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ribbles2009.06.26 15:26

간만의 펌질 하나. chmotors님의 블로그에서 퍼온 글입니다.
술의 기원과 주도(酒道)에 대한 글이 재미있게 설명되어 있네요.

내용이 굉장히 깁니다. 아래는 긴 내용 중 술자리 예절과 술 친구를 가리는 기준에 대한 부분만 발췌를 했구요 (말투는 문어체로 딱딱하지만, 오늘도 곱씹을만한 내용이군요), 기원과 술 문화에 대한 글은 더 밑에 붙였습니다. 원문은 여기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술자리 예절

1. 기뻐서 마실 때는 절제가 있어야 하고,
2. 피로해서 마실 때는 조용해야 하며,
3. 점잖은 자리에서 마실 때에는 소세한 풍조가 있어햐 하고,
4. 난잡한 자리에 마실 때에는 금약이 있어야 한다.
5. 새로 만난 사람과 마실 때에는 한아(閒雅)하게 마셔야 하며,
    (閑은 한가함이 아니라 정숙함, 진솔함을 의미)
6. 잡객들과 마실 때에는 재빨리 꽁무니를 빼야 한다.

 

술 친구를 가리는 기준

1. 말을 잘 하면서도 아첨하지 않는 사람
2. 기백이 약한 듯 해도 어느 한군데에 쏠리지 않는 사람
3. 눈짓으로 하는 주령(酒令, 신호)을 보고 잘못된 일을 되풀이하지 않는 사람
4. 주령이 시행되면 온 좌중에 호응하고 나오는 사람
5. 주령을 들으면 즉시 이해하고 재차 문의하지 않는 사람
6. 고상한 해학을 잘 하는 사람
7. 좋지 않은 술잔(이 경우 여자를 포함)을 차지하고도 아무 말이 없는 사람
8. 술을 받게 되어도 술의 좋고 나쁨을 논하지 않는 사람
9. 술을 들면서 거동에 실수가 없는 사람
10. 아예 만취가 되었어도 술잔을 둘러엎지 않는 사람
11. 제목에 따라 시를 지을 수 있는 사람
12. 술을 이기지 못하면서도 흥취가 밤새도록 만발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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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인류 역사와 함께 탄생했다. 인류가 목축과 농경을 영위하기 이전인 수렵, 채취 시대에는 과실주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과실이나 벌꿀과 같은 당분을 함유하는 액체에 공기 중의 효모가 들어가면 자연적으로 발효하여 알코올을 함유하는 액체가 된다. 원시시대의 술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모두 그러한 형태의 술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최초로 술을 빚은 생명체는 사람이 아닌 원숭이로 알려져 있다. 원숭이가 나뭇가지의 갈라진 틈이나 바위의 움푹 패인 곳에 저장해둔 과실이 우연히 발효된 것을 인간이 먹어보고 맛이 좋아 계속 만들어 먹었다. 이 술을 일명 원주(猿酒)라고 한다.

시대별로 주종의 변천을 살펴보면, 수렵, 채취시대의 술은 과실주였고, 유목시대에는 가축의 젖으로 젖술(乳酒)이 만들어졌다. 곡물을 원료로 하는 곡주는 농경시대에 들어와서야 탄생했다. 청주나 맥주와 같은 곡류 양조주는 정착농경이 시작되어 녹말을 당화시키는 기법이 개발된 후에야 가능했다. 소주나 위스키와 같은 증류주는 가장 후대에 와서 제조된 술이다.

술의 원료는 그 나라의 주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술로 만들 수 없는 어패류나 해수(海獸)를 주식으로 하는 에스키모족들은 술이 없었다고 한다. 또한 원료가 있다고 하더라도 종교상 금주를 하는 나라의 양조술은 매우 뒤떨어져 있다.


1. 신화속의 술

이집트 신화에 의하면, 이시스 여신의 남편인 오시리스가 보리로 맥주를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오시리스는 누이인 이시스와 결혼을 하고 이집트를 통치한 왕이었으나 동생에게 살해되어 사자(死者) 나라의 왕이 된다. 이 신은 농경의례와 결부되어 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는데 보리로 술을 빚는 법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디오니소스가 술의 시조라고 한다. 디오니소스는 로마 신화에서는 주신(酒神) 바커스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술을 뜻하는 명칭인 '박카스'에서 유래한 것이다.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생후 6개월만에 어머니 세멜레가 죽자 요정들의 정성으로 양육되었고, 트라키아 지방의 뉘사 산에서 성장했다. 디오니소스는 이 산에서 숲속을 뛰어다니다가 포도를 발견하고 포도주를 처음으로 만들어 냈다고 한다. 뉘사산에서의 수업을 마치고 그리스로 돌아왔을 때, 아티카에 사는 이카리오스란 사람이 그를 환대하였으므로 그에게 선물로 포도나무를 주고 포도주 담그는 법을 일러주었다고 한다. 이카리오스는 기뻐하면서 그 신기한 포도주를 근처의 목동들에게 한 잔씩 권했다. 맛이 좋아 많이 마신 목동들은 술에 취해 눈앞이 아찔아찔해지자 독약을 타먹인 줄 알고 이카리오스를 죽이고 말았다. 최초로 술의 순교자가 된 셈이다. 지금도 그리스의 아티카에서는 '디오니소스제'라는 포도주제가 12월에 거행되고 있다.

인도신화에서는 소마신(蘇麻神)이 감로주를 처음 빚었다고 하는데 이것을 마시면 고뇌를 잊고 장수하며 또 죽은 사람을 부활시킨다고 한다.

구약성서에서는 노아가 방주를 만들어 온 세계의 동식물을 다시 살게 했을 때 그 중 포도의 씨도 들어 있었다고 적고 있다. 이 때 하나님이 노아에게 포도의 재배법과 포도주 제조법을 일러주었다고 한다. 예수도 가나안의 혼례에 스스로 술을 빚었으며, 최후의 만찬에선 제자와 함께 포도주를 마셨다고 한다.

