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powerment trend

어떤 영역이 됐든 – 새로운 서비스를 예측하는 것이든, 새로운 마케팅을 기획하는 것이든 –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이느냐, 그리고 무엇을 보고 있느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선문답같은 표현입니다만, 보이는 것을 그려내는 것과 생각나는대로 그리는 것은 다르다는 말입니다. 미켈란젤로가 했다는 '(훌륭한) 조각은 돌 안에 갇혀있는 사람을 끌어내는 일'이라고 한 말과 비슷한 맥락이기도 하지요.
 
어떤 현상이나 모습을 미리 보고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큰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아무리 뛰어난 기획자가 머릿속에 제아무리 훌륭한 계획을 그리고 있다 해도 그것이 전체의 흐름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혼자만의 공상에 그치는 것과 같습니다. 좋은 기획이란 결국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상에서 거대한 흐름을 읽고, 그 흐름을 타고 더 크게 일어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이미 갖고 있는 일차원적인 인식을 스스로 깨는 것도 필요합니다. 페이스북을 친구 맺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링크드인을 인맥을 만들고 관리하는 서비스로만 바라보는 단선적인 인식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뉴스’는 왜 항상 바깥에서 일어나고 나는 그것을 받아보기만 해야 하는가. 왜 매체가 생산해 낸 뉴스는 그 자체로 ‘완결된’ 콘텐츠의 모습을 띠어야 하는가. 왜 독자가 뉴스를 교정하고 만들어내고 참여할 수 없는가. 뉴스와 매체의 '근엄함'은 자체를 위해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그저 오래된 교조(도그마)인가. 날씨를 전하는 사람이나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은 왜 항상 지루하게 날씨만 보여주는가. 왜 주가(주식) 어플리케이션은 천편일률적인가?
 
관건은 끊임없이 '왜'라고 묻는 것입니다. 진실, 사실, 전통, 혹은 관습이라고 믿어왔던 모든 현상들에 대하여 한 번 더 '왜'라고 묻고, 스스로의 믿음이 단선적인 것은 아니었는지 자문하는 것입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라는 현상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믿고 있는 명제는 무엇인지, 그것은 과연 참인지 아니면 참을 가장한 집단적 믿음인지 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사람들은 정말 다른 사람들 (친구, 가족 등) 과 연결되는 것을 좋아하는가. 내 소유물은 나누는 것보다 우선은 지키는 것이 정말 지혜로운 일인가. 무언가를 나눈다는 행동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우리가 답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은 과연 '참'인지, 혹은 다른 이유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무언가 ‘잘 보이지 않는 다른 이유’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원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내 것을 지키는 것보다 나누는 것이 때로는 더 큰 가치가 되어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이미 일어나고 있는 현상으로부터 시작하는 끊임없는 자문은 간혹 숨겨져 있는 큰 흐름을 '우연히' 발견할 수 있게도 합니다. 제가 읽은 흐름은 Empowerment, 말하자면 권력의 이동 쯤으로 해석할 수 있는 흐름이며, 이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Posted by ecarus

"소비자가 1/4인치짜리 드릴을 사는 이유는 1/4인치짜리 드릴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니라 1/4인치짜리 구멍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People don’t want a quarter-inch drill, they want a quarter-inch hole.)"
 
하버드비즈니스리뷰紙의 편집자이기도 했던 Ted Levitt 교수의 말인데, 마케팅 쪽에서는 잘 알려진 명언입니다. 소비자가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똑바로 이해하라는 뜻이죠.
 
얼핏 당연하고 쉬운 말 같지만, 사실 모든 마케터들이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똑바로 파악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소비자 스스로도 잘 모르고 있을 때도 있고, 숨겨진 소비자의 욕구를 파악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을 때도 있으며, 때로는 마케터들 스스로 '소비자는 이것을 원한다'는 도그마에 빠져 있을 때도 많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보다 더 자주 있는 경우는 광고하는 제품의 장점을 소비자가 원하는 점인 것처럼 포장해서 호도하는 경우죠.)
 
오늘은 '콘텐츠는 왕이다'라는 말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양질의 콘텐츠라는 명제인데, 이 말은 과연 항상 사실일까요?
 
 
많은 온라인 마케터들은 이 말을 마치 절대적인 진리인 양 생각합니다. 어떤 사이트나 미디어를 만들거나 운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콘텐츠를 많이 확보해서 사용자를 끌어모으는 것이라는 이 말은 표면적으로는 매우 옳은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말은 콘텐츠 자체를 '목적'으로 오도하고 있기도 하지요.
 
