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 전의원이 지난 5월 경북대에서 한 강의입니다. '공기업 민영화와 미디어법'이라는 주제의 강의에서 유 전의원은 (1) 미디어법 개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2) 언론계에 종사하지 않는 일반 시민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인지, (3) 법의 개정으로 우려되는 것이 무엇인지, (4) 법이 개정될 때 이득을 보고 피해를 입는 것은 누구인지 등에 대해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 동영상을 보고 '정말 논리적이다', '왜 한나라당에는 이런 논리를 펴는 사람이 없나'라며 찬사를 보내기도 합니다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 동영상은 토론에서 상대(예를 들면 한나라당이나 조중동 등 보수 언론)를 설득하기 위한 날카로운 논리를 담았다기보다, 저같은 일반인들에게 '미디어법의 개정이 무엇인지' 알기쉽게 설명해 주는 성격이 강합니다. 즉, 여러분과 저 모두 무리없이, 머리 안아프게 보기 좋다는 뜻입니다.
두번째 파트 이어집니다.
재미있게(?) 보셨나요? 유 전의원이 동영상에서 한 말, '보통 사람이 어떤 정보를 취합해서, 진위를 파악하고, 소비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데에는 언론사의 의지와 결정이 영향을 미친다'고 한 말은 언론학에서는 흔히 접하는 이론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른바 의제 설정 이론 (agenda setting theory)라고 해서, 방송이나 신문이 특정한 이슈를 선정해서 그것을 중점적으로 다루면 사람들은 다른 이슈보다 그 이슈에 집중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 전의원은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 위 이론은 '방송이나 신문의 이슈 선정이 영향을 미친다'고 하고 있는데, 미디어법 개정은 방송사의 겸영이 주된 쟁점이 되고 있지요. (신문사에 의한 방송사의 겸영이 주로 이야기되고, 그 반대인 방송사에 의한 신문사의 겸영은 거의 거론되지 않는 겁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국내의 신문사와 방송사의 지배 구조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많은 대형 신문사의 경우 (예를 들면 조중동) 개인 혹은 특정 기업에 의해 지배되는 구조로서 타 언론사를 겸영하는 것이 상대적으로 쉽습니다. 반면 방송사, 특히 공중파의 경우 SBS만 민영방송입니다. 타 언론사를 겸영하는 것은 커녕, 타 기업의 합병조차 하기 힘든 지배구조인 셈이죠.
둘째, 언론으로서 느끼는 위기감이 다릅니다. 인터넷의 발전은 상대적으로 신문사에 큰 타격을 주었고, 이 추세는 여전히 진행중입니다. 국내에 국한된 이야기입니다만, 인터넷 포털의 발달과 블로그의 확산은 신문사의 의제 설정 파워를 예전에 비해 크게 약화시켰고, 이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에 비해 방송사는 상대적으로 이같은 세력 약화가 덜합니다. 오히려 신문의 파워가 약해지면서 요즘은 방송사가 거의 유일한 '의제 설정 및 결집 가능한 대중매체'가 된 듯한 느낌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얼마 전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의 신문과 방송을 생각해 봅시다. 두 매체 모두 서거 소식을 일주일 내내 주요 뉴스로 보도하고, 대부분의 시간과 지면을 할애했었죠. 만일, 당시 방송에서는 아무런 언급을 안하고 신문에서만 (당시 정말 그랬던 것처럼) 일주일 내내 서거 소식과 동정을 보도했다고 가정을 해보시죠. 그리고 반대로, 어떤 신문도 서거 소식을 전하지 않은 대신 방송에서는 일주일 내내 서거 소식과 동정을 보도했다고 가정을 해봅시다.
실제 일어났던 것처럼 수많은 추모인파를 불러일으키고, 국민적 관심을 온통 노 전대통령 서거 소식에 쏠리게 할 수 있는 경우는 두 경우 중 어떤 것일까요? (주: 당시의 국민적 관심이 언론 때문만이었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저는 신문과 방송의 위력에 대해 설명하기 위한 가정으로 쓴 말이니 혼동 없으시길.)
방송은 실시간성과 현실감(동영상을 통한 vividness)으로 인해 신문보다 훨씬 중요한 매체가 되었습니다. 반면 신문은 그 지위가 날로 약화되고 있습니다. 조중동 모두 사이트 내에서 동영상 뉴스를 제공하는 것 역시 하나의 증거라고 할 수 있지요. 그렇기 때문에 신문사는 방송사를 겸영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회사의 사활을 결정할 수도 있는 이슈가 되는 겁니다.