중국에서는 하(夏)나라의 시조 우왕 때 의적(儀狄)이 처음 곡류로 술을 빚어 왕에게 헌상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후 의적은 주신(酒神)으로 숭배되고 그의 이름은 술의 다른 명칭이 되었다. 또한 진(晉)나라의 강통(江統)은 주고(酒誥)라는 책에서 “술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기는 상황(上皇 : 천지개벽과 함께 태어난 사람) 때부터이고 제녀(帝女) 때 성숙되었다”라고 적어 인류가 탄생하면서부터 술이 만들어졌음을 시사했다.그러나 구체적으로 중국에서 처음 술을 빚기 시작한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8,000년 전인 황하문명 때부터인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시기의 유적지에서 발굴된 주기(酒器: 술을 발효시킬 때 사용하거나 술을 담아두던 용기)가 당시 필요한 용기의 26%나 되었을 정도로 술은 이 시기에 일상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우리의 단군신화에 의하면 단군께서 백성들에게 농사하는 법을 가르쳤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가을에 햇곡이 나면 높은 산에 올라 신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햇곡으로 만든 술과 떡, 그리고 소를 잡아서 제물로 썼다고 한다. 이 제사를 신이 가르쳐 준 농사법에 의해서 지은 것이란 뜻에서 신농제(神農祭)라 했으며, 소는 양념을 넣지 않고 국으로 끓여 참배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먹게 했다고 한다. 먹을 때 소금만으로 간을 맞추어 먹게 했으며, 이국을 신농탕(神農湯, 설렁탕의 기원이란 설도 있음)이라고 했고, 햇곡으로 빚은 술을 신농주(神農酒)라 일컬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술인 막걸리라고 하는 것과 연관이 있는 듯하다.

 

2. 문헌상의 술

중국의 고서 전국책(戰國策:주나라 안왕에서부터 진시황 때까지 2백40여 년 간의 역사를 기록한 책)에는 술에 대한 기록을 다음과 같이 수록하고 있다.
"옛날 황제의 딸 의적이 술을 맛있게 만들어 우왕(하(夏)나라의 왕)에게 올렸더니 우왕이 이를 맛보고는 후세에 반드시 이 술로 나라를 망치는 자가있을 것이라고 말하고는 술을 끊고 의적을 멀리 하였다."

이 글에서 보면 중국에는 하나라 때인 기원전 약 2천년대에 이미 술이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중국의 문헌에는 우왕때에 제후를 소집하여 도산회(塗山會)라는 모임을 가졌을 때 특히 단군의 자손을 초청했다는 것이 있는데, 이는 술을 매개로 정치적인 왕래가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문헌에 최초로 등장한 것은 고삼국사기이다. 그 중 동명성왕의 건국담 속에 술에 얽힌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하백(河伯)의 세 딸 유화(柳花), 훤화(萱花), 위화(葦花)가 더위를 피해 청하(지금의 압록강)의 웅심연에서 놀고 있었다. 이때 천제(天帝)의 아들 해모수가 세 처녀를 보고    아름다움에 도취되어 신하를 시켜 가까이하려고 하였으나 그녀들은 응하지 않았다. 그 뒤 해모수는 신하의 말을 듣고 새로 웅장한 궁전을 짓고 그녀들을 초청하였다. 초대에 응한 세 처녀가 술대접을 받고 만취한 후 돌아가려 하자 해모수는 앞을 가로막고 하소연을 하였다. 세 처녀가 놀라 달아났는데, 그 중 유화만이 해모수에게 잡혀 궁전에서 잠을 자게 되어 정이 들고 말
았다. 그 뒤 주몽을 낳게 되었다는 것이 동명성왕의 건국담이다.

이 신화를 통해 술이 아득한 옛날 생성되었음은 알 수 있으나 술을 빚었다는 사실만을 알 수 있을 뿐 그밖에 재료나 방법에는 언급이 없어 어떠한 술이었는진 알 길이 없다.

동양에서 술의 시조가 의적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이것이 한낱 전설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설파한 사람이 이조 광해군 때의 학자 서유거다. 그는 그의 저서 <임원경제> 중 '주례총서(酒禮總敍)'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술의 기원으로 말하면 지금 이를 분명히 밝힐 도리는 없으나 글자가 생기기 이전에 이미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를 역사책에서 더듬어 보면 술의 기원에 대해 기술된 것이 있으나 근거가 희박해서 전설에 지나지 않는 것이며, 따라서 고증할 길조차 없어 어느것이 정말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고서에 기재된 것을 보면 술의 연유에는 다섯 가지가 있다고 보여진다.

    1. 의적이 처음 술을 빚엇다는 것은 우왕 때의 일이며,
    2. <요주천종(堯酒千鍾)>에는 술을 요제(전설상의 황제) 때에 만들었다고 하며,
    3. <신농본초(神農本草)>의 술에 대한 대목에서는 황제 내경(전설상의 황제)이 술을
        다스렸다고 되어 있어 의적이 처음 술을 빚었다는 것은 믿을 수 없으며,
    4. 다른 책에는 하늘에 주성(酒星)이 있으니 술을 빚는 것은 하늘이나 땅이 모두 같다고
        하며,
    5. 두강(杜康)이 빚었다고 해서 두강주란 말이 있다는 것이다.

옛 풍습에 음식을 먹을 때는 먼저 술로 제사를 지내 왔지만 누구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인지조차 전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도 그 기원을 알기는 힘든 것으로 보인다. 중국에서 전해지는 술의 기원은 애매한 것이며 태고적에 술이 만들어지고 차차 개량되어 온 것으로밖에는 볼 수 없는 셈이다.


3. 우리술의 역사

술의 기원이 인류사회에서 민족의 형성과 더불어 원시시대 이래 자연발생적으로 출현하였던 을묘의 일종이라는 견해가 오늘날 지배적으로 대두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고삼국사기(古三國史記)>에서 밝혀지고 있는 바와 같이 고구려를 세운 주몽 또는 동명성왕의 건국신화 가운데 천제의 아들 해모수가 하백의 큰 딸 유화(柳花)와 인연을 맺는데 술이 등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의 술의 기원 또한 신화 속에서 뒷받침되고 있는 것이다.

삼국 형성기에 이미 전래곡주(傳來穀酒)가 그 바탕을 이루어 예,부여,진한,마한 사회를 비롯하여 고구려에서 제천, 영고, 제귀신 동맹등 제행사(諸行事)에서 주야음주가무(晝夜飮酒歌舞)한 바 있었고 특히 고구려에서는 건국 초기(A.D.28년)에 지주(旨酒)를 만들어 한나라의 요동태수를 물리치는 등 주조기술이 뛰어나 중국인들 사이에 자청선장양(自菁善藏釀)하는 나라로 주목을 받은 바도 있었다.