이 명제는 좋은 콘텐츠를 한 곳에 모아두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미디어(혹은 채널, 사이트)에게는 충분히 유효합니다. 그러나 콘텐츠를 활용해 다른 뭔가를 의도하는 미디어에게는 콘텐츠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콘텐츠는 사람들을 모으는 수단입니다. 웹사이트와 같은 미디어를 만들 때 십중팔구는 광고를 통한 수익 창출을 기대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충분한 수의 방문자가 필요하죠. 더 많은 방문자를 지속적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좋은 콘텐츠를 상시 업데이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웹1.0, 심지어 웹2.0시대에서도 이 같은 공식은 유효했습니다. (비록 웹2.0이라는 키워드와 함께 소셜미디어가 화두로 등장하긴 했지만,) 이 시대는 엄밀히 말해 '정보 포털'의 시대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매체사가 만들어낸 뉴스기사든 사용자들이 만들어낸 UGC(UCC)든 사람들은 뭔가 재미있고 볼만한 콘텐츠를 원했고, 이 시대의 사용자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미디어 소비 행태는 콘텐츠의 '소비'였습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이 주로 주고받은 정보 역시 이런 콘텐츠가 다수를 차지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진이나 글, 유익한 기사 등이 모두 이런 콘텐츠에 해당하는 것들이죠. 그러니 콘텐츠가 왕이라는 명제는 유효했던 셈인데,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미디어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콘텐츠를 확보해 두고 있느냐, 혹은 얼마나 많은 콘텐츠 공급원, 네트워크를 확보하고 있느냐가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콘텐츠 공급원이란 뉴스를 공급하는 매체사 뿐 아니라 콘텐츠를 열심히 생산하는 이른바 파워블로거, 심지어 뉴스를 열심히 실어나르는 적극적인 사용자들까지 모두 포함합니다.)
 
그러나 웹2.0이 더 성숙해지면서 사람들이 온라인 매체를 소비하는 행태가 변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른바 소셜미디어의 시대에서는 콘텐츠의 소비 외에 타인과의 상호작용/인터랙션 자체가 주요 목적이 되고 있는 것이죠. 사람들은 친구들이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둘러보려고 인터넷을 씁니다. 페이스북이든 트위터든 사람들은 여전히 재미있는 콘텐츠를 올려두고 친구들과 공유하기를 즐기지만, 이같은 콘텐츠의 공유가 더이상 사람들이 해당 매체를 사용하는 유일한 요인이 아님은 여러분도 충분히 느끼고 계실겁니다.
 
이렇게 소비자의 행태가 변하면 마케터는 이에 대응하고, 활용해야 합니다. 콘텐츠가 주요 수단이었을 때 양질의 콘텐츠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듯, 인터랙션이 중요 수단으로 등장했다면 더 많은 인터랙션을 가능케 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자주 들락거릴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가능한 한 개방된 공간을 만들고 더 많은 종류의 인터랙션을 가능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Status)를 공유하는 것' 외에 다양한 종류의 공유 활동을 가능케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위치를 공유하거나 (예: Foursquare 등의 위치기반 서비스), 내가 소비하고 있는 콘텐츠를 공유하거나 (예: GetGlue), 사진이나 동영상, 슬라이드쇼 등의 콘텐츠를 공유하는 등 (예: Flickr, Youtube, SlideShare) 다양한 종류의 공유가 이미 가능하고, 공유 대상의 범위는 점점 더 넓어지고 독특해지고 있습니다.
 
혹은 사용자간 인터랙션의 종류를 늘이는 방법 또한 가능합니다. 콘텐츠의 단순한 공유와 안부 묻기, 채팅을 넘는 새로운 종류의 인터랙션이 계속 소개되고 있는데, 예를 들면 모바일 기기로의 커뮤니케이션 외연 확장이나 페이스북이 시도하는 것 같이 채팅과 메시징, 메일을 통합하는 시도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이 같은 인터랙션 종류의 확대는 개인간 커뮤니케이션(Interpersonal Communication)에만 머무르지는 않습니다. 소셜미디어의 사용자가 대외적인 (Outward, Public)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고 이에 익숙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사용자 개인의 커뮤니케이션을 다른 용도에 활용하려는 다양한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지요. (더 자세한 내용은 기업 비밀이 섞여 있어 밝히기가 곤란함을 양해해 주시길. ^^;)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인터랙션의 빈도를 늘이는 방법 또한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어쨌든 소셜 시대에서는 인터랙션의 총량을 늘임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을 관여시키는 것이 중요해집니다. 가능한 한 담벼락을 낮추고, 악성 콘텐츠에 대한 감시와 같이, 통상적으로 매체에 의해 행해지던 역할까지도 과감히 사용자에게 넘기는 것 역시 필요합니다. 사용자의 콘텐츠와 인터랙션이 사용자에 의해, 사용자를 위해 관리되고 감시되는 셈이죠.
 
안타깝게도 국내의 포털사이트들이나 주요 웹사이트들은 이같은 변화를 전향적으로 받아들이지는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오히려 기존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쪽에 더 관심이 있는 듯 한데, 사용자에 대한 감시를 더 철저히 하고, 자사가 보유한 콘텐츠에 대한 관리 수위를 높이고 있으며, 사용자의 인터랙션 역시 (여전히) 자사가 쳐둔 울타리 (Walled Garden) 안에서 하도록 유도하는 편입니다. 최근들어 주요 포털 업체들이 API를 공개하고, 주요 매체사의 웹사이트들이 페이스북과 같은 외부 서비스로의 연계를 용이하게 하는 등 '변화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나, 아직은 외부의 압력에 떠밀려 조금씩 문을 여는 정도입니다. 앞서가기 위해서는 트렌드를 읽고 소비자가 원하는 '구멍'을 제공할 줄 알아야 할텐데 아직까지는 '드릴'만 조금씩 내놓는 형국이죠.
 
