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7/31자) 한겨레신문에 '제일기획 ‘가짜광고’로 칸 광고대상 수상 논란'이라는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이 논란은 며칠 전에 인기 트위터 사용자인 독설님이 7/28에 한 번 소개를 해주셨었던 내용이더군요.
먼저, 저는 제일기획에 몸담고 있다가 지금은 나와서 제일기획과 무관한 사업을 하는 사람입니다.
심지어 제일기획의 '대기업스러운, 반(反) 크리에이티브 문화에 반감을 품고 뛰쳐나온 사람입니다.
그리고, 논란이 되고 있는 광고를 만든 분들이 누구인지 저는 모릅니다. 단, 그 광고의 아이디어를 내고 출품한 사람들은 높은 어르신들이 아니라 사원-대리-차장급의 보통 직원들일 거라는 건 압니다.
하지만, 칸 광고제에 출품을 해본 적이 있어 대충의 가이드라인은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일기획 외부인의 입장에서, 그러나 칸 광고제에 광고 출품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아는 사람의 입장에서 본 이번 일은 아래와 같이 '느껴집니다.'
첫째, '광고가 실제 집행이 되지 않았다'는 주장을 들으면 분명 논란의 소지는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칸 광고제에 출품하기 위한 조건은 '광고주의 허락을 받고 제작과 매체비 등이 대행사에게 지불된 광고물'입니다. 해당 가이드라인은 이곳과 이곳을 참조하십시오. ("All entries must have been made within the context of a normal paying contract with a client, except in the charities and public services categories. That Client must have paid for all, or the majority of the media costs."라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포스팅 후 첨가: 광고제의 시상 기준이 '광고주의 승인 획득'임을 보여주는 기사가 한 편 있어서 소개 드립니다.
'레바논서 예수 등장 광고, 삼성전자 곤욕' 이라는 기사인데요, 이처럼 광고주의 승인 없이 대행사가 자의적으로 광고를 만들고 출품한 경우 상을 받았다 해도 취소되게 마련입니다. 게다가, 이런 문제를 일으킨 대행사는 해당 광고제에 일정 기간 동안 출품하지 못하도록 페널티를 주기도 하지요.
만일 제일기획이 위와 같은 잘못을 저질렀다면 당연히 비난받아 마땅하겠지만, 그렇지 않고 지금처럼 검증되지 않은 주장만이 국내외 광고계에 알려질 경우 그 뒷감당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칸 그랑프리를 거머쥔 제일기획의 실무 크리에이터들은 어떻게 될까요...)
저는 이번에 상을 탄 홈플러스 광고가 위 출품 조건을 만족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어디에서도 본 기억이 없습니다. 다만 '집행되지 않았다'는 주장이 독설님의 트윗과 한겨레신문의 기사에서 재생산되고 있을 뿐입니다.
더욱 더 어처구니 없는 것은 '집행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주장'이 '몇 시간 동안만 집행했다더라'로 발전되고, 여기서부터 '사기', '가짜 광고', '상을 훔쳤다', '초일류 사기극', '삼성이 그렇지' 라는 '호도하고 매도하는'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다. 저도 삼성 문화 싫어하고 어디가면 안티삼성이라는 말 많이 듣는 사람입니다만, 이런 식의 비난은 곤란하죠. 비난하는 사람의 논거를 무너뜨리는 비난입니다.
(이런 면에서 독설님의 트윗은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우리나라 광고인의 크리에이티브를 폄훼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며 다만 수상의 기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도록 의혹을 풀어보자"고 했다가, 거 어떤 해명이나 답도 나오지 않은 것 같은데 갑자기 '초일류사기극'이라며 바람을 잡으시니 말이죠. 평소의 독설님 답지 않은.)
둘째, 과거에 수상한 광고와 유사하기 때문에 무효라는 주장입니다. 2008년에 제일기획은 아래와 같은 광고로 동상을 수상한 적이 있습니다.
지하철역 구내에 랩핑을 해서 마트같은 느낌을 준다는 내용이었는데, 여기에는 두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습니다.
첫째, QR코드라는 'call-to-action'이 빠져있다는 점. 즉, 이 광고는 세련된 '노출형 광고'일 뿐입니다.
둘째, 사람들이 바삐 지나다니는 역 구내라는 점. 사람들은 지하철역 개찰구를 통과한 후 역 내에 멈춰서서 뭔가를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플랫폼까지는 가야 좀 서있거나 하죠.
