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것은 진중한 관찰로부터 비롯됩니다. 관찰은 대상을 그저 뚫어지게 지켜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꿰뚫어 봄으로써 얻어진 의미를 재조직화하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즉 관찰은 통찰을 위한 것입니다.
이처럼 통찰력을 바탕으로 대상으로부터 의미를 이끌어내는 것은 논문을 쓸 때 '가설 수립'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업계에서는 가설 수립이라는 단계가 대체로 생략되지만, 훌륭한 마케터나 연구원이라면 당연히 이와 비슷한 '감'이라도 갖고 대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가설'과 '감'의 정확성은 대상에 대해 얼마나 정확히 이해하고 공감하고 있는지와 정비례합니다.
이어서 행해지는 여러가지 조사들, 설문조사, 실험, FGI, 관찰조사 등은 학계에서는 대부분 가설의 검증을 위한 방법으로 사용됩니다. 하지만 마케터는 이런 조사 역시 관찰의 방법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바라본다는 것은 단지 눈으로 바라보는 것만 포함하지 않으며, 관심있는 대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 행하는 여러가지 조사 역시 관찰의 한 가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마케터는 처음에 가졌던 가설이 어떤 것이었든간에, 대상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탐구의 목적으로도 조사를 활용해야 합니다. 학계에서의 조사가 검증(verify)과 확증(confirm)을 위한 것이라면, (가설 검증에 덜 부담을 가져도 되는) 업계에서의 조사는 몰랐던 측면을 발견하고자 하는 탐사(explore)의 목적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검증이든 탐사든, 적절한 방법을 이용해서 관찰을 잘 해야 한다는 것까지는 학계와 업계가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무엇을 왜 관찰해야 하는가'에 들어서면 학문적인(academic) 관찰과 실무적인(practical) 관찰은 초점을 달리합니다.
사회과학, 특히 마케팅 분야에 논의를 한정시킨다면, 학문적인 관찰과 연구의 목적은 '대체로' 어떤 현상이 어떤 '원리'로 일어나는지를 규명하고, 이를 일반적인 이론으로 확립하는 데 있습니다.
반면 실무적인 관찰과 연구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원인'을 밝혀내고, 이를 통해 그 현상이 상징하는, 그 현상이 일부를 보여주는 보다 거대한 흐름을 밝혀낸 후 이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을 더 중시합니다.
원리와 원인은 한 글자 차이지만 꽤 큰 차이가 있습니다. 전자가 '이치'와 '불변의 작동 원리'에 대한 것이라면, 후자는 (그 깊숙한 이론보다는) 주변의 '변인', 특히 '통제 가능한 변인'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사회적 현상에 착안하여 시작된 학문적 연구는 그 원리를 밝혀내기 위하여 대체로 인간의 심리 혹은 행동 양태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컨대 소셜미디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이라 해도 기존에 이미 확립된 이론을 바탕으로 가설을 수립하는 경우가 많으며, 소비자 심리와 기존 매체의 이용 행태에 기반하여 연구를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소셜미디어와 기존 매체의 기계적 차이로부터 시작하여, 소비자들이 이를 어떻게 '다르게' 인식하고 사용하는지에 연구의 초점이 맞춰지곤 합니다. 이런 연구의 경우 종종 두루뭉술하고 그닥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 결론으로 끝맺는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소셜미디어에서의 마케팅이 더 효과적인 이유는 소비자들은 주변 지인의 조언을 더 긍정적으로, 덜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심리적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업계의 실무 종사자들 입장에서는 이같은 결론은 매우 불만족스럽게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결론은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내용이거나, 혹은 이미 수많은 사례로부터 입증된 (정확히는 '입증되었다고 느끼는')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와 같은 결론도 학술적으로는 충분히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인들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전파하는 데 있어 소셜미디어는 왜, 어떤 원리로 기존 매체보다 더 효과적인지를 입증하거나, 혹은 비전문가인 지인들끼리의 커뮤니케이션이 왜 전문가가 만들어낸 전문적인 정보보다 더 효과적인지를 밝혀내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실무적인 가설과 연구는 궤를 크게 달리합니다.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에 대해 이론적으로 입증하기 이전부터 업계는 이미 그 중요성을 알고 있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업계의 관심은 '왜 소셜미디어가 중요한가'보다 '어떤 요인이 소셜미디어의 영향력을 증폭시키는가', 혹은 '마케팅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의 종류, 상황, 변수는 무엇인가'에 쏠리게 마련입니다.