어쩌면 사용자들에게 구멍을 제공하려면 자신들이 갖고 있는 기득권을 상당 부분 내놓아야 하는 것처럼 보이니 쉽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럴 때 즐겨 인용되는 경영/마케팅 사례들이 있죠. 20세기 초반의 포드 자동차나 십여년 전의 코닥 필름, 최근의 마이스페이스 등이 저지른 실수가 바로 그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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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하실까봐 덧붙이자면, 콘텐츠가 왕이라는 명제가 거짓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소비자들은 앞으로도 계속 콘텐츠를 소비할 것입니다. 따라서 콘텐츠가 중요하다는 말은 언제나 (어느 정도는) 옳습니다. 다만 저는 그 말이 담고 있는 의미를 되새겨보고자 한 것입니다. 콘텐츠 확보가 지향하는 목표가 무엇이며, 그 목표는 지금도 여전히 콘텐츠로 달성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 거죠.
 
목표는 언제나 사람(Eyeball)입니다. 수익을 낼 수 있는 매체를 만들고자 한다면 말이죠.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수단으로 저는 인터랙션을 제시했는데, 혹시 다른 생각이 있으시다면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ecarus

shush


When it comes to privacy in social media, people are concerned. But it’s not relevant anymore, or at least not as important as it used to be.
We have to think about how many doors this “change in perspective” will open up.

We all know privacy is important. But what is privacy? What is the borderline between “private” and “public?”
It’s critical to define it, or we have to at least know what we really mean when we say privacy. If not, we are talking about some highly vague value, as a result of which we may end up sacrificing a lot of things for the name of that vague thing. And it is not what we want.


What Do We Really Care?

Privacy is important. No argument about that. I’m just saying, “Let’s be more specific. What do we really care?”
Well, I care about my ID, password, social security number, bank account number, and maybe my license plate number to be linked with my name. I don’t want to disclose my annual income, my mother’s maiden name, which schools I went to, my GPA, my test scores, where I live, what I do for a living, who my family is, and what their names are.

But, can we classify them to “more” and “less” important ones? In other words, the ones I may share and the others I would never share? Yes, that’s what people are actually doing anyway.


Privacy vs. Benefits or Utilities

People are already giving up lots of their private information. Foursquare makes me tell where I am. (Note that it does not tell it or force me to tell it. I am telling it because I chose to.) Facebook tells a lot about myself. Twitter reveals what I am doing and thinking. How about Google and their AdSense and Gmail?

Yet people are saying they are very much concerned about privacy. But wait, are we talking about the same privacy here? We don’t know, because some are talking about their password while others may be referring to their real-time whereabout. And besides, aren’t some people already providing their (so-called) private information in their social media areas, willingly and voluntarily?

Let’s face it. It’s really a matter of what we mean by privacy and to what extent we are willing to share. And more importantly to marketers like us, it’s a matter of making people give up privacy yet feel good about it. It is about making people voluntarily give up some of their private information, and still make them feel the act was very much worthwhile. So it is never about “protecting privacy per se” unless we are building some security service.


Successful Service Means Getting More Information

Building a successful service is all about making people provide their information, professionally, voluntarily, and graciously. It shouldn’t be anything like, “Hey, forget about privacy, and we will give you something.” Rather, it should be like, “Hey, wouldn’t it be great to get this (or be able to do this)? Here are some things you need to do for us and for yourself.”

Think what Google, Facebook, Twitter, and Foursquare did. They have made people nicely give up their email contents, blog posts, current thoughts in 140-word, and where they are, all coupled with their profile information. (Come to think of it, how do we protect privacy while opening up my personal profile?)

Can you notice something? All the above services–turned out to be tremendously successful–have OPENED UP THE REALM OF PRIVACY LITTLE BY LITTLE. So our question should be, “What next, and how?” Not, “How do we protect privacy?“
What am I willing to give up? What am I likely to give up in the future? And what will I get in return?

Posted by ecarus

미국 시간으로 그저께(8/17) WiredChris AndersonMichael Wolff가 조금은 도발적인(?) 제목의 기사를 한 편 올렸습니다. "The Web Is Dead. Long Live the Internet"

내용인즉슨, 간단하고 매끄러운(sleek) '앱'과 같은 서비스들로 인해 전통적인 웹은 하락세에 접어들었다는 것입니다. 웹의 중심인 '검색' 서비스가 정보의 바다인 웹의 효용성을 증가시키긴 했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정보를 찾아가야 한다는 불편함을 준 것도 사실인데, 다양한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으로 대표되는 '앱 환경'은 이같은 불편을 크게 덜어주고, 사용자가 원하는 가치를 즉각적으로 제공하는 장점이 있다는 거죠.

디지털 매체 사용 환경의 중심축이 데스크탑에서 랩탑으로, 그리고 이제 모바일 기기로 옮겨감에 따라 사람들은 과거 웹 브라우저를 켜고 (검색을 통해 찾던) 다양한 콘텐츠와 서비스를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향유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본문에서 소개된 사례를 우리나라 식으로 바꿔보자면..

예전:  아침에 일어나서 데스크탑 웹브라우저에서 신문 보고, 포털 사이트에서 날씨 보고, 출근/등교한 후 데스크탑에서 구독하는 블로그 읽고, 트위터나 페이스북에서 인사 나누고, 저녁에는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웹브라우저에서 열어 친구 찾아 인사하고 배경 음악을 듣는다.