이 때에 이미 우리나라는 주국(酒麴)과 맥아(麥芽)로 술빚는 방법을 익히고 있었고, 이 주국을 이용하여 곡주를 빚는 기술을 일본 응신 천황때에 백제의 인번등을 통하여 우리나라의 주조기술이 일본에 이전되엇던 까닭에 후세에 가서 주신으로 추앙을 받은 사례가 일본의 <고사기(古事記)>에서 확인되었다.

삼국시대 후기에는 백제의 주조기술이 중국과 대등할 정도로 발전을 보아 <주서(周書)>에는 주(酒) 예문화(醴文化:감주문화)가 중국과 대등하였다는 사실이 전해지고 있었고, 이에 따라 주국을 이용하여 청주/탁주가 빚어지고 또 맥아 또는 주국을 이용한 감주가 빚어지고 있었다는 것이 확인되고 있다. 그 뿐 아니라 이 시기에는 신라 청주를 비롯하여 고구려 청주가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의 고하주를 낳게 하였거나 당대의 문사들 사이에서 애상(愛賞)되고 있었다.

통일신라시대로 내려오면 곡주류의 여러 주품들이 개발되기 시작하엿고 상류사회에서는 청주류가 성행되고 있었으며 술은 간장, 된장, 젓갈등과 함께 기본 폐백음식으로 이용되고 있엇을 뿐 아니라 그밖에 고등발효식품들과 함께 양념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고려시대로 내려오면 전래의 곡주류 양조법은 그 정착차원을 넘어서 전기(前期)중에 청주류, 탁주류, 중양주류, 재주류(막걸리), 감주류등의 전통적인 주류의 양조기술은 더욱 심화되었고, 과실류등을 혼양하는 혼양주조법이 새로 개발됨과 동시에 약재를 혼양한 약용혼양주조법도 아울러 자리를 잡고 있었고, 재제주류(再製酒類)에 속하는 자주류(煮酒類) 양조기술 또한 정착을 보고 있다. 주국(酒麴)의 종류도 다양화되고 전래의 소맥국(小麥麴) 위주에서 미국(米麴)이 병행되고 있었으며, 미국을 이용한 특별한 술로는 이화주(梨花酒)가 정착되고 있었다.

곡주양조법을 바탕으로 하는 양조기술이 고급화됨에 따라 주조사상 주목할 일은 조선
조까지 전해지고 있었던 유명주품의 명칭이 고려조에서 형성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고급 청주류로 황금주(黃金酒), 벽향주, 삼해주(三亥酒), 유하주(流霞酒), 춘주(春酒), 녹파주(綠波酒), 구하주(九霞酒)등을 비롯하여 우리나라의 청주의 대표로 알려져 왔던 방문주(方文酒:일명 백하주(百霞酒))가 이때에 이미 자리잡고 있었고, 조정에서는 특급 청주류인 청법주(淸法酒)와 선온주가 보편화되고 있었다. 또한 삼중양조법을 바탕으로 한 삼해주, 춘주 등의 개발은 양조기술의 고도화에 따른 소산물의 하나였다.

탁주류 가운데서도 우리나라 고유의 특급탁주로 내외에 알려졌던 이화주(梨花酒)도 이 때에 정착을 본 것이며, 혼탁주류에 속하는 부의주, 녹의주 또한 고려조에서부터 그 맥이 이어진 것이었다. 양용혼양주로 이름난 계주(桂酒), 두주(杜酒), 초주(椒酒), 초백주(椒栢酒), 창포주(菖蒲酒), 애주(艾酒)등이 또한 이때에 자리잡은 술들이고 과실및 화엽입주법(花葉入酒法)을 바탕으로 한 혼양주로는 국화주(菊花酒), 죽엽주(竹葉酒), 백자주(栢子酒), 송주(松酒), 오가피주(五加皮酒)를 비롯하여 포도주가 있었다. 그 밖에도 중탕법을 새로 도입하여 재제주류인 자주류(煮酒類) 또한 고려조에서 비롯된 것들의 하나이다.

고려시대가 마침 곡주양주문화의 성숙기를 맞이하였던 것은 국내적으론 양조기술의 축적의 결과라 할 수 있었겠지만 또 하나의 중요원인으로 분석되고 있는 것은 국내적으로 안정세가 유지되고 있었던 반면에 국력의 신장과 더불어 대외적인 교섭이 활발해진 것도 그 원인으로 찾아 볼 수 있다. 이를테면 고려시대 전기중에 유입된 외래주만 보더라도 북방계민족으로부터는 중산주(中山酒)를 비롯한 행인자법주(杏仁煮法酒), 계향어주(桂香御酒) 등 유명 청주 및 약용자주가 유입되고 있었고, 멀리 남만사회로부터는 화주(花酒)란 과실주문화가 흘러오고 있었다.

이와 같이 대외주의 접촉이 활발해지는 가운데 고려조 후기로 접어들면 이와같은 움직임은 더욱 확산되어 몽고와의 접촉을 통하여 마유주문화를 접수하였고, 중국 원나라를 거쳐 멀리 서역사회의 포도주문화를 수용하기에 이르렀으며, 중국으로부터는 계속 특급 청주류인 상존주(上尊酒), 백주(白酒)등이 유입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움직임 속에서 우리나라 주류사상 중요한계기가 되었던 것은 증류주 문화가 유입되었다는 사실이다.

고려 말엽에 유입된 증류주 문화의 유입경로를 보면 아라기주 문화가 몽고 또는 대식상인을 통하여 충렬왕 초기중에 유입하였고, 뒤이어 원나라와의 교섭이 활발해지는 동안 중국에서 창시된 소주문화가 흘러 들어왔다. 이들 증류주 문화가 유입되자마자 곧바로 이 땅에 증류주 문화가 개화되었고 증류주 문화는 정착과 동시에 급속도로 발전하여 증류법을 바탕으로 한 노주(露酒)가 탄생하였고, 이 증류법을 바탕으로 한 재제주류 또한 속속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이 때에 개발된 것 중 일차증류주로는 노주와 함께 홍로(紅酒)가 있었고 고차증류주로는 감홍로(甘紅露) 등이 있었다.

