽히 짜여진 각본이 아니라, 발표하는 사람의 열정과 스스로에 대한 확신으로부터 비롯된 진정성이 있어야 듣는 사람이 몰입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이걸 진짜 팔고 싶고, 이건 정말 대박 상품이 될 것이다'라는 것을 입이 아니라 가슴으로 이야기한다면 설사 발표 중간에 몇 군데를 까먹어도, 중간에 말이 꼬여 버벅대도, 진실이 울리면 실수는 사소한 게 됩니다.
 
 
2. 음향
들리는 말에 나가수는 편곡은 물론 음향과 세션 등 '좋은 음악'을 전달하는 데 무척 많은 투자를 했다죠. 가수의 진정성이 가장 중요하지만 가수의 노력을 받쳐주는 주변 환경의 중요성도 못지않게 중요할 겁니다.
 
PT 역시 발표자의 열정과 발표의 내용이 중요하지만, 이를 받쳐주기 위한 다양한 장치들도 중요합니다. 더 중요한 건 그 모든 장치/요소들이 발표와 자연스럽게 어울려야 한다는 점이겠죠. 김범수씨의 무대는 그 파격성과 화려함에서는 최고였지만, 뭔가 자연스럽게 어울리지는 못했던 것 같다고 느낀 건 저뿐이었을까요?
 
 
3. 경험  
경험이라기보다는 연륜이라고 할까요? 장혜진씨의 노래를 만약 옥주현씨나 소녀시대가 불렀다면 그만큼 와닿을 수 있었을까요? 아니, 과연 그만큼 전달할 수 있었을까요? 가수가 노래를 소화할 수 있는 '경험'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건 청중이 가수/발표자에게 갖는 기대와도 연관됩니다. '저 사람은 노랫말/PT에 감정을 실을 수 있겠구나'라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니까요. 즉, 경험이나 연륜이란 단지 돌발적인 실수를 모면할 수 있는 능력 뿐 아니라, 듣는 사람들에게 'I know what I'm talking about'라는 믿음을 주기 위해서 더 필요할 겁니다.
  
 
4. 듣고싶은 내용 vs. 말하고 싶은 내용 
옥주현씨의 노래와 인터뷰를 들으면서 문득 든 생각인데요, 옥주현씨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부르면서, "노래의 앞부분은 남자를 기다리는 여자의 마음을, 후반에는 돌아오지 않는 남자를 미워하는(?) 적극적인 여자의 마음을 담았다"고 했습니다. (자세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그런 내용이었죠.) 그리고 편곡 역시 그런 분위기를 살린 듯 했습니다만, 저는 노래가 그다지 와닿지가 않더군요. 아마 옥주현씨의 편곡/전달 방향이 제가 이해하던 원곡의 느낌과 다르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파격적인 탱고풍 편곡은 신선했지만, 제가 기대하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노래는 적어도 그렇게 전달되어서는 안되는 노래라고 생각한거죠. 
 
PT에서도 가장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구겨넣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PT를 준비한 사람은 청중보다 그 주제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으니, 아는 만큼 말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겠습니다만, '무언가를 팔기 위한 PT'라면 내 말은 꾹 참고, 듣는 이가 기대하는 (수준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중요하죠.
 
 
5. 청중의 몰입 
그리고, 가수와 발표자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듣는 이의 집중'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나는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기존 모든 음악 프로그램들과 가장 크게 차별화되는 점이 '시청자들이 집중해서 노래를 듣게 되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음악중심'같은 최근의 가요 프로그램은 물론, 저 옛날의 가요톱텐, 대학가요제 등 그 어떤 음악 프로그램도 '나가수'만큼 시청자로 하여금 진지하게 몰두하도록 만든 적이 없었습니다.
PT에서도 발표자가 청중으로 하여금 처음부터 끝까지 발표에 집중하게 한다면 승리는 따놓은 당상일 겁니다.
 