요즘:  아침에 일어나서 스마트폰에서 신문 주요기사 읽고, 앱을 띄워 날씨 확인하고, 출근/등교길에 RSS 앱을 띄워 구독하는 블로그 읽고, 일하는 짬짬이 트위터나 페이스북 앱을 통해 사람들과 인사 나누고, 저녁에는 다운받아놓은 영화를 아이패드(없으신 분들께는 죄송..^^;)로 본다.

예전이나 요즘이나 별 차이 없다고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하루 종일 인터넷을 통해 뭔가를 한 것은 같으니까요. 하지만 위에서 든 요즘 사례의 경우 웹을 사용하는 빈도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차이가 있지요.

본 기사의 저자들은 아래와 같이 이야기 합니다.

Over the past few years, one of the most important shifts in the digital world has been the move from the wide-open Web to semiclosed platforms (중략). It’s a world Google can’t crawl. And it’s the world that consumers are increasingly choosing, (중략) because these dedicated platforms often just work better or fit better into their lives (the screen comes to them, they don’t have to go to the screen).

즉, 이 같은 모바일 앱의 세계는 구글(과 같은 전통적 검색 서비스)가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공간이고, 소비자의 필요에 딱 맞추어진 (앱과 같은) 전용 플랫폼 덕에, 그리고 항상 곁에 있는 (모바일) 스크린 덕에  소비자의 권한이 더욱 강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비록 웹이 그 한계에 도달했다고는 해도 전성기(?)는 있었죠. Cisco에서 발표한 아래의 그래프는 웹의 사용이 2000년도에 최고조에 달했었다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분명 인터넷이 대중화되기 시작한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까지 웹은 모든 논의의 중심에 있었죠. 웹이 중심이 되는 컴퓨팅 환경의 진화, 기존 PC용 어플리케이션들이 웹으로 흡수되어 클라우드 컴퓨팅이 실현되는 근간으로서의 웹 등.


이미지 출처: 기사 원문

컴퓨팅 환경의 변화에 대한 이러한 예측들은 대체로 들어맞았지만 한 가지 맞지 않은 것은 (저자들이 보기에), '변화의 중심에는 더 이상 웹이 있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컴퓨팅 환경의 진화, 클라우드 컴퓨팅, 사용자 경험의 발전 등에 대한 논점의 중심에는 웹이 아닌 '모바일 (이동성)'이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죠.

이에 대해 저자는 웹 역시 결국 인터넷의 수많은 어플리케이션의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웹사이트와 웹브라우저의 등장이 혁신적이긴 했지만 이제 그런 방식의 데이터/콘텐츠 소비는 하향세에 접어들었다는 주장을 펴는데, 웹 대신 온라인 게임, 아이튠즈, 스카이프, 스타크래프트 등과 같은 '서비스'들이 웹의 자리를 대신해 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울러 모바일 컴퓨팅이 대중화되면서 기존의 웹 환경과 웹 기술이 이 환경에 쉽사리 적응하기 어렵다는 것을 또 다른 이유로 꼽기도 합니다.

기사는 자본주의의 발달 과정을 들어 웹이 쇠퇴하고 변화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을 펴기도 합니다. '자연스러운 산업화 과정은 발명, 알림, 채택, 지배의 과정("This is the natural path of industrialization: invention, propagation, adoption, control.")이며, 독과점 형태로 발전할 때에만 지배의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웹 역시 다른 모든 현상과 마찬가지로 이런 발전의 압박을 받고 있으며, 초창기의 '열린 웹', '자유로운 웹'은 어쩔 수 없이 닫힌 형태 (walled garden)로, 독과점의 성격을 띠면서 발전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마치 페이스북과 같은 형태로 말이죠. 인터넷과 독점, 온라인과 지배/통제는 뭔가 안어울리는 단어라는 생각이 들지만, 사실 독과점 형태의 지배는 온라인처럼 촘촘히 짜여진 네트워크 형태의 시장에서 더 잘 일어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유명한 멧칼프의 법칙을 들면서 말이죠.
 

하긴,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인터넷 초창기 수많은 사이트와 서비스들이 있었지만 점차 거대한 서비스들로 수렴되어가는 현상을 지켜 보고 있자면, 위 주장이 틀린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네이버와 다음으로 모든 사이트가 수렴되어 가는 현상은 위에서 말한 정상적인 발전 과정과는 거리가 멀죠..) 게다가 웹을 기반으로 한 많은 서비스들이 이익 창출에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을 봐도 마찬가지고요. 기사 본문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사람들은 온라인 시장이 성숙해지면 소비자들이 웹에서의 서비스와 콘텐츠에 대해 지갑을 열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현실은 그렇게 되어가고 있지 않다'는 점은 생각해볼만 합니다. 이를 쉽게 설명한 본문 내용이 아래 문구입니다.

When you are young, you have more time than money, and LimeWire is worth the hassle. As you get older, you have more money than time. The iTunes toll is a small price to pay for the simplicity of just getting what you want. The more Facebook becomes part of your life, the more locked in you become. Artificial scarcity is the natural goal of the profit-seeking.

정말 이 말처럼, 우리는 페이스북에 길들여지고, 페이스북이 가져다주는 편리한 혜택들에 매료되어 주저없이 지갑을 열게 될까요? (그런데 잠깐, 페이스북이 가져다주는 돈낼만한 혜택이라는 건 도대체 뭘까요?)

