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에 강남역을 지나다가 미디어폴(뭔지 아시죠?)에 코카콜라 조형물이 붙어있는 걸 보고 아래와 같은 짤막한 트윗을 한 줄 올렸더랬습니다.
 

강남역 '미디어폴'을 이용한 옥외광고. 이건 미디어폴이나 코카콜라 모두에게 도움되지 않는 광고일 듯. 좀더 크리에이티브해 질 수는 없는걸까요? http://post.ly/1Qdy3


이 글은 자동으로 제 페이스북에 올라갔죠. 그리곤 얼마 전 관련 광고대행사분들이 페이스북에 있는 제 글을 보고 언짢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작과는 하등 관련이 없는 제가 감히 '크리에이티브'에 대해 논했기 때문일까요? ^^
 

우선 크리에이티브는, 특히 요즘 같은 마케팅 환경에서의 크리에이티브는 제작팀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전제를 깔고 말씀을 드린다면,
 

옥외 미디어를 포함한 요즘의 미디어 크리에이티브는 단순히 해당 공간에 브랜드나 메시지를 노출시키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심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야 공간과 메시지가 헛돌지 않고, 소비자들이 해당 광고물을 보고+빠져들고+소비하며+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Ambient Media라는 말이 나오게 된거죠.)
 

그리고 이처럼 이야기를 심기 위해서는 '어느 곳'에 '무엇'을 심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강남역이라는 공간과 미디어폴이라는 소재는 적어도 지금까지 나름의 역할을 잘 해오고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 곳에 코카콜라를 붙여놓은 것은 그런 면에서는 패착입니다.
 

미디어폴을 위시하여 전용차로 버스정류장에 크리스마스 시즌 코카콜라 광고물을 붙여놓은 것은 이야기가 아닌 브랜드 상징물에 불과했다고 보여집니다. 이는 강남역+미디어폴이 내포한 이야기와 코카콜라+크리스마스 의 이야기는 완전히 상이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강남역은 크리스마스를 즐기려는 소비자들(타겟)이 많이 모이는 곳이고, 따라서 그 크리스마스에 더 빠져들 수 있게 하기 위해 이런 광고를 집행했다고 말하겠지만, 이는 단순 노출 마케팅에서 한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크리에이티브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같은 공간에서 코카콜라 전단지를 수천 장 인도에 붙이거나 온종일 크리스마스 캐롤을 틀어주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요.
 

크리스마스와 같은 시즌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시즌과 관련된, 그러면서도 다른 브랜드들과 차별화 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려면 차라리 그 규모나 발상의 측면에서 '압도'를 하든가, 그 공간에 잘 녹아드는 이야기를 심었어야 합니다. 이도저도 안되면 차라리 (소프트한) 논란을 일으키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구요.

 

월드컵 개최지였다는 사실을 제외하면, 이 광고가 설치된 공간과 브랜드 간의 직접적 관련은 없어 보이지만
어쨌든 '엄청난 스케일'로 압도한 좋은 예라고 생각됩니다.



'미스터클린'이라는 이 세제 광고는 위의 사례와는 정반대로 스케일과는 전혀 무관하지만,
횡단보도라는 공간에 잘 녹아든 경우입니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생성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이견들이 있겠지만.

 


위의 하이네켄이나 아래의 Sharp TV는 크리스마스 트리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구현한 경우입니다.
저는 디자이너가 아니라 잘 모르지만, 초록색 맥주병을 규모감있게 쌓아두는 것만으로
이야기의 시각화에는 성공한 듯 보입니다. TV를 이용한 트리도 마찬가지구요. (어딘가 백남준 아트가 생각납니다만...)
 


 

그리고, 아래는 강남역의 코카콜라 광고입니다. 다른 분의 블로그에서 가져온 사진도 있고 제가 찍은 것도 있습니다.
(참고로 이 캠페인에 대한 더 많은 사진과 정보는 여기에 가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하이네켄이나 샤프의 경우를 되돌아보면 미디어폴 역시 재미있는 활용이 충분히 가능했으리라 생각됩니다. 적어도 강남역을 상징(?)하는, 콘텐츠를 '내뿜을 수 있는' 소재임에는 분명하니까요. 그러나, 코카콜라 크리스마스 캠페인에서 미디어폴은 한낱 전봇대로 전락하고 맙니다. (미디어폴 안에서 어떤 콘텐츠를 내보내고 있었는지 저는 모르지만, 미디어폴을 들여다보지 않고 그 거리를 지나다니는 행인의 눈에는 그래보인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미디어폴 담당 광고주였다면 화가 났을 듯.)

 

안타깝게도, 이 캠페인은 강남역이 어떤 공간인지, 어떤 이야기를 녹일 수 있는지, 미디어폴이라는 상징 및 기능을 어떻게 이용할지에 대해 고민이 부족했던 캠페인이라고밖에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제 선배님 중 한 분이 그러시더군요. "코카콜라에게는 크리에이티브보다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현하는 것이 1순위였을 것이다." (주: 여기서의 압도적인 느낌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내부 고객을 대상으로 한, 일종의 '자뻑'같은 느낌을 일컫습니다.^^)
 

강남역에 새빨간 코카콜라병(그것도 PVC로 보이는 재질의)과 산타클로스 조형물을 붙인다고 해서 그 공간이 크리스마스 이야기로 채워지는 건 아닙니다. 코카콜라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구요.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는 옥외광고에 대한 규제가 심하고, 그래서 크리에이티브를 발휘하기 어렵다는 점 역시 사실입니다. 남들이 이미 한 걸 따라할 수도 없는 노릇이구요. 
 

하지만, 그래서 크리에이티브가 중요한 것 아닐까요? ^^
 
 
추신: 저도 압니다. 까기가 만들기보다는 훨씬 쉽죠.^^ 하지만 평론가가 잘 만들기까지 하면 제작하는 분들이 더 힘들어지지 않겠어요? ^^


Posted by eca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