무엇이 시청자를 나가수에 집중하게 하는 걸까요?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며 대단한 상품을 뿌리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이 프로그램은 집중해서 봐야 해' 라는 느낌을 심어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PT에서 '이 발표는 집중해서 들어야 해'라는 생각을 미리 갖게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Posted by ecarus
Thoughts2011. 7. 18. 18:15

오늘 아침에 탄 버스에서 어떤 아주머니가 "이 버스 순천향 병원 가요?"라고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기사가 "네, 갑니다" 라고 답해 드렸는데, 내 옆 자리에 앉아있던 아주머니가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로
'그런 것도 모르고 버스를 탔담..' 이라고 중얼거렸습니다.
 
슬쩍 그 아주머니의 얼굴을 쳐다보니 물어본 아주머니에게 빈정대는 표정이 아니라, 그저 혼자 의기양양한 표정이었습니다. 심드렁해보이지만, 마치 자신은 물어본 그 아주머니보다 나은 사람이라도 된 것 같은 얼굴로 말이죠.
 
사람들은 정말 다양한 이유로 잘났다고 느끼고 잘난 척 합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만 않는다면, 잘난 느낌이 들도록 해주는 것은 좋은 일일 겁니다.
그것도 자신만 알 수 있는 은밀한 방법으로 말이죠.
 
'싼타페를 타면 넌 잘나보일거야, 멋있어 보일거야'라고 아무리 부르짖어봤자 소용 없습니다. 싼타페를 타는 사람이 그만큼 잘난 사람은 아니라는 걸 누구나 알기 때문이죠. 대신 "싼타페를 타면 다른 사람은 잘 몰라도 '이런 부분'은 건 잘나 보이겠지.."라고 스스로 생각하게 해주는게 중요합니다. (그런게 뭐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예전에 Momo라는 자동차 액세서리 브랜드가 인기를 끈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아직도 인기있을지도 모르지만, 제가 통 관심이 없어서...^^)

 
90년대 초반쯤 자동차 핸들 (Steering Wheel) 이나 휠 (바퀴) 을 이 브랜드 제품으로 바꾸거나, 아니면 이 브랜드 스티커만이라도 구해서 차에 붙이고 다니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널리 알려진 브랜드는 아니었지만 뭔가 '있어보이게 하는' 효과를 노렸던 거겠죠.
 
'다른 사람은 잘 몰라도, 난 이런 브랜드도 알고 있으니 너희보다 나은 사람이야' 라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 은밀히 자뻑을 하게 해 주는 것.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려면 매스미디어의 광고를 통해서는 안되겠죠.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순간 은밀한 기쁨은 사라질테니까요.
 
브랜드 마케팅의 정석은 아닐지 몰라도,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방법이 아닐까요?
 
 
 
사족:
예전에 후배 한 녀석이 쏘나타 신차를 사더니 2천만원 넘는 돈을 들여 튜닝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가 원래 좀 '남들에게 보여지는 자신'에 대해 민감한 친구였는데, 대부분 주변 사람들은 '그 돈이면 제네시스를 샀겠다!'고 했지만 그 친구는 아주 만족스럽게 타고 다니더군요. 위 글을 쓰다가 '과다한 튜닝의 심리' 역시 자기 만족-자뻑과 비슷한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


Posted by ecarus
Thoughts2011. 7. 17. 04:05

스토리텔링 마케팅: 상품 특성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관심을 가지고 반응하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풀어나가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기법
출처: 곽진민, 이은미 (2009. 11), "브랜드에 생명을 불어넣는 스토리텔링 마케팅," KT경제경영연구소

 
 
사실 스토리텔링 마케팅은 알고 보면 매우 간단한 원리를 갖고 있습니다. 알리고자 하는 대상을 맹목적으로 알리려 하지 말고, 상대방이 반응할만한 이야기를 끼워넣어 알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술자리에서 하는 대화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해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전혀 상관없이 불쑥 꺼내선 안되죠. 맥락(컨텍스트)과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도 다른 친구의 말을 잘라먹으면서 난데없이 꺼냈다가는 썰렁하다는 핀잔과 함께 벌주를 마시게 마련입니다. 
 