마침내 고려사회에서는 전래의 양조곡주문화에 증류주문화를 추가하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고려사회는 양대주류문화권을 완성함으로써 우리나라 전래의 주품들의 틀이 이 때에 이루어져 그 틀이 조선시대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었다.

조선시대로 내려와서도 고려시대까지 마련되었던 주품들의 틀 그대로 이어지는 가운데 전기중에는 양조기술면에서 점차 고급화하는 경향이 뚜렷하여져 상류사회에서는 중양주법을 존중하는 한편 양조원료에 있어서도 갱미(粳米) 위주에서 점미(粘米)로의 전환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었다. 이 때의 우량주로 손꼽던 주품으로는 삼해주를 비롯하여 백하주, 이화주, 백자주, 호도주(胡桃酒), 하향주, 청감주(淸甘酒), 자주(煮酒), 국화주등이 있었다. 특히 고려시대 말엽에 와서 정착되었던 증류주는 조선조에 들어서서 급속도로 파급되어 세종대를 중심으로 노주문화는 점차 국제화 단계로 발전하여 일본, 중국 등으로 소주의 수출과 함께 기술 이전이 병행되고 잇었다.

조선조 후기로 접어들면서는 지방주의 전성기를 맞이하여 비전(秘傳)되고 있었던 지방주품들이 노춝되기 시작하였고, 이때의 유명주 대열데 등록되어 있었던 주품중에는 호산춘, 약산춘(藥山春 서울), 노산춘(魯山春 충청), 벽향주(碧香酒) 평안) 등을 손꼽을 수 있다. 특히 전기까지의 국제화 관계로 치닫고 있었던 증류주는 고급양조주의 술덧까지 소주로 전용되는 기현상을 빚어 서울 공덕동에 자리잡고 있었던 삼해주 술도가에서는 이들 삼해주를 모조리 소주로 고아 내는 술덧으로 애용하였다 하니 증류주에 대한 기호적 변화를 짐작할 만하다. 이와 같이 조선조 후기에 증류법을 이용한 주류 개발의 전성기를 맞이함에 따라 우리나라 주류의 구성도 크게 변화되었다.

증류주는 조선조 후기까지에 발전을 계속했으며, 증류주의 음용(飮用)이 성행되었던 조선조에서는 이를 뒷받침하듯 색다른 일화도 적지 않게 전해지고 있었고, 그 가운데는 고추가 유입된 직후에 소주맛만도 강렬한 터에 한때 소주에다 고춧가루를 타서 마시는 버릇이 성행되었고 이로 인하여 죽거나 병을 앓게 된 사람도 상당히 있었다는 사실도 있다.이 때문에 그의 대응방법으로 본초학 분야에서는 소주독을 다루는 처방과 함께 술에 취하지 않는 방법, 또한 술을 빨리 깨게 하는 처방들이 나타났음은 물론이거니와 소주의 음용법이 등장하게 되었다.

소주를 한잔 마시고 냉수를 한잔 마시는 방법, 또 소주에 얼음을 넣거나 꿀을 타서 마시는 등 오늘날의 서구사회의 칵테일 방식을 무색케 하는 처방이 가사서에서 속출하였다. 그 뿐 아니라 정다산(丁茶山) 같은 사람은 전국의 소주고리(古里)를 모조리 거두어들이기를 조정에 청하였고, 이익 같은 분은 큰 소주도가에서 소비하는 양곡만도 일년의 비용이 수천 두에 달하고 있고 이것은 빈호 10년의 양식에 해당한다 하여 한탄하기도 하였다.

전라, 황해의 이강고와 같은 자주류는 고종 19년 2월에 있었던 한미통산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미국을 대표한 전권대사(슈펠트)와 청국사신이 합석한 만찬의 자리에서 우리나라 쪽에서 내놓은 음식으로 전복, 백자(栢子), 구기자차, 약반(藥飯), 조악(助岳), 정과(正果), 원소병(圓小餠), 다식등과 함께 동참되고 이로 인하여 우리나라 음식물에 매혹당했던 일들은 이강고와 같은 전통주가 있었고, 또한 자랑할 줄 아는 주체의식이 있었던 사건이 아닌가 한다.

이와같이 증류주류가 성행되는 가운데서도 한말까지 증류주류와 함께 양조곡주류의 뿌리는 계속 이어졌고 서민사회에서는 상대(上代) 이래 전승을 거듭하였던 속성 재주(막걸리)가 보편화되고 있었지만, 한말에 이르러 개항과 함께 강대국과의 통상협정이 체결되면서 우리나라에는 새로운 외래주의 물결이 물밀듯이 상륙하기 시작하였다.

이런 상황 변화 속에서도 전래주는 그 맥을 이어왔지만, 주조기술의 국제화를 예견하듯 조선조 말기 서유규, 이규경, 최한기 등은 중국계의 유명주를 집중적으로 분석하여, 주국의 개선 양조기술의 개량 등 우리나라 전통주의 나아갈 바를 암시적으로 제시하는 등의 노력을 한말까지 끊임없이 이어갔다.


4. 주도

주도란 술을 마실 때의 예의로 '주도' 혹은 주례(酒禮)라고도 한다. 어른을 모시고 술을 마시는 예법에 대해 [소학(小學)]에는 다음과 같은 설명이 보인다.

술이 들어오면 자리에서 일어나 주기(酒器)가 놓인 곳으로 가서 절하고 술을 받아야 한다. 감히 제자리에 앉은 채로 어른에게서 술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른이 이를 만류하면 비로소 제자리에 돌아와서 마신다. 어른이 술잔을 들어서 아직도 다 마시지 않았으면 젊은이는 감히마시지 못한다. 어른이 마시고 난 뒤에 마시는 것이 아랫사람의 예의이다.

우리 나라의 사람들은 어른을 모시고 술을 마실 때는 특히 행동을 삼가는데,먼저 어른에게 술잔을 올리고 어른이 술잔을 주시면 반드시 두 손으로 받는다. 또, 어른이 마신 뒤에야 비로소 잔을 비우며, 어른 앞에서 술을 마시지 못하는 것이므로 돌아앉거나,상체를 뒤로 돌려 마시기도 한다. 술잔을 어른께 드리고 술을 따를 때 도포의 도련이 음식물에 닿을까 보아 왼손 으로 옷을 쥐고 오른손으로 따르는 풍속이생겼다. 이런 예법은 현대 소매가 넓지 않은 양복을 입고 살면서도 왼손으로 오른팔 아래 대고 술을 따르는 풍습으로 남아 있다.

