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7/24자) '나는가수다'를 보면서,
장혜진씨의 공연을 보고 와닿은 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좋은 노래와 좋은 PT 사이의 공통점에 대한 건데요. 많이들 느끼시는 점이겠지만.
(주: 100% 개인적인 의견입니다.)
1. 진정성
가수가 단지 '노래를 부르는 것'과 노래 속의 이야기를 전달하려고 하는 것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음정, 박자, 테크닉을 완벽히 소화해서 노래를 멋들어지게 부르는 것과, 노래는 다소 '삑사리'가 나더라도 '혼'을 갖고 부르는 것의 차이는 누구나 알아챌 수 있죠. 장혜진씨의 노래는 파워에서는 옥주현씨보다, 기교에서는 박정현씨보다 뛰어나지 않았지만, 장혜진씨의 노래를 듣고 있는 동안은 마치 마주앉아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아마도 가장 큰 차이는 감정 이입일 것이고, 듣는 이로 하여금 감정 이입을 하게 하려면 부르는 사람이 그 노랫말의 주인공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진실된 느낌과 열정을 노래에 쏟아야 할 것입니다.
PT도 마찬가지겠죠. 화려한 슬라이드와 미사여구, 완벽히 짜여진 각본이 아니라, 발표하는 사람의 열정과 스스로에 대한 확신으로부터 비롯된 진정성이 있어야 듣는 사람이 몰입할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이걸 진짜 팔고 싶고, 이건 정말 대박 상품이 될 것이다'라는 것을 입이 아니라 가슴으로 이야기한다면 설사 발표 중간에 몇 군데를 까먹어도, 중간에 말이 꼬여 버벅대도, 진실이 울리면 실수는 사소한 게 됩니다.
2. 음향
들리는 말에 나가수는 편곡은 물론 음향과 세션 등 '좋은 음악'을 전달하는 데 무척 많은 투자를 했다죠. 가수의 진정성이 가장 중요하지만 가수의 노력을 받쳐주는 주변 환경의 중요성도 못지않게 중요할 겁니다.
PT 역시 발표자의 열정과 발표의 내용이 중요하지만, 이를 받쳐주기 위한 다양한 장치들도 중요합니다. 더 중요한 건 그 모든 장치/요소들이 발표와 자연스럽게 어울려야 한다는 점이겠죠. 김범수씨의 무대는 그 파격성과 화려함에서는 최고였지만, 뭔가 자연스럽게 어울리지는 못했던 것 같다고 느낀 건 저뿐이었을까요?
3. 경험
경험이라기보다는 연륜이라고 할까요? 장혜진씨의 노래를 만약 옥주현씨나 소녀시대가 불렀다면 그만큼 와닿을 수 있었을까요? 아니, 과연 그만큼 전달할 수 있었을까요? 가수가 노래를 소화할 수 있는 '경험'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건 청중이 가수/발표자에게 갖는 기대와도 연관됩니다. '저 사람은 노랫말/PT에 감정을 실을 수 있겠구나'라는 느낌이 들게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니까요. 즉, 경험이나 연륜이란 단지 돌발적인 실수를 모면할 수 있는 능력 뿐 아니라, 듣는 사람들에게 'I know what I'm talking about'라는 믿음을 주기 위해서 더 필요할 겁니다.
4. 듣고싶은 내용 vs. 말하고 싶은 내용
옥주현씨의 노래와 인터뷰를 들으면서 문득 든 생각인데요, 옥주현씨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를 부르면서, "노래의 앞부분은 남자를 기다리는 여자의 마음을, 후반에는 돌아오지 않는 남자를 미워하는(?) 적극적인 여자의 마음을 담았다"고 했습니다. (자세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대충 그런 내용이었죠.) 그리고 편곡 역시 그런 분위기를 살린 듯 했습니다만, 저는 노래가 그다지 와닿지가 않더군요. 아마 옥주현씨의 편곡/전달 방향이 제가 이해하던 원곡의 느낌과 다르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파격적인 탱고풍 편곡은 신선했지만, 제가 기대하는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노래는 적어도 그렇게 전달되어서는 안되는 노래라고 생각한거죠.
PT에서도 가장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바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구겨넣는 것'입니다. 아무래도 PT를 준비한 사람은 청중보다 그 주제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으니, 아는 만큼 말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겠습니다만, '무언가를 팔기 위한 PT'라면 내 말은 꾹 참고, 듣는 이가 기대하는 (수준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이 중요하죠.
5. 청중의 몰입
그리고, 가수와 발표자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듣는 이의 집중'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나는가수다'라는 프로그램이 기존 모든 음악 프로그램들과 가장 크게 차별화되는 점이 '시청자들이 집중해서 노래를 듣게 되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돌이켜보면 '음악중심'같은 최근의 가요 프로그램은 물론, 저 옛날의 가요톱텐, 대학가요제 등 그 어떤 음악 프로그램도 '나가수'만큼 시청자로 하여금 진지하게 몰두하도록 만든 적이 없었습니다.
PT에서도 발표자가 청중으로 하여금 처음부터 끝까지 발표에 집중하게 한다면 승리는 따놓은 당상일 겁니다.
무엇이 시청자를 나가수에 집중하게 하는 걸까요? 내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나오는 것도 아니며 대단한 상품을 뿌리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이 프로그램은 집중해서 봐야 해' 라는 느낌을 심어준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PT에서 '이 발표는 집중해서 들어야 해'라는 생각을 미리 갖게 하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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