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ribbles2013. 4. 22. 02:33

자그마치 일 년 넘게 써오던 연필이 있는데 손에 익으니까 버릴 수가 없었다. 나중에는 손에 잡기 힘들 정도로 짧아졌지만 억지로 쥐고 비뚤비뚤 글씨를 쓰고 있었다. 나도 고생,읽는 사람도 고생, 그리고 어쩌면 연필에게도 고생이지 않았을까?

 

버리기를 결심하는데는 그리고도 며칠이 더 걸렸는데, 이 연필로 쓰는 마지막 글씨는 뭔가 그럴듯한 걸 써주는게 일 년 넘게 함께 한 친구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서 갖고 있다가, 결국은 별 말 아닌걸 끄적이고는, 버렸다.

 

그리고 어제 (4/21) '그것이 알고 싶다' TV를 보는데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을 'Hoarder' 혹은 'Hoarding 장애'를 가진 사람이라고 하더라. 분명 집착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되는 구석도 아주 없지는 않았다.

 

쓸 수록 작아지는 연필을 소모품으로만 본다면 분명 소모품이지만, 그 연필이 그동안 풀어낸 이야기나 그림, 주인의 땀은 닳아지는 흑연보다 훨씬 깊고 아까운 것이다. 


Posted by eca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