술은 임금에서부터 천만에 이르기까지 남녀노소 할 것없이 즐겨 마셨기 때문에 주례(酒禮)는 술과 함께 매우 일찍부터 있었다. 고려도경(高麗圖經)의 향음(鄕飮)조에 따르면, 고려에서는 이 주례 (酒禮)를 매우 중하게 여겼다고 전한다. 잔치 때 신분이 높은 사람은 식탁에 음식을 차려 놓고 의자에 앉아서 술을 마신다. 그러나 신분이 낮으면 좌상(左相)에 음식을 놓고 두 사람이 마주 앉아서 마신다. 잔치에 객이 많으면 좌상을 늘린다. 기혈(器血)은 구리(놋쇠)로 만든 것을 쓰고 어포(魚脯), 육포(肉脯), 생선, 나물 등을 잡연(雜然)하게 늘어놓고 있다. 그리고 주행(酒行)에 절도가 없어서 많이 권하는 것을 예(禮)로 안다. 또, 사소절에는 술이 아무리 독하더라도 눈살을 찌푸리고 못 마땅한 기색을 해서는 안된다 라고 하였다. 또한 술은 빨리 마셔서도 안 되고, 혀로 입술을 빨아서도 안된다고 하였다.

박지원의 양반전에는 술 마실 때 수염까지 빨지 말라 하고 있다. 술을 마셔 얼굴이 붉게 해서도 안 되며, 손으로 찌꺼기를 긁어먹지 말고 혀로 술사발을 핥아서도 안 된다, 남에게 술을 굳이 권하지 말며 어른이 나에게 굳이 권할 때는 아무리 사양해도 안되거든 입술만 적시는 것이 좋다고 적고있다.

남에게 술을 따를 때는 술잔에 가득 부어야 하며, '술은 술잔에 차야 맛'이라고 하는 말이 지금도 쓰인다. 그래서 '술은 차야 맛'이라 할 때는 술을 차게 해서 마시는 것이 좋다는 뜻도 되고, 술은 술잔에 가득 차야 된다는 이중의 의미를 가진다.'술은 차야 맛이고 임은 품안에 들어야 맛'이라는 속담도 이런 데서 생긴 것이다.


5. 동양의 주도

모두 다 아는 바와 같이 우리네 주도에서는 상대편에게 먼저 술잔을 권하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다. 그것은 오랜만에 만난 벗에게 보이는 우정의 표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곰 다르다. 술잔을 권하는 방식에는 차이가 없지만, 실로 코딱지만한 잔으로 병아리 눈물 정도의 술을 홀짝홀짝 받아 마시가란 감질이 날 지경. 그리하여 간에 기별이 가기까지는 밤 새워 마셔도 오히려 부족할 판국이다.

중국에서는 아예 술잔을 권하는 법이 없다. 그들의 주도에 따르면 상대편에게 잔을 권하는 것은 예를 잃는 것이 된다. 각자 자기 잔에 술이 가득 부어지면 잔을 들어올려 '건배'를 하고, 또 술을 마신 뒤에도 자기 잔은 자기 앞에 놓아야 하는데, '건배'의 말이 오가면 잔에 담긴 술은 남김없이 쭉 들이켜야 한다. 때로 조금만 마시고 싶을 경우에는 '스위' (조금만이라는 뜻이라든가?)라는 말로 양해를 구하고 서로가 약간씩 마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 주도에 한가지 재미있는 현상이 있다면, 그것은 술을 들 때, 아니 들고 싶을 때 자기 혼자 들이켜는 것이 아니라 꼭 상대편과 함께 들자고 권하는 인사말이다. 인사말이라야 방금 말한 바 '간뻬이'나 스위' 둘 중의 어느 하나이겠지만, 그 인사말에는 우리는 어딘지 모르게 대륙적인 기질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6. 일본의 주도

일본식의 안주는 한마디로 말해서 빛깔의 안주요, 술상에 공식처럼 올르는 것은 생선회이다. 그 생선회도 가지가지. 넓은 접시에 울긋불긋 야채류를 올려놓은 그 솜씨는 마치 '먹는 예술품'을 보는 듯하다. 솔직히 말해서 일본식 안주는 안주 그 자체를 먹는 것이 아니라 빛깔을 먹는다는 편이 실감이 가는 표현일는지 모른다.

일본 민족은 원래 색을 즐기는 민족인 성싶다. 술상에 같이 앉는 여색(女色) 또한 빛깔로 단장한 의상이다. 그 '기모노'부터가 그렇다. 색으로 단장한 '기모노'를 앉혀 놓고, 갖가지 색의 안주를 든다는 것은 마치 색을 감상하면서 빛깔을 먹는 일과 다름이없다.

색이라는 것은 본래 솔직담백함을 나타낸다. 그러나 색은 오래가면 퇴색하기 마련이다.
쌈빡한 맛은 있지만 오래 두고 음미할 것은 못 된다. 이러한 의미로 본다면 일본인들이 색을 즐긴다는 것은 그것이 곧 그들의 민족성과도 어떤 면에서 일맥상통한 점이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 가만히 보면 일본인들의 빛깔의 의미, 그것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솔직담백한 기질을 갖고 있는 것 같아. 말하자면 왜어(倭語)로 '앗사리'하다는 얘기가 되겠는데, 그 '앗
사리'하다는 것은 빛깔로 말하자면 원색이 될 것이다. 예를 들면 일본의 복고정신을 부르짖다가 제 뜻대로 안 된다고 할복자살한 미시마 유끼오 같은 기질이 바로 그러한 기질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한편 그 솔직담백한 기질은 일단 이해관계가 계속되면 점차 퇴색되어 가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러한 현상은 지나간 한일관계사만 보더라도능히 짐작할 만한 일이다. 그렇게 좋던 우정도 한번 금이 가면 그 무사도 정신이라든가 뭐라든가 하는 그런 정신으로 한칼에 우정을 끊는 예를 우리는 일본의 역사소설에서 흔히 접하게 된다. 그것은 결국 빛깔이 퇴색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 아닐지 모르겠다.