종종 업계는 이를 추론하기 위하여 수많은 사례 연구를 동원합니다. 이미 행해진 남들의 마케팅 사례들을 분석함으로써 일반적으로 통용될 수 있다고 믿어지는 몇 가지 방법론을 도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학계의 시각으로 볼 때는 '전혀 완전치도 않고 불안정하며, 일반화될 수 없는' 그야말로 하수로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보면 학계와 업계의 간극은 좁히기 어려운 것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시작점이 다르고, 추구하는 목표가 판이하니까요.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 방법은 서로의 차이를 잘 이해하는 것으로부터 찾을 수 있습니다.
앞에서 학문적인 연구는 현상의 '원리와 이치'에 초점을 맞추고, 업계의 연구는 '원인과 변수'를 중시한다고 설명한 바 있는데, 이 차이로 인하여 양측은 서로 다른 관찰의 범위를 갖게 마련입니다. 학계는 일반화할 수 있는 이치(혹은 이론)를 정립하기 위해 새로운 현상과 기존 현상 간의 차이에 집중합니다. 자연스레 작은 부분들을 세밀히 관찰하는 경향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반면 실무적인 관찰은 작은 부분보다는 현상 자체에 초점을 맞추고, 나아가 그 현상이 속해 있는 더 큰 흐름(트렌드)을 읽어내는 것에 집중합니다. 소셜미디어라는 같은 주제를 놓고서도 '인간과 매체의 특성'을 중시하는 학계와 '소셜미디어가 상징하는 거대한 흐름과 함의'를 분석하는 업계의 차이가 생길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서로의 간극을 좁히고 공승(共勝, 윈윈^^)하기 위해서 먼저 업계는 학계와 함께 공생하는 법을 찾아야 합니다. 실무자들은 학계의 연구가 (앞서 말했듯) 그 목적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이를 자신들이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인지 공부해야 합니다. 학계의 연구가 고루하다고 비판하더라도 그 이후에는 연구를 개선할 방법을 함께 찾아야 합니다. 아울러 기존에 행해지고 있는 업계의 연구 방법이 비생산적이며 올바르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개선점을 찾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논리 없이 행해지는 끝없는 사례연구나, 인구비율의 변화 정도만을 추적하는 단순한 분석 등이 있겠습니다.)
그리고 학계 역시 업계의 통찰을 흡수해야 합니다. 마케팅 분야는 업계와의 협력 없이 학계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대단하고 새로운 이론을 논리적으로 입증해 냈다고 해도 업계에서 확인되기 전에는 효용이 없습니다. 업계가 알고 있는 현상과 사실들을 학계에서 흡수함으로써 업계와 같은 속도로 세상의 변화를 인지해야 합니다. 지금보다 더 열심히 공부함으로써 업계 실무진들로부터 존경받는 연구자가 많아져야 합니다. 이어서 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연구가 무엇인지 알아내서 실제 현장에서 쓰일 수 있는 연구들'도' 해야 합니다.
학자는 연구비를 타기 위한 연구가 아니라, 업계에서 원하는 연구가 무엇인지를 알아내고 진행해야 합니다. 시시한 학술지에라도 실려서 실적을 채우는 데 쓰이는 날림 연구보다, 다소 오래 걸리더라도 기업이 실제 사용하게 되는 연구가 더 값지다는 것을 연구자와 학교 모두 깨달아야 합니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학계와 협력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기 위한 생색내기용 연구비 지원은 그만해야 합니다. 자사의 마케팅 전략이 논리적이라고 매체와 클라이언트에게 주장하기 위해 내세우는 공동 연구는 그만둬야 합니다. 임원과 사장이 함께 어울리기 위한 (그럼으로써 학자연 할 수 있는) 자문교수는 내보내야 합니다.
학계와 업계의 연결은 기업 최일선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기업이 먼저 일선 실무자와 학교를 직접 연결해줌으로써 사용 가능한 연구들이 만들어질 수 있도록 뒷받침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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