맥락과 타이밍은 그렇다쳐도, 어쨌든 스토리텔링 마케팅을 하려면 '이야깃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마케터들은 이 '이야깃거리'를 찾기 위해 골몰합니다. 회사의 창업 비사에서부터 브랜드명에 얽힌 이야기, 회사 구성원이 가진 에피소드 등에서 그럴듯한 이야깃거리를 찾거나 혹은 만들어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곤 하죠.
 
대부분 그렇듯이 이야깃거리는 사람들 안에 있습니다. 최근 봇물처럼 쏟아지는 다양한 서바이벌 프로그램들 - 슈스케, 위대한 탄생, 그리고 나가수 까지도 - 은 출연자의 재능을 내세우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들의 이야기를 파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훈남형의 존박이나 뮤지션스러운 장재인이 아닌 허각을 우승자로 만들었고, 데이비드오가 아닌 (김태원과) 백청강에 더 큰 박수를 보냈으며, 임재범의 노래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물론 이들은 모두 그에 걸맞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이들을 영웅으로 만든 것은 엄밀히 말해 그들의 실력이 아닌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이를 간파한 기획자들의 작전도 간과할 수는 없겠지만요.) 
 
이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만일 '이야기'를 쏙 빼고 실력으로만 출연자를 평가한다면 아마 프로그램들은 서로 무척 비슷해질 겁니다. 굉장히 세련되고 진지한 전국노래자랑이 돼버릴 수도 있겠네요. 어쩌면 최고의 가창력을 가진 가수를 뽑게 될지는 몰라도 마케팅 측면에서는 빵점을 면하기 어려울 겁니다.
 
 
오늘 대구 육상 선수권대회에 대한 신문기사를 하나 읽었습니다. 솔직히 저도 거의 관심이 없던 행사인지라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을텐데, '여신급 '허들 공주' 깁스한채 한판붙자..' 라는 제목에 낚여 클릭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여자 허틀 100m 대표인 정혜림 선수에 대한 기사더군요. 미안하지만 저는 그녀가 ‘허들 공주’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줄도, 한국 육상의 얼짱 선수로 불리는 줄도 몰랐습니다. 기사를 읽어내려가다 제 눈길을 멈추게 한 부분은 (그녀의 사진이 아니라) 기사 말미에 있던 그녀의 말이었습니다.
 
  

“대구 대회는 그냥 대회가 아니라 선진국만 개최하던 축제다. 우리가 그걸 개최하는 것이다.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육상이 이런 매력이 있구나’라고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중략)
선수들 한 명 한 명을 눈여겨 봐주시면 그 선수 경기를 한층 더 재밌게 보실 수 있다. 선수들은 국민의 응원으로 성장해간다. 많은 애정의 눈길을 부탁드린다.”

 
 
이쯤이면 제가 이번에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 눈치를 채셨을 겁니다. 바로 대구 대회의 마케팅에 대한 것입니다. 

 

 

 
 대구 대회 마스코트가 삽살개를 모티브로 한 '살비(SARBI)'라는 것, 알고 계셨나요? (전 몰랐습니다. -.-) 

 

  
굳이 정혜림 선수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우리가 대구 대회에 대해 언론들로부터 듣는 메시지들은 대동소이합니다. 세계 4대 국제 경기의 하나이다, 그랜드슬램, 국민의 관심이 너무 낮다, 표도 안팔렸다, 선수들의 실력이 아직 뒤떨어져 안방에서 들러리 서게 생겼다... 요약하면 간단합니다. "이렇게 대단한 대회를 유치했는데 국민들은 잘 몰라주고 관심도 없다. 선수들의 메달 획득 가능성은 낮아도 전세계의 축제이니 와서 보고 즐겨라." 
이거, 88 서울올림픽 때 지겹게 듣던 이야기의 반복입니다.
   