더욱이 일본식 술은 여인들의 애교 바람에 넘어가는 술이다. 빛깔로 점철된 안주는 먹는 것이 아닌 보는 안주요, 술은 영딘들의 애교맛에 저절로 목구멍을 넘어가는 술이고 보면, 그네들에 있어서는 안주야말로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고, 그리하여 실제로 애교, 그것은 곧 안주가 되어 있는 것이다.


7. 중국의 주도

일본 술이 빛깔과 애교의 술이라고 한다면 중국의 술은 요리와 정(情)의 술이다. 술상에 나오는 요리만도 열 가지가 넘는다. 그것도 우리처럼 한 상에 모두 차려놓고 이것저것 제 맘대로 먹는 안주가 아니라 한 가지씩 차례차례로 들여오는 안주요, 원탁을 돌려가며 나누어 먹는 정다운 안주인 것이다. 요리하면 중국을 연상케 한다더니, 이 말에 그리 큰 거짓은 없을 성싶다. 어느 안주를 입에 넣어도 별미요, 다음에 나올 요리의 별미를 기다리는 바람에 더욱 마시게 되는 술이다. 때문에 안주는 맛만 보고 넘겨야 한다. 한 가지 안주를 한꺼번에 먹고 나면 다음 안주의 맛은 놓치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배가 불러서 다음 안주는 거들떠보기조차 싫어지게 된다.

중국인들의 주량은 또한 대단하지만, 거긋이 일면 대도와 자연을 터득키 위한 그들의 대륙적 기질과 통하는 일면일지도 모른다. 비록 내일 삼수감산(三水甲山)을 갈망정 오늘의 이 술좌석만은 충분히 즐기려 하고 주빈(主賓)에게 그러한 즐거움을 흠뻑 맛보여 주려는 성의가 엿보이는 술이기도 한 것이다.

그에 비하면 서양은 자기 것을 스스로가 따라 마시는 술,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철두철미 에고이즘이 낳은 주도이기도 하다. 주도 또한 풍류라는데, 그 메마른 자작(自酌)의 술에 무슨 풍류가 있으며 인간의 정이 오갈 것인가. 서양식 자작의 주도는 결국 개인주의를 낳았고, 그 개인주의는 곧 오늘의 비인간화라는 비극을 낳고 말지 않았는가. 정으로 통하는 인간화에는 동양의 주도가 그 한몫을 할 것같이 생각된다.


8. 음주문화 (1) 독일

파리의 유명한 술집 '해리즈 뉴욕 바'에 걸려 있는 글귀 속에 서양인의 음주관이 잘 나타나 있다.

"걱정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당신이 성공할 것이냐, 성공하지 못할 것이냐이다.
성공할 것이라면 걱정할 까닭이 없다.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면 당신의 걱정은 두 가지다. 건강이 유지될 것이냐, 그렇지 않으면 병들 것이냐.
건강할 수 있다면 걱정할 까닭이 없다. 만일 당신이 병들었다면 걱정할 것은 또 다시 두 가지가 된다. 회생할 것이냐, 죽어 버릴 것이냐.
회생한다면 무슨 걱정이랴. 당신이 죽는다고 치면 또다시 걱정 거리는 또 다시 두 가지이다. 천당에 갈 것이냐, 지옥에 떨어질 것이냐.
천당에 간다면 걱정할 것이 없고, 지옥에 떨어진다면 그 곳에 먼저 가 있을 당신의 옛 술친구들과 악수를 하기 바빠 걱정할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것이다."


맥주의 나라 독일은 음주가 생활의 일부다. 맥주가 이들의 기록에 등장하는 것은 10세기쯤. 그러니까 천 년 정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맥주를 마신 역사가 오래된 만큼 독일인의 술문화 또한 상당히 성숙됐다고 볼 수 있다. 성숙된 독일의 음주 문화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음주는 대화를 즐기기 위한 하나의 도구다. 라인강변에 자리자고 있는 쾰른과 뒤셀도르프의 술집 거리는 주말이면 새벽 2시까지 흥청거린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취흥이 도도해져도 결코 고함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맥주는 대회를 윤기있게 하는 촉매제 역할만을 하는 것이다.

둘째, 음주는 하되 법 테두리를 지킨다. 독일에는 곳곳에 비어가르텐으로 불리는 맥주집이 산재해 있고 주택가에도 술집이 자리잡고 있다. 이 맥주집들이 아무런 문제없이 영업을 하는 데는 사생활 보호를 위해 밤 10시 반 이후에는 옥외에서는 술을 팔지 못하도록 하는 엄격한 법이 있고 이를 업주들이 철저히 지킨다는 것이다. 주택가의 비어카르텐이 인기를 끄는 데는 음주운전을 피하려는 독일인들의 지혜도 배어 있다. 독일인들은 요즘 술자리가 있는 날이면 으레 순번을 정해 그 날의 운전자 한 명을 정하고 이 운전자는 술자리에서 대화만 즐기되 음주는 거의 하지 않는다. 엄격한 독일 경찰의 법집행과 그에 걸맞는 독일인의 합리적인 음주문화가 형성된 것이다.

셋째, 더치페이로 음주량을 조절한다. 독일의 맥주는 유난히 구수하고 맛이 좋다. 16세기에 제정된 독일 특유의 맥주 순수법에 따라 맥주보리에다 호프와 효모, 물만으로 맥주를 숙성시키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번 마시게 되면 구수한 맛에 빠져 폭음하게 될 것 같은데 현실은 다르다. 독일의 술집에서는 술값 계산을 치사하게(?) 각자 해야 한다. 따라서 남에게 술을 강요하고 싶으면 자기가 술을 사야만 한다. 자연히 강권이나 폭음하는 술자리는 거의 없고 주량은 스스로의 주머니 사정에 따라 절제될 수밖에 없다. 뮌헨의 10월 축제를 보면 보름 동안 7백만 명이라는 대규모 인파가 전세계에서 몰려와 독일의 맥주만을 위해 축제를 벌인다. 마시고 싶은 만큼 마시고 얘기하고 싶은 만큼 얘기한다. 그러나 불상사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9. 음주문화 (2) 미국

자유의 나라라고 알려져 있는 미국이지만 술에 관한 한 무한정 자유로울 것으로 생각했다간 큰 코 다치기 십상이다. 미국에서는 기본적으로 옥외에서는 술을 마실 수 없다. 미국에 사는 교민들이 가끔 야유회를 하면서 술을 마시다 미국 경찰에 단속을 당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 

운동경기장에 술을 갖고 들어갈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옥외에서 술 마시는데 대한 규제가 엄격하다 보니 심지어는 알코올 중독자들도 거리에서 술을 마실 때는 술 병을 종이 봉투에 감춘 채 몰래 마실 정도다.