많은 사이트들이 유료와 무료 정책 사이에서 오락가락 하고 있지만, 웹은 점점 '무료'로 인식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는 느낌입니다. 웹=무료, 앱=유료의 인식이 고착화되고 있다고나 할까요?

웹이 쇠락하고 있다는 또 하나의 사례, 혹은 논거로 저자는 웹사이트 문화와 웹사이트 지배 구조의 변화를 듭니다. 여기서 또 페이스북의 예가 나오는데요, 페이스북은 5억여 명에 달하는 사용자 수로 인해 '지금까지 존재했던 웹사이트 중 가장 거대한 웹사이트가 되었고, 이제는 '웹사이트'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의 뭔가가 돼버렸다 (It’s “the largest Web site there has ever been, so large that it is not a Web site at all.)'고 설명합니다. (페이스북을 단순히 '하나의 웹사이트'로 간주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저도 고민에 빠질 것 같습니다. 전통적인 개념에서의 웹사이트의 성격과 다른 점이 너무 많기 때문인데, 웹사이트의 외형을 띤 플랫폼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죠.)



계속되는 웹과 페이스북의 비교 역시 흥미롭습니다. 기사에서 페이스북은 웹 문화의 쇠락을 보여주는 증거이자 동시에 웹 문화를 허무는 주역으로까지 예시되는데, 열려있고 자유로운 웹과 달리 페이스북은 닫혀있고 통제받는 플랫폼이며, 사용이 복잡하고 원하는 정보까지 도달하기 위해 품을 팔아야 하는 웹에 비해 페이스북은 훨씬 직관적이고 보기 좋은 디자인을 갖추고 사용자에게 편리한 사용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여담이지만, 오픈 웹을 자양분으로 하는 웹의 대표 주자 구글, 그리고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자양분으로 하는 포스트 웹의 대표 주자 페이스북 - 이 구도는 앞으로도 계속 눈여겨볼만 합니다. 단순히 거대 서비스간 경쟁 구도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각 진영을 대표하는 세력간 주도권 싸움인 셈이죠.


웹사이트 지배 구조의 변화에 대해 저자는 '미국의 상위 10개 웹사이트가 전체 트래픽(페이지뷰)에서 차지했던 비중이 2001년에는 31%였으나 점점 늘어나 2010년에는 75%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적고 있습니다. 기사의 공동 저자인 마이클 울프는 이처럼 웹이 비대해지고 중앙집중화된 전통적인 매스미디어의 모습을 닮아가는 것 역시 사람들을 웹에서 멀어지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고 진단합니다. 동시에 '이같은 현상은 웹의 수평적이고 유연한 특성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역사적으로 이같은 봉건적인 현상은 언제나 저항에 의해 깨어지곤 했다'고 주장하지요. 즉, 저자들은 웹의 중앙집중화 역시 외부 요인에 의해 극복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사의 분석에 따르면 그 외부 요인은 '앱'이 되는 셈이겠고요.)
 

웹이 더 이상 가능성이 없다는 주장을 펼치는 이 기사는 마지막 부분에 한 가지 흥미로운 주장을 펼쳐 놓습니다. 온라인상의 소비자는 그들이 아무리 측정 가능하다 할지라도, '사기(fraud)'라는 것입니다. 검색 엔진을 통해 웹사이트에 방문한 소비자들이 60%에 달하는데, 이들은 엄밀히 말하면 충성스러운 소비자와 정 반대점에 서있는 종류의 소비자라는 점에서 많은 온라인 마케터들이 주장하듯 이 소비자들은 분석 대상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작다는 주장입니다. 이렇게 말한 저자도 '이 주장은 (너무 극단적이라)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 하고 있는데, 마케팅을 하는 사람이라면 사실은 한 번 쯤 깊이 생각해 봐야 할 화두입니다.

이 밖에도 웹이 개발자 (engineer)에 의해 개발되었다는 태생적 한계, 웹에서의 비즈니스를 지탱하는 온라인 광고가 도리어 콘텐츠의 질을 갉아먹고 있는 현실, 미국의 경제 위기가 웹 비즈니스에 미친 악영향 등 수많은 외부 요인들이 웹의 몰락을 독촉하고 있다는 주장은 일부 과장된 느낌도 없지 않아 보입니다. 그리고 기사 내에 소개된 여러가지 실제 사례와 역사적 배경에 대한 근거도 취약한 곳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사는 웹이 정말 몰락할 것인가, 앱이 웹을 대체할 것인가에 대한 논쟁을 아주 잘 촉발시키고 있으며, 주요 논제 외에도 인터랙티브 서비스의 흥망성쇠, 자유로운 네트워크 vs. 통제받는 네트워크, 수익 창출을 위한 서비스의 바람직한 진화 방향, 구글(웹)-페이스북(포스트 웹)-애플(미디어)의 관계 구도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흥미로운 시각을 제공한다는 점만으로도 꽤 훌륭한 기사라고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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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red에서 위 기사를 올린지 꼭 9시간 후 NY Times 블로그의 Nick Bilton"Is the Web Dying? It Doesn’t Look That Way"이라는 제목의 반론을 올렸죠. Wired의 기사 원문에서 쓰였던 그래프는 2000년을 정점으로 웹의 트래픽이 하락세로 돌아선다고 보여주지만, 이 그래프는 인터넷 내 인프라 분석을 위한 데이터에 기반한 것이었으며, 온라인에서의 실제 트래픽을 보다 정확히 보여주는 Boing Boing의 그래프에 따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주장으로부터 반론은 시작됩니다.