 
조직위의 활동 역시 위의 기조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합니다. 대회 관련 이미지를 찾기 위해 구글 검색을 해봤더니 조직위 홈페이지는 검색결과에 나오지도 않더군요. (주: 홈페이지는 나중에 별도로 찾았는데 여기입니다.)  대신 페이스북 페이지가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홈페이지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들어가봤는데, '전통적인 홈페이지 운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더군요. 
 

 
 

이 페이지를 준비하신 분들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솔직히 저는 '대회 개요-개최 효과-개최 이념-목표...' 등으로 이어지는 구성을 보면서 육상연맹이 만든 파워포인트 자료를 보고 있는줄 알았습니다. 눈에는 예쁘게 보이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을지는 몰라도, 이곳에서 내뿜는 메시지는 비슷했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대회를 유치했는데 여러분이 잘 모르시니,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이벤트인지 잘 읽어보시고, 영광인줄 알고 와서 구경들 하시라!" 
 
 
 
비록 지금은 사람들의 관심이 미미하지만 대회가 더 가까워지면 모든 신문과 방송이 열심히 나팔을 불 것이고, 이를 모든 인터넷 언론들이 받아쓰면서 8월이면 거의 모든 대한민국 국민이 대구 대회에 대해 알게 될 겁니다. 하지만 대회가 끝나면 우리나라 육상은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갈겁니다. 관심 없는 비인기 종목으로. 그리고 학생들로 채워졌던 경기장은 애물단지로.
 
대구 대회든 평창 올림픽이든 이제는 이런 이벤트를 알리는 방법이 좀 세련되게 변해야 합니다. 페이스북이든 TV 광고든 뭐든 일단 대회를 널리 알려 일단 사람을 모으고 보자는 인식으로부터 벗어나, 사람들이 꾸준히 관심을 가질 여건을 만드는 것이 마케터와 홍보 담당자들이 할 일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위에서 정혜림 선수가 말한 것처럼 선수들 한 명 한 명을 눈여겨 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번 대회가 얼마나 국가적으로 중요한지 주입시키거나 종목별 관람법을 교육시키는 것은 전형적인 88년식 애국 마케팅입니다. 동시에 '나는 담당자로서 할 일을 했다'는 면피용 마케팅이기도 하죠. 대구 대회나 평창 대회의 마케팅은 변화된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야 합니다. 출전한 선수들이 갖고 있는 이야기를 최대한 알리고 활용해서 소비자로 하여금 선수 개인에게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메달이나 승패와 관련 없이 그 선수의 경기를 관심을 갖고 재미있게, 집중해서 볼 수 있게 되니까요. (전국노래자랑과 슈스케와 나는가수다를 볼 때 서로 다른 시청 패턴을 생각해 보세요.) 
  
출전한 선수들이 갖고 있는 이야기를 활용한다는 것은 메달을 따고 난 다음에 그 선수의 성장사를 짚어주고, 고향에서 TV로 시청 중인 마을 사람들의 잔치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입니다. 우리가 활용해야 하는 이야기는 '승자의 삶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출전자가 밟아가고 있는 과정'에 대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차이입니다. 금메달리스트와 챔피언의 삶을 보여줄 떄에는 '이렇게 하면 역경을 딛고 성공할 수 있다'는 교훈이 전달됩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는 울컥 감동이 밀려오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챔피언은 챔피언이고 소비자는 (챔피언이 아닌) '일반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위인전을 읽는 것과 같은 효과입니다. 몰입은 강하지만 매우 순간적입니다.
 
하지만 도전하고 있는 출전자의 삶을 보여준다는 것은 소비자가 출전자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출전자와 함께 도전하고 있는 듯한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위인전이 아니라 위인의 성장을 옆에서 지켜보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죠. 몰입은 덜 강력할지 몰라도 장기적이고 충성도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평창도 마찬가지지만 대구 대회의 마케팅은 이같이 출전자 개인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소비자의 장기적인 감정이입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선수들이 어떤 꿈을 갖고 있고, 어떤 노력을 해왔으며, 이들이 지금 서 있는 대구의 스타트라인은 이들이 꿈을 이루는 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풀어줌으로써 시청자로 하여금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가 스타트라인에서 느낄 긴장과 흥분을 공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비록 메달을 따지 못해도 최고의 선수들과 겨루었다는 자체만으로 대단하다는 환희를 함께 느끼며, 대리 만족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이렇게 '영웅의 이야기'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이런 '스토리텔링 마케팅'이 필요합니다.  
  