술 판매 제도도 매우 엄격해서 지정 업소 이외에서는 술 판매가 금지되어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구멍가게 체인인 세븐일레븐에서도 빵과 음료수 등의 생필품 외에 술은 팔지 않는다. 술을 판매하려면 우선 주정부나 시당국으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대부분의 주에서는 신규허가를 내주지 않고 있다. 다만 술 판매권을 반납한 업소가 있을 경우에 한하여 한정적으로 주류 판매허가를 내주고 있어서 술 판매소는 늘지 않고 있다.

미국에서는 허가 없으면 팔 수 없기 때문에 단골 식당이라 해도 술을 팔지 않는 곳이라면 술을 먹고 싶을 때는 손님이 직접 갖고 가서 먹어야 한다. 술 판매 허가가 있다고 해도 언제나 파는 것이 아니다. 특히 일요일에는 술을 팔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관례다. 일요일에 집에 손님을 초대해 파티를 열 경우라면 토요일에 미리 술을 사두어야 한다.

미국인들의 음주 행태를 보면 우리와 너무도 다른 면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선 주량을 봐도 한국인들보다 훨씬 적게 마신다. 물론 양주가 우리나라 소주에 비하면 독하기는 하지만, 한국인들끼리 양주 한 병을 놓고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마시는 것을 보면 미국인들은 혀를 내두른다.

한국의 남자 직장인들이 퇴근해서 각종 술자리를 갖는 것에 비해 미국인들은 곧바로 헬스클럽에 들르거나 집 근처 공원에서 조깅을 하면서 건강을 다진다. 남자들끼리 몰려 다니는 경우는 드물고 술자리 사교 모임엔 부부동반이 상식이다. 남편들은 일찍 집으로 들어가 부인을 도와 저녁 준비를 하거나 설거지를 거들거나 하지 않으면 언제든 이혼 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아무 곳에서나 술을 살 수 있고, 아무 때나, 아무 데서나 술을 마실 수 있으며 맘껏 취할 수 있고 술 때문에 벌인 실수도 적당히 양해가 되는 한국의 음주문화. 술에 관한 한 한국은 가히 지상천국이 아닌가? 미국의 음주문화는 함께 어울려 술을 마시더라도 서로 잔을 권하거나 2차를 가는 일이 거의 없고 취해서 비틀거릴 정도로 마시는 사람도 드물다.술값도 특정인이 사겠다고 선언하지 않는 한 각자 계산한다. 뉴욕 술집에서는 대부분 '해피 아워(happy hour)'라는걸 설정해 오후 5시반부터 1∼2시간동안 운영한다. 이 시간에는 술값을 절반으로 깎아주거나 간단한 안주를 무료로 제공한다.


10. 음주문화 (3) 스코틀랜드

오후 두 시. 술의 고장답게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의 술집들은 대낮부터 발 디딜 틈도 없다. 시끄러운 음악과 떠드는 소리는 우리나라 술집과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곧 우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들의 음주 습관을 발견할 수 있는데, 술을 마시러 온 것인지 수다를 떨기 위해 온 것인지 구분이 안된다는 점이다. 안주 없이 맥주 한 병, 그리고 평균 두 시간씩 있는다. 남자고 여자고 무슨 할 얘기가 그리 많은지 수다만 떨고 있다. 진열대엔 위스키가 수두룩한데 위스키 마시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간혹 나이든 사람들이 향수에 젖어 위스키를 찾을 뿐이다. 위스키를 스트레이트나 온더락스로 마시는 사람도 없다. 물에 타 홀짝일 뿐이다. 역시 한 잔을 마시는데 최소한 한 시간이다. "하룻밤에 10잔 정도 마시는 사람이 가끔 있는데, 엄청난 술꾼이나 그렇게 마신다." 술집 주인의 말이다.

아무리 여러 명이 와도 술을 병으로 주문하는 법은 없다. 그렇게는 팔지도 않는다. 위스키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폭탄주는 상상도 못한다. '치샤'라고 위스키 한 모금에 맥주 한 모금 마시는 음주법이 있긴 하지만, 이젠 옛날 이야기다. 스코틀랜드는 북쪽에 위치해 여름이면 밤 11시가 되어야 날이 어두워진다. 밤 12시가 지나 집에 돌아갈 때도 취해서 비틀거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취하게 마시질 않으니 모두 차를 몰고 집에 가도 음주 운전 사고는 거의 없다. 교통 경찰이 순찰을 돌지만 술집에서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음주측정을 하는 경우는 없단다. 젊은이들이 모이는 대학가 카페에도 칵테일이나 맥주가 주종이다. 최근에는 보드카가 인기지만 역시 칵테일로 마시기 때문에 알코올 농도는 매우 낮다.

맥주나 칵테일은 일상화됐지만 위스키는 거의 마시지 않는다. 오히려 위스키 회사들이 걱정할 정도다. 위스키를 마셔도 2년 산, 5년산을 가장 많이 마신다. 12년산 이상이면 프리미엄급으로 분류되어 가격도 비싸고 특별한 날에만 마신다고 한다. 하룻밤에 위스키를 한 병 이상 마셔대고 12년산 위스키를 '싸구려' 취급하는 우리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음주 문화임에 틀림없다.


11. 음주문화 (4) 일본

일본의 직장인들이 찾는 대표적인 선술집은 '술이 있는 곳' 이라는 뜻의 이자카야(居酒屋)다. 이런 대중적인 술집은 문 앞에 빨간 종이등(아카초칭-赤提燈)을 내걸어서 눈에 잘 띈다. 큰 길가에 있는 이자카야 '무사시보'는 직장인들이 즐겨 찾는 보편적인 선술집으로 생맥주 한 잔에 4백엔, 간단한 안주 한 접시에 7∼8백엔을 받는다. 모듬 생선회도 한 접시에 1천엔을 넘지 않는다. 절대로 남길 정도는 나오지 않는다. 우리네 눈으로 보면 양이 적겠지만 대신 싸고 깔끔하다.