이미지 출처: 기사 원문


이 그래프를 보면 2003년 ~ 2006년 사이의 성장세는 특히 엄청납니다. 저자는 페이스북의 현상을 다른 시각에서 설명합니다. 서비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모바일 앱 뿐 아니라 웹사이트 역시 동반 성장했으며, 결국은 (페이스북이라는) 플랫폼 자체가 성장했다고 보는게 맞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페이스북만의 경우가 아니라, 다른 모든 웹사이트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웹사이트가 쇠락하고 다른 형태의 채널, 플랫폼이 대체재로 성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웹사이트를 위시한 전체 플랫폼이 확장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웹'과 '앱'은 사실상 얽혀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앱이 아무리 훌륭한 UX를 제공한다 해도 그 근간에는 웹이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저자는 웹의 미래 역시 앱에 비해 어둡다고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싶었겠지만, 제 생각에는 웹과 인터넷을 혼용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듯 합니다. (최소한 Wired의 기사 원문에서와 동일한 기준으로 웹과 앱을 구분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이에 따라 인터넷의 성장함에 따라 웹을 비롯한 기타 모든 부문이 동반 성장할 것이라고 결론 내리는 우를 범하고 있기도 하지요. (P2P, FTP 등의 성장이 앱의 성장과 동일시될 수 없음을 고려하면 이 주장이 얼마나 위험하고 취약한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웹사이트와 플랫폼, 모바일 앱의 성장은 충분한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웹과 웹사이트의 성장을 계속 보장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트래픽 증감 추세를 보여주는 그래프만으로 웹의 성장을 단언하기에는 그를 뒷받침할 논리적 근거가 취약합니다. (주: Wired의 기사에 등장했던 그래프 자체에 대한 반론은 Nick Bilton의 기사보다 Boing Boing의 Rob Beschizza가 쓴 'Is the web really dead?'를 보시는게 낫습니다.)

제가 보기에 Nick Bilton의 반론은 절반쯤 실패작입니다. 결론이 실패라기보다 결론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실패했다고 보여지는데요, 독자들의 평 역시 긍정적이지만은 않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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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ck Bilton의 기사가 올라간지 한 시간도 안돼 The Atlantic지의 Alexis Madrigal"What's Wrong With 'X Is Dead'"이라는 제목으로 Wired 기사에 대한 또다른 반론을 올립니다. (이 글은 크리스 앤더슨이 '가장 흥미로운 반론'이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이미지 출처: 기사 원문


저자는 웹이 언젠가 지금보다 덜 중요한 위치에 설 수도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은 후, 다만 새로 등장하는 기술이 항상 기존의 기술을 대체해버리는 것만은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으로부터 반론을 시작합니다. 즉 앱이든 다른 신기술이 등장한다고 하더라도 그 자체가 웹의 멸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거죠. 그리고 호주 역사학자인 Carroll Pursell의 말을 인용합니다.

An obsession with 'innovation' leads to a tidy timeline of progress, focusing on iconic machines, but an investigation of 'technology in use' reveals that some 'things' appear, disappear, and reappear...

'혁신'에 대한 집착은 앞으로만 나아가는 진보에 초점을 맞추게 하지만, 실제 사용되는 기술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어떤 것들은 나타났다가 사라지고, 그리고 또 나타나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죄송합니다, 번역을 어떻게 해야 원문의 느낌이 살지 모르겠네요..ㅠㅠ)

Wired 기사에서 '역사적 맥락으로도 웹은 뒤로 물러날 수 밖에 없다'는 주장으로 사용된 "This is the natural path of industrialization: invention, propagation, adoption, control."이라는 문장에 대해서 저자는 '역사학자 중 몇 명이나 위 말에 동의할지 모르겠다'며 일침을 가합니다.

보시다시피, 이 기사는 '웹은 죽었다'는 Wired의 원 기사에 대해 기술적 논거를 갖고 하나하나 반박하지 않습니다. 통계 수치를 들이대지도, 원 기사가 제시한 사례의 부당함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바로 위  Nick Bilton 의 접근과는 다른 식의 반박을 펼치고 있는 거죠.) 이 기사는 오히려 역사적인 맥락을 들어 Wired 기사의 주장이 틀렸음을 설명합니다. 어떤 것도 '절대 있을 수 없다'거나 '반드시 없어질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거죠.
 

기사 중 흥미로왔던 구절은 역사에 대한 이해 없이, 역사적 맥락을 배제한 채 기술에 대한 예측을 할 경우 누구나 "기술은 앞으로는 이러이러하게 발전할 (혹은 발전되어야만 할) 것이다" 라고 말하고 싶은 충동에 빠지게 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특히 이런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일수록 더) 기술이 모든 변화를 가능케 하고, 사회의 목표를 성취할 수 있게 만드는 주역이라고 생각하곤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거죠. 현실에서의 변화와 진화는 기술 외에 수많은 다른 요인에 의해 일어나고 방해받고 좌절됩니다. 수많은 다른 요인들 중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는 인간의 의지입니다.
 