꼭 메달을 따야만 성공인가요? 육상이나 동계 스포츠 같은 비인기 종목에서는 '응원하고 싶은 마이너'가 특히 많을 겁니다. 영화 '국가대표'와 '우생순', '쿨 러닝'에서 배웠듯, 김태원, 임재범, 허각, 백청강, 이태권을 볼 때 느끼는 것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제 그들의 메달 색깔이 아니라 그들의 도전과 삶과 이야기에 열광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습니다.  

 
 

사족.
'그랜드슬램'이니 '세계 4대 스포츠 이벤트'니 하는 말들은 제발 좀 그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말들을 계속 쓰는 것 자체가 사실은 '우리나라같은 변방에서 이런 대형 이벤트를 주최하게 된 것은 대단한 쾌거'라는 88년스런 자조적인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니까요. 그리고 이런 이벤트 개최의 성공 여부를 관중 동원, 국가별 메달 수로 따지는 촌극도 그만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들이 조금씩 이루어가는 꿈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감동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으니까요.

Posted by ecarus
Thoughts2011. 4. 10. 09:11

거짓말을 일삼는다고 소문이 난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가 지난 일 년 동안 바깥에 대고 하는 말이 천 건 쯤 되고,
그 중 백 건 쯤은 거짓말로 판명이 되곤 합니다. 
그러나 소년은 그 백 건 중 열 건 정도는 사람들의 오해에서 비롯된 거라고 항변합니다.
어쨌든 구십 건은 거짓말이었던 셈이지만, 소년은 그 열 건에 대해 억울하다고 하소연합니다.
 
소년이 하는 말에 대해 사람들이 소년에게 거짓말이라고 비난하면
소년은 스스로 거짓말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열 건을 집어내고, 각종 증빙자료를 보여주며
'나는 거짓말장이가 아니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열 건에 대한 소명자료를 여기저기에 뿌리기 시작합니다.
자신의 가족, 친구들을 불러모아 시장에 나가 전단지를 나눠주기도 하고,
동네 사랑방에 찾아가 설명도 하고, 힘 좀 쓰는 이웃 형들에게 말 좀 전해달라고 부탁도 하고,
때로는 마을의 높으신 분들을 만나 '나는 거짓말장이가 아닌데 사람들이 몰라준다'고 훌쩍이기도 합니다.
 
그렇게해서 소년이 거짓말장이라는 오명이 벗겨질까요?
사람들은 여전히 나머지 구십 건이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고,
나머지 구백 구십 건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이 때 누군가 이야기합니다.
 
    "거짓말장이라는 누명을 정말로 벗고 싶다면 먼저 진실을 말하는 습관을 들이세요.
     고작 열 건에 대한 진실을 알리려고 애쓰지 말고,
     친구와 가족에게도 전단지는 그만 돌리라고 하시고,
     어떤 경우에도 진실을 말한다는 신뢰를 먼저 얻으셔야 해요.
     생각보다 오래 걸리고 견디기 힘들겠지만, 그동안 쌓아온 업보라 생각하시고,
     스스로 말하는 진실을 사람들이 알아줄 때 까지 참을성을 갖고 기다리세요."
 
곰곰이 듣던 소년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정말 거짓말장이라는 누명을 벗을 수 있을까요?
 그게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일까요?
 그리고,
 그게 더 나은 방법이라는 사례가 있다면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그런게 있나요?"
 