그러나 이번에 상을 받은 광고는 그 양식이 '비슷해 보일 뿐' 광고의 목적과 수단은 전혀 다른 광고물입니다. 장소가 일단 '사람들이 멍때리는' 플랫폼인데다가, 즉시 구매를 가능케 한다는 기술(바탕의 아이디어)가 추가되었습니다. 만일 '랩핑'이라는 방식이 유사하다고 주장하거나, '마트의 진열대라는 내용이 동일하다'고 주장한다면, 칸을 비롯한 유수의 광고제에서 수상하는 대부분의 옥외광고물은 카피+재생산이라고 봐야 합니다.
셋째, QR 코드가 실제 작동되지 않았을 거라는 주장입니다. 이건 다른 분들 말마따나 아직은 '주장'입니다. 일단은 제일기획의 발표를 기다려보면 될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광고 효과를 과장해서 심사위원에게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입니다. 이건 참 애매한데, 우선 광고 효과가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제일기획의 발표를 기다리는 것이 순서이고, 광고 효과가 '과장되어 전달됐다면' 그것이 정말 심사위원에게 영향을 미쳤는지 아닌지를 알아봐야 합니다. 제가 아는 한 칸 등의 광고제에 제출되는 광고물은 '광고물 그 상태 그대로' 제출됩니다. (옥외광고는 그걸 찍은 사진으로 전달되겠죠.) 그리고 이해를 돕기 위한 번역 정도가 부가 정보로 제공됩니다.
출품된 광고로 인해 어느 정도의 효과가 있었다는 주장을 넣을 수도 있지만, 이는 사실 무척 공허한 이야기입니다. 광고 업계에 계시는 분들은 잘 알겠지만, 광고라는 요인 한 가지로 인해, 그것도 광고제에 출품되는 '크리에이티브한 광고'로 인해 매출이 급등하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고, 따라서 출품시 그런 사탕발림 이야기를 주요 자료로 소개하는 일은 흔치 않기 때문입니다. 심사위원이 그런 이야기를 본다 해도 바보가 아닌 이상, 집행 시기 등으로 미루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고, 무엇보다 칸 광고제는 '크리에이티브'를 중점을 두어 상을 주는 광고제입니다.
일단은 제일기획과 담당자 분들의 설명을 기다리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처럼 검증되지 않은 주장을 확대재생산하는 것은 조중동이 하는 짓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오보라도 일단 1면에 내지르고, 정정보도는 구석 귀퉁이에 보일듯 말듯 게재하는 '아니면 말고' 정신을 따라해서는 안되는 거죠.
그리고 이걸 칸 사무국에 알아본다는 분도 계셨던 것 같은데. 농담이시기를. 그걸로 얻을 수 있는게 뭔가요? 진실?
그 진실은 일단 한국에서 먼저 파헤쳐 본 후, 제기된 문제가 정말 문제라고 판명될 때 바깥에다 알리는 것이 순서입니다.
다 쓰고 보니 마치 제가 삼성맨처럼 비춰질까봐 사족 한 마디.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한다. 하지만 당신이 그 의견때문에 박해를 받는다면 나는 당신의 옆에서 당신의 말할 자유를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
볼테르의 말입니다.
추가 첨언: 댓글에 몇몇 분들께서 '아니면 말고'라는 표현이 자극적이고,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을 해주셨습니다. 이 표현으로 기분 안좋게 느끼신 분들께는 머리숙여 사과드립니다. 제가 그런 표현을 쓴 이유는 사용자의 특성이 아니라 트위터라는 매체의 특성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 의해 제기된 '의혹'이 트위터라는 매체의 특성상 순식간에 확 퍼지면서, 내용을 잠깐 '스치듯' 접한 분들에게는 사실로 느끼게 하는 효과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죠. 클릭해서 들어가보지 않는 이상 트위터 타임라인에 쓰인 짧은 글들만 반복적으로 보게 되면 왠지 사실인것 처럼 믿어지게 되는거죠. 그리고 이런 패턴, 사람들에게 검증되지 않은/잘못된 정보를 믿게 할 수도 있는 트위터의 정보 전파 패턴이 마치 조중동의 오보 + 정정보도 시스템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표현을 썼습니다. 트위터에서 RT하시는 많은 사용자분들이 '아니면 말고' 정신을 갖고 있다는 의미는 아니었습니다. 다시 한 번 사과드립니다. ㅠㅠ 언론은 사실 확인이 충분히 되지 않은 의혹을 기사화할 수 있고,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습니다. 다만, 소셜 미디어의 특성은 예전과는 달리 그같은 의혹을 빠른 속도로 퍼뜨립니다. 그 과정에서 사람들이 '이 의혹은 어쩌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안하고 그냥 믿어버리는 것을 경계하고 싶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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