수동적인 인간, 페이스북이나 애플이 던져주는 서비스에 감탄하며, "폐쇄적 시스템이라도 이렇게 좋은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해준다면 폐쇄적인 환경이 좋아." 라고 말하는 수동적 소비자로서의 인간이 아니라, 아이디어를 갖고 의견을 표명하며 함께 더 좋은 환경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능동적인 인간의 의지야말로 기술보다 더 큰 동인이자 동력입니다. Wired의 기사는 이같은 요소들을 경시하고 기술의 발전 자체를 변화의 동인으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합니다. (기술은 변화의 동력이 될 수 있을 뿐 동인은 될 수 없겠죠.) 아마 이런 점, 거시적인 관점에서 자신의 주장을 비판하는 점 때문에 크리스 앤더슨이 이 기사를 두고 가장 좋은 반론이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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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세 편에 대해 한꺼번에 소개를 하다보니 쓸데없이 길어졌지만, 저는 Wired의 '웹은 죽었다'는 입장에 동의하지 않는 쪽입니다. 쇠락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죽을 거라고 보이지는 않다고나 할까요? 이는 웹으로의 트래픽이 여전히 많다는 것과 같은 수치로 보여지는 현상 때문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이 기존의 기술을 언제나 밀어내지만은 않는다는 역사적 사실에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사람들은 엽서와 전보, 팩스를 쓰고 있는 것에서 볼 수 있 듯 말이죠.)

비록 Wired 기사의 입장에 동조하지는 않지만, 기사에서 소개된 여러가지 현상은 모두 읽고 고민해 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인터랙티브 마케팅 분야에 조금이라도 발을 걸치고 있는 분들이라면 말이죠.


끝으로 제가 존경하는 선배 한 분께서 위 논쟁에 대해 내린 트위터 평을 소개하면서 글을 맺을까 합니다.

'~이 죽었다'는 시선 끌고, 화제되는데 효력이 있죠. 신기술이란 것이 대체도 하지만, '부가', '확장', 축적'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제품을, 기술을 팔려니 자극적으로. 논쟁 촉발로 앤더슨도 나름 성공!

신기술이 옛기술을 밀어낼 것이냐 말 것이냐를 넘어, 이 기사를 쓴 크리스 앤더슨의 의도까지 잘 잡아주는 트윗이네요. ^^


Posted by ecarus

전통적 미디어는 권위주의적이고 각 메시지당 임팩트가 강하지만, 그 권위는 정적(static)이고 응답하지 않는 위계적(hierarchical) 권위입니다.

반면 뉴미디어의 경우 탈권위주의적이고 상대적으로 평등하다는 특성이 있으며, 메시지의 총량이 전통적 미디어에 비해 큽니다. 이로 인해 각 메시지당 임팩트는 약하다고 할 수 있지만, 집합적 권위로 이를 충분히 상쇄합니다.

이같은 뉴미디어의 특성은 인터넷이나 모바일 같은 최근의 뉴미디어에만 적용되는 것이아닙니다. 금속활자 기술이 출현한 것부터 시작, 신문의 등장, 라디오, 공중파 TV, 케이블 TV 등 방송매체의 등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뉴미디어는 이미 존재하고 있던 올드 미디어에 비해 위와 같은 특징을 나타내 왔습니다.

이는 다시 말하면, 인터넷과 모바일로 대표되는 현재의 뉴미디어 역시 언젠가는 더욱 탈권위적인, 더욱 평등한, 더욱 집합적인 미디어에 뉴미디어의 자리를 내어줄 것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집합적 권위는 전문가에 의한 일방향적 권위에 대비되는 의미로서, 사람들의 합의에 의해 인정되는 권위를 뜻합니다. 역동적이며, 쌍방향/참여형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통해 친근하면서도 수평적인 권위를 스스로 구축해 가며, 이같은 권위 구축 과정에 소비자의 확산 및 전파가 큰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집합적 권위는 단순히 다수결에 의해 확립된 권위, 혹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권위라는 '권위라는 결과물 (혹은 상태)'보다, 그러한 권위가 확립되어 가는 '과정'에 더 큰 중요성이 있습니다. 집합적 권위는 사람들의 지속적, 생산적 활동에 의해 촉발되는 권위이며,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상호 의견 교환과 교감, 집단지성에 의한 수정에 의해 스스로 발전하고 변화하기도 합니다.

이 같은 권위의 특성을 이해하는 것은 미디어를 사용하는 소비자들의 인식을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합니다. 어떤 목적으로, 어떤 이해를 갖고, 어떤 방식으로 미디어를 활용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데 초석이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네이버나 야후 등의 포털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인식을 분석한다거나, 구글이나 위키피디어 같은 검색 혹은 레퍼런스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분석할 때, 그리고 SNS를 사용자를 분석할 때 적용할 수 있습니다.

Google은 집합적인 intention, Digg이나 Reddit의 경우 crowd-sourced agenda setting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Flickr는 집합적인 이미지 정보이자 이미지의 status라고 할 수 있겠죠. Facebook과 Twitter는 집합적인 interest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런 다양한 현상들(phenomena) 안에서 권위를 갖고 있는 것은 누구일까요? 그 권위는 누구에 의해 주어진 것일까요? 얼마나 영속성이 있을까요? 권위를 유지시키거나 허물어뜨리는 요인은 무엇일까요?