Posted by ecarus
Thoughts2010. 1. 8. 08:01


Jim Collins와 Jerry Porras가 쓴 'Built to Last'라는 책을 얼마 전에 읽었습니다. 나온지 꽤 오래된 책이고 우리나라에도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이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나와있습니다. 성공한 많은 회사들을 보고 어떤 회사들이 정말 오래가는 회사들인지를 짚어주는 흥미로운 책이었습니다. 성공하는 회사를 만들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성공이 오랫동안 (여러 세대에 걸쳐) 지속되기 위해서는 기업 문화가 중요하다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웠던 내용은 사업을 할 때 '아이디어을 중심으로 모인 경우'보다 '사람을 중심으로 모인 경우' 더 영속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었습니다. 즉, '어떤 사업 아이템으로 사업을 해보자' 혹은 '어떤 제품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기업들보다,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우리 같이 사업해보자, 뭘 만들지/팔지는 시작하고 난 후에 생각해도 돼'라는 식으로 시작한 기업들이 더 크게 성공하고, 더 오래 살아남아 있다는 의미입니다. (저자가 예로 든 회사들은 Sony, GE, HP, 월트디즈니 등 당대를 대표하는 회사들입니다. 지금은다소 곤경에 처한 곳들도 있지만 그래도 이들이 각자 자신의 분야에서 큰 획을 그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죠.)

처음에 들을 때는 황당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면 아이템으로 시작해서 성공할 수는 있겠지만, 그 성공을 오래 지속시켜 주는 것은 아이템 자체가 아니라, 바로 함께 사업을 일으킨 '사람들'과 그들 사이에 공유되어 있는 '정신'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이런 (성공하는) 기업들의 리더는 'charismatic leader'보다는 'architect'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 점은 모든 나라와 문화에 공통적으로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2010년 현재의 시대 정신과도 어느 정도는 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Magic of 'AND'"라는 내용도 들어있는데요, "A OR B" 라는 '둘 중 하나 정신' 혹은 'OR의 함정'에 빠져서는 성공이 어렵다는 이야기입니다. 음양의 법칙이라고 할 때 'yin', 'yang'이라는 단어를 쓰지요. 'Yin OR Yang'처럼 음 혹은 양 (흑 혹은 백) 이라고 하면 둘 중 아무것도 아닌 회색이라는 중간점에 머무는 오류를 쉽게 저지르게 되는데, 정말 성공하고 싶다면 'Yin AND Yang' 처럼 둘 다 모두 잡는, 둘 다 모두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로부터 이어지는 내용이 바로 일반적인 기업이 흔히 갖고 있는 '이익 혹은 문화'라는 OR의 함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모든 기업은 이익을 내지 못하면 존재 가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익 창출이 가장 중요한 '목표'가 됨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익 창출이 다른 모든 것을 경시하는 절대 가치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즉 기업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 역시 중요하며, 그 '목적'이 이익이라는 '목표'에 가려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취급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Profit OR Purposes 로 생각하지 말고, Profit AND Purpose로 생각하라는 거죠. 둘 다 잡을 수 있기 때문에..)

저자는 B-Hag (Big, hairy, audacious goal) 이라는 재미있는 표현과 사례를 통해 조직의 구성원들을 움직이는(drive) 것은 모두가 바라볼 수 있는 원대한 목표라고 설명합니다. 마치 60년대 케네디 대통령이 '금세기 안에 사람을 달로 보내겠다'고 선언한 이후 모든 것이 마술처럼 진행된 것처럼 말입니다. (여기서의 목표는 바로 윗단락에서 말한 이익보다 좀 더 상위의 개념입니다.) 이런 원대한 목표는 조직의 '목적'과 바로 통하는데, 목적을 어떻게 이룰 것이냐, 어떻게 그 목적지에 도달할 것이냐, 그 방법론이 조직의 문화를 결정하는 요인입니다.

예를 들어 디즈니의 목적은 'Bringing happiness to millions'라고 할 수 있습니다. Sony는 'Bringing untold pleasure through applied technology'라고 할 수 있구요. 이처럼 조직의 목적은 반드시 부나 이익에 대한 것만은 아닙니다. 드지니와 Sony 모두 기업이기 때문에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동시에(AND) 이같은 목적을 성취하는 데에도 중점을 두었다는 설명입니다. 