직장 동료들끼리 모여 술잔을 기울이지만, 술잔을 돌리거나 못한다는 술을 강요하는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각자 자기가 즐기고 술을 시켜 주량 만큼만 마신다. 같이 온 일행 동료끼리 각각 다른 종류의 술을 놓고 마시는 모습은 쉽게 눈에 띈다. 그러면서 상대방이 조금 마시고 아직 바닥이 드러나지 않은 술잔에 상대방이 시킨 술을 따라서 늘 가득 하도록 해 놓는다. 이른바 첨잔 방식이 일본식 주법이다.

술자리는 보통 한 시간이나 길어야 두 시간 정도. 다음 날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 정도만 마시는 경우가 보통이다. 집들이 멀어서 마지막 전차를 놓치면 큰일난다는 현실적인 인식들도 작용한다. 각자 주머니 사정을 생각해서 많이 시키지도 않는다. 따라서 일본의 선술집에서 큰소리를 내거나 취해서 주정하는 사람을 찾기는 쉽지 않다.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무엇보다 꺼려하는 문화 속에서 형성된 술집 풍속도다. 이런 모습은 술값을 치를 때도 그대로 나타난다. '와리깡'이라고 해서 일행이 똑같이 나눠 내거나 자기가 시켜서 먹고 마신 것에 대한 값만 내는 것이 보통이다. 언뜻 야박하게도 보이지만 역시 남에게 신세지기를 삼가고 분수를 지키려는 일본인들의 합리성이 엿보인다. 주머니 사정에도 건강에도 큰 부담을 주지 않는 것이 일본의 음주문화다.


12. 음주문화 (5) 중국

중국에는 모두 4,500여 종의 술이 생산되고 있고, 이 가운데 명주 칭호를 받는 술로는 우리나라에도 널리 알려진 마오타이, 죽엽청주, 오량액을 비롯해 8가지가 있다. 이들 명주의 공통된 특징은 모두 45도 이상의 독한 술로 좋은 물과 양질의 고량을 원료로 하는 순곡주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 같은 명주는 대부분 가짜가 많고 비싸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우리나라의 고량주와 비슷한 바이지우(白酒)를 즐긴다. 백주는 중국인들에게 일상적인 음료수일 뿐 아니라 주요한 교제 수단으로 취급되고 있다. 또한 중국 역사상 영웅 호걸들은 대부분 술을 엄청나게 즐기는 호주가로 묘사돼 있으며, 따라서 지금의 젊은이들에게도 술을 마시는 것이 큰 자랑거리로 여겨지는 경향이 아직 남아 있다.

또 중국에서는 공적이건 사적인 일이건 대부분 술자리에서 결정되며 특히 사업상 상담 책임자가 술이 약할 경우, 우리의 술상무라고 할만한 陪酒員을 동반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러한 음주관습 때문에 중국의 술 산업은 매년 급성장을 보이고 있으며, 현재 전국에 4 만 여 개의 술 공장이 가동 중이다.

백주는 대부분 쌀이나 보리, 옥수수 등 곡식을 주원료로 제조되고 백주를 만드는 곡식은 연간 1,432만 톤으로 집계되는데 이는 1,100만 인구의 북경 시민 전체가 3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엄청난 분량이다. 이에 따라 이제 막 식량 자급 자족을 이룬 중국은 식량 절약과 국민건강 보호 차원에서 백주 덜 마시기 운동과, 도수가 훨씬 낮은 과일주나 맥주를 마실 것을 권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최근 포도주 소비가 점차 늘어나고 젊은이들은 맥주를 선호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또 반부패 투쟁의 명분으로 근무 시간 중 백주 금주운동을 동시에 전개하고 있다. 공금으로 먹고 마시는 것이 습관화된 중국 관리들에게는 엄청난 고통이지만 이것도 점차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 같다. 오찬 석상이든 만찬 석상이든 어디에서든지 공직자들의 행사에서 맥주나 과실주 외에 백주는 이제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식량 절약, 건강 보호, 반부패 투쟁이라는 3대 목표를 내걸고 시작한 독한 술 덜 마시기 운동은 점차 전 인민들의 호응을 얻어가고 있다

술은 반드시 식사할 때 반주형식으로 곁들이고 손님 접대시는 물론 친구들과 어울릴 때 빠져선 안되는 것이다. 즐겨 마시는 술은 맥주이지만 대취할 때까지 마시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손님을 초청한 경우 술을 많이 마시도록 권하지만 초대한 손님이 술을 피하면 자신을 무시한다고 받아들인다.


* 술자리 예절

1. 기뻐서 마실 때는 절제
2. 피로해서 마실 때는 조용하게!
3. 점잖은 자리에서 마실 때에는 소세한 풍조가 있게
4. 난잡한 자리에 마실 때에는 금약이 있게
5. 새로 만난 사람과 마실 때에는 한아(閒雅) (閑은 한가함이 아니라 정숙함, 진솔함을 뜻한다.)
6. 마지막으로 잡객들과 마실 때에는 재빨리 꽁무니를 빼야한다.

이 여섯가지의 심득률(心得律)은 바로 자리의 분위기, 또는 몸의 컨디션을 가리는 중
요한 명심사항이다

* 술친구

1. 말을 잘하면서도 아첨하지 않는 사람
2. 기백이 약한 듯 하면서도 어느 한군데에 솔리지 않는 사람
3. 눈짓으로 하는 주령(酒令, 신호를 의미)을 보고 잘못된 일을 되풀이하지 않는 사람
4. 주령이 시행되면 온 좌중에 호응하고 나오는 사람
5. 주령을 들으면 즉시 이해하고 재차 문의하지 않는 사람
6. 고상한 해학을 잘 하는 사람
7. 좋지 않은 술잔(이 경우 여자를 포함)을 차지하고도 아무 말이 없는 사람
8. 술을 받게 되어도 술의 좋고 나쁨을 논하지 않는 사람
9. 술을 들면서 거동에 실수가 없는 사람
10. 아예 만취가 되었어도 술잔을 둘러엎지 않는 사람
11. 제목에 따라 시를 지을 수 있는 사람
12. 술을 이기지 못하면서도 홓취가 밤새도록 만발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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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ca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