이야기가 옆길로 샌 김에 잠깐만 더 딴소리를 해보자면,^^ 이런 생각도 들더군요. 미디어법 개정에서 논란이 되는 방송사의 겸영이 '인터넷이 신문의 역할을 상당 부분 잠식했기 때문'이라면, 만일 인터넷이 이미 방송의 역할까지 잠식했을 경우를 가정해 본다면, 그때도 지금처럼 미디어법 개정이 논란거리가 될까요. 신문에 비해 그 정도가 덜할 뿐이지, 인터넷이 방송의 영역도 이미 상당부분 잠식했고, 곧 공중파 방송의 역할도 상당히 줄어들 것을 감안하면, 생각해 볼 만한 문제입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 유 전의원은 위 강의에서 어느 특정 언론사를 두고 이야기하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수 있으니까요^^), 제가 위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미디어법 개정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볼 때 어느 신문사가 방송사 겸영에 관심이 있느냐, 혹은 어떤 대기업 이야기냐는 부차적인 이야기입니다. 법 개정으로 인해 신문사와 대기업의 방송사 겸영이 어떤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한 본질이지요.
여기서 정부와 한나라당의 입장을 살펴 볼까요? 여러분도 잘 아시는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은 문화체육관광 방송통신위원회(이름 참 깁니다..)의 한나라당 간사입니다. 미디어법 개정 관련 인터뷰를 많이 할 수 밖에 없겠죠. 이 분이 지난 6월 26일 MBN '박경철의 공감 80분'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미디어법의 개정 추진 이유로 "좀 더 다양한 콘텐츠 산업이 활성화되기 위해 (지상파 3사의) 독과점적인 폐해 치료"와 "미디어를 산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관련 기사 보기) 아울러, 미디어법이 개정되면 여론 독과점이 우려된다는 우려에 대해, 한 개보다는 두 개의 채널에서 방송하면 더 객관적일 수 있고,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고 하는군요.
그리고 며칠 전으로 좀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지난 6월 18일 나경원 의원은 CBS와의 인터뷰에서 "국민들이 미디어법 성격을 세세히 잘 알아 여론조사에 응할 수 있겠느냐, 모든 쟁점 법안에 대해 여론조사를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망언에 가까운) 실언을 해서 곤란을 겪은 적도 있습니다.
정부와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이 법이 공론화 되지 않고 가능한한 조용히 개정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하는 듯 합니다.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가 주관하여 미디어법 개정관련 공청회를 몇차례 연 적도 있지만 대부분 파행으로 치달았고, 제대로 된 정책토론이나 여론의 수렴이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죠. (관련 기사) 그리고 끝내는 나경원 의원이 위처럼 '국민이 모든 걸 다 알기는 힘들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하는데 이르렀구요.
하지만 나경원 의원이나 한나라당은 미디어법 개정에 대한 것을 유시민 전 의원처럼 쉽게 전달할 수도 있다는 것을 몰랐나 봅니다. 할 줄 몰랐던 것인지, 하고싶지 않았던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미디어법 개정안에는 정보통신망법에 대한 내용도 들어있습니다. 사실 인터넷을 사용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이게 어쩌면 더 중요한 이슈입니다. 하지만 이 내용은 위에서 논한 신문방송 겸영과는 전혀 다른 이슈를 다루고 있어 별도의 포스팅을 올리는게 낫겠습니다. 한 가지만 미리 말씀드리자면, 6월 26일 나경원 의원은 위 인터뷰에서 미디어법 개정 추진 이유로 '미디어를 산업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며, 구체적으로는 '방송과 통신의 장벽이 없어지는 가운데 지난 1980년대 만들어진 규제의 벽을 철폐하지 않으면 미디어가 더는 산업으로 크지 못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은 첫째, 미디어를 산업으로 발전시키는 데 반드시 필요한 공유와 개방의 정신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으며, 둘째, 규제의 벽을 오히려 높이 쌓는데 치중하고 있습니다.
6/28 밤 추가: 미디어법 개정에 대한 MBC 100분토론 내용이 redmocha님의 블로그에 정리가 되어있는걸 발견하고 링크 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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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이 포스트를 쓰려고 여기저기 검색을 해보다가 읽게된 유시민 전 의원에 대한 내용들입니다. 유 전의원을 좋아하는 분들도 많고 싫어하는 분들도 많은데, 어느 쪽이든 한번 볼만한 글인듯 해서 아래쪽에 붙여봤습니다. 아래 링크는 경북대의 강의 모음입니다.
[김혜리가 만난 사람] 지식소매상 유시민 (씨네21)
유시민의 '생활과 경제' (경북대 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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