기업이 오랫동안 생존하고, 크게 성공하기 위해서도 이같은 목적과 문화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동시에 기업 구성원들에게 희망과 흥미를 주기 위해서도 올바른 문화와 목적은 필수적입니다.

 

요즘, 어떤 비즈니스를 할까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어떻게 비즈니스를 할까에 대해서도 고민 중입니다. 저희 회사가 아직은 작고 오래되지 않아 명시된 기업 문화가 없긴 하지만, 어떤 목적을 향해 갈 것인가, 회사의 기존 구성원들이 이미 공유하고 있는 공통의 목적은 무엇일까에 대해 거의 반 년 째 생각 중입니다. 

사람들과 기쁨을 나누는 일, 의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게 저의 개인적인 바람인데요, 이 희망을 조직의 '원대한 목적'과 연결시키는 것, 조직 문화는 물론 이익과도 연결시킨다는 것이 쉽지 않네요. (생각만 하고 있다는게 어쩌면 가장 큰 문제일지도..) 그 바람이 어떤 것인지에 대해 설명하는 것보다, 사례를 하나 소개해 드리는게 더 나을 듯 합니다.


아래는 MIT의 Negroponte 교수가 창립한 OLPC 프로젝트에 대해 직접 설명하는 동영상입니다. 많이들 아시다시피 OLPC는 'One Laptop Per Child' 즉 한 명의 어린이에게 한 대의 랩탑(노트북 컴퓨터)을 보급하자는 프로젝트입니다. (프로젝트에 대한 멋진 설명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일단 한 대 씩 주기만 하면 아이들은 사용법을 알아낼 것이고, 제대로 된 교육의 부재라는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라는, 어떻게 보면 다소 무모한 생각으로부터 이 프로젝트는 시작되었습니다. 전기도 콘텐츠도 없는 상황에서 랩탑만 준다고 뭔가 달라질 것이라는 근거는 무엇인지, 100달러 미만으로 어떻게 소프트웨어가 깔린 랩탑을 만들어낼 것인지 등 수많은 난관이 있었죠.


TED follows Nicholas Negroponte to Colombia as he delivers
laptops inside territory once controlled by guerrillas.
His partner? Colombia's Defense Department, who see
One Laptop per Child as an investment in the region.
(And you too can get involved.)


이처럼 무모해보이는 아이디어였지만, 한발씩 한발씩, 조금씩 전진해서 사람들은 이 꿈을 현실로 만들어 냈습니다. 그리고는 동영상에서 보시다시피 굉장히 의미있는 결과가 만들어졌죠. (그리고 이 OLPC 프로젝트는 아마 클라우드 환경이 점차 완성되어감에 따라 더욱 효율적인 프로젝트가 될 것입니다.)


제가 추진 중인 사업도 지금 생각에는 무모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면이 있습니다. 동시에 소비자, 사람들에게 커다란 기쁨과 보람을 줄 수 있는 여지도 있습니다. 그 여지를 더욱 발전시켜서 '우리 회사가 가려는 길은 이런 의미있는 길'이라는 것을 저희 회사의 구성원들과 공유하고, 그 길을 향해 사람들과 열심히 달리는 문화를 만드는 것, 그리고 그렇게 할 때 이익 역시 함께 따라오도록 사업을 꾸미는 것이 제가 하고 싶은 일입니다.



Posted by ecarus
Thoughts2010. 1. 4. 05:12

잘 다니던 대기업을 작년에 그만두고, 작은 벤처(?)에서 일을 시작한지 벌써 반 년이 넘었습니다. 

그때와 달리 올해에는 제가 스스로 새로운 조직을 꾸리고 조직의 문화를 만들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조직당하는 입장에서 조직하는 입장으로 바뀌다보니, 예전에 조직당하던 당시 아쉬웠던 점들이 먼저 생각나더군요.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그 무엇에 의한 지배와 통제'를 근원적인 두려움으로 갖고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이는 절대적인 신, 혹은 절대 권력에 대한 갈망과 회귀를 낳기도 했지만요.) 다시 말해 인간은 만일 자신들이 누군가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면, 통제의 주체는 반드시 자신들이 제어할 수 있는 무엇(something), 혹은 제어할 수 있다고 믿어지는 무엇이기를 희망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조직 운영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 만들어 낸 통제 주체의 한 예가 '인사 평가 시스템'입니다. 조직의 평가 시스템은 지배와 피지배를 드러내는 작은 예이지만, 적절한 예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대기업의 인사 시스템을 겪으면서 '효율성에 지배당하는 인간성'이라는 분석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포함한 조직의 구성원을 통제하기 위해 고과 시스템이나 각종 평가 제도라는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냈는데, 이는 편리하고, 객관적이며, 효율적이기까지 한 장점이 있다고 생각되었죠. 그러나 이를 통한 통제는 '객관성'과 '효율성'의 극대화를 추구하다보니 정작 '인간성'과 '이성'이 경시되고, '규율'과 '논리'만이 중시되는 폐단을 낳았습니다. 결국에는 그 시스템을 처음 고안해낸 인간들마저 시스템의 희생자가 되어갔지요. 

이 시스템에 익숙해지면 조직의 구성원들은 누군가를 보고 평가할 때 '내가 아는 아무개'보다 '시스템에서 어떻게 평가된 아무개'를 먼저 떠올리는 데 익숙해지게 됩니다. 언젠가 제가 시스템을 고안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효율성은 조금 떨어질지 몰라도 (평가/통제 대상으로서의 아무개 보다) 사람 그 자체를 떠올릴 수 있는 시스템, 그리고 '인간의 시선'을 가진 조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이제 그 시험대에 선 셈입니다.

 

또하나의 시험대에도 동시에 서게 되었는데, 조직을 어떤 질서로 운영할 것이냐에 대한 시험대입니다. 

저는 항상 조직을 운영함에 있어서는 '논리'를 기반으로 한 위계를 세우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나이나 직급에 의한 것이 아니라 토론을 통한 논리의 정합성에 따른 위계질서가 바람직하다는 것인데요, 누군가 나를 논리로 설복할 수 있다면 나는 그에 동의하고, 반대로 나의 논리가 상대방의 논리보다 '논리적'이라면 상대방이 나에게 동의하는게 맞다는 것입니다.

만일 쌍방의 논리가 도저히 합일점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평행을 달릴 때, 혹은 토론 당시에는 어느쪽이 논리적인지 확인이 불가능한 경우라면 직급이나 나이에 따르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직급은 업무에 대한 책임의 정도와 대개 비례하고, 나이는 경험과 비례하니 말입니다.) 이처럼 논리를 위계의 기반으로 하는 것은 기존의 조직 문화와는 많이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일반적 조직에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이기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상명하복'의 관습 때문이라면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보다 경험과 지식에서 앞서 있고, 그로부터 비롯된 논리가 아랫사람의 논리보다 탄탄하기 때문에 윗사람을 따르는 것이라면 합리적이겠지만, 무조건 직급에 의한 상명하달식의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면 그 조직의 발전에는 해가 되지 않을까요? 아랫사람이라도 윗사람보다 좋은 논리를 갖고 있다면 윗사람이 그에 동의해 주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따라서, 누가 더 좋은 논리를 갖추고 있는지가 관건이 됩니다. 좋은 논리를 갖추기 위해서는 (1) 지식이 많고, (2)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훈련이 잘 되어 있으며, (3) 다른 사람들보다 한 번 더 생각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따라서 윗사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지금보다 훨씬 더 깊은 연구와 자기계발을 해야겠죠. (다른 말로, 윗사람들은 기존 문화보다 피곤해지는 셈입니다.)

조직의 상하질서는 이처럼 논리, 그리고 논리를 뒷받침하는 지식과 경험, 훈련에 대한 존중(respect)를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나이와 '짬밥'에 대한 무조건적인 respect는 너무 20세기 중반적이니까요.


Posted by eca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