너무 선문답스러운 포스팅인가요? 제가 결론을 다 내려버린다면 너무 일방향적인 것 같아서요. ^^



Posted by ecarus

"It's not just the eyeballs as it was before the dotcom crash. It's the 'kind of eyeballs' you collect and how you can slice, dice, and model them."
   - Ning's Infinite Ambition, by Adam L. Penenberg
     (Fast Company, May 2008, pp.76-84)

"Your currency is IDEAS, not time, not money. Make people emotionally attached (Then you become a public utility like blogs, Youtube, or Facebook.)
   - Unknown

What is the ONE, SINGLE THING that you would sell to your consumers? It should be simple and dead easy to understand.

Everybody, everything, every activity can be classified. Analyze what people are doing, on an hourly basis, gather them to groups with a similar activities. Similar topics people are saying; similar music they're listening; similar links people are sharing. It has always been the lack of people's imagination as to how to use the classified data which failed "interest-oriented businesses." Classification methodology has always been valid, for more than thousand years.  



Posted by ecarus

따옴표 내의 제목은 제가 지은 것이 아니라 오마이뉴스에 난 기사의 제목입니다. 앞서 제가 쓴 포스트 Applause Marketing (1)(2)편에서 '사용자들은 인정과 칭찬을 원한다'는 말을 했는데요, 이 기사에도 그와 비슷한 구절이 있어, 슬쩍 짚어보면서 시작하겠습니다.

인터넷 언어는 '구술성'을 특징으로 한다. 즉 말하듯 글을 쓴다는 것이다. 제3자를 위한 게시물이 아닌 한, 인터넷의 언어는 늘 말을 받을 2인칭 상대가 전제되어 있다. 인터넷의 소통이 일상적 대화의 형식을 띠는 것은 당연하다.

일상의 대화에서는 문법이 무시되고 격식이 파괴되며, 단문이 사용된다. (중략) 초기의 블로그는 이런 구술적 특성을 지니고 있었다. 대부분의 글이 짧았으며, 일상에 기초한 내용들이 많았다. 그러나 애초에 대중적 공간으로 만들어진 블로그에 '전문 블로거'들이 가세하면서 글쓰기의 내용과 형식에 대한 기대수준을 높여놓았다. 그들과 맞서 주목을 받으려면 제법 심오한 내용을 다뤄야 할 뿐 아니라, 구성과 문체, 그리고 맞춤법까지도 까다롭게 신경을 써야만 했다.

트위터는 글을 140자 이내로 제한함으로써 형식과 격식의 압박을 '강퇴'시켜 버렸다. '심오함'의 강박도 사라졌다. 한 문단이 채 안 되는 글에서 무슨 심오함을 기대한단 말인가. 그저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마음에 드는 글이 있으면 링크를 걸어 보내면 된다. 누구에게? 나 자신에게. 아니면 내 '추종자'에게. 대문에 걸린 '셀카'가 말해주듯, 이제 '모든 시민은 연예인'이다.

블로그에서 생겨난 '격식으로 인한 문턱'이 Twitter에서는 140자라는 단문이 주는 한계로 인해 오히려 낮아졌다는 말을 하고 있는데요, 제가 쓴 Applause Marketing (1)에서 저는 Twitter에서도 이같은 현상은 일어날 수 있고, 일어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기사의 링크를 따라가서 읽어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의 [뉴미디어기획]시리즈의 한 편입니다. 그리고 이 편의 핵심은 사실 Twitter와 같은 단문 블로그의 인기 요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바로 '고추장 마케팅'을 우려하는 데 있습니다. Twitter가 해외에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미투데이에 밀리고 있다거나, 삼성의 옴니아 시리즈가 아이폰 대항마로 해외에서 큰 인기를 끈다거나 하는 기사들이 얼마나 우려스러운 기사들인가 하는 거죠.

미투데이가 Twitter보다 많은 가입자를 순식간에 유치하게 된 것은 많이들 아시는 것처럼 빅뱅을 통한 유명인 마케팅의 힘이 컸습니다. 게다가 미투데이에 올라온 내용을 300건까지 무료로 휴대전화로 전송해주니, 파괴력은 상당했죠. (빅뱅의 팬이 승리가 보내는 문자를 휴대전화로 받아볼 수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반면 Twitter는 유명인 마케팅도, 무료 문자도 안하고, 지원 안됩니다. Twitter 한국판이 나오기 전까지는 어쩌면 계속 안될 수도 있구요.

Twitter와 같은 해외의 인기 서비스는 '열린 구조'를 근간으로 합니다. 식상한 이야기같지만, 우리나라 서비스에서는 접하기 힘든 미덕입니다. 사용자들로 하여금 서비스의 용도와 활용 방법을 정하게 하는 해외 서비스와 달리 우리나라 서비스는 대부분 다양한 메뉴와 옵션을 지원하는 것이 사용자의 구미에 맞추는 것이라는 접근을 취합니다. 결국, 사고 방식과 환경 자체가 다른 겁니다. (주: 틀린게 아니라 '다르다'고 한 점에 유의하시길..^^)

이같은 사고 방식과 접근의 차이는 서비스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하드웨어 제조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는 듯 보입니다. 아이폰이 큰 인기를 얻자 삼성은 '아이폰보다 훨씬 고성능의 제트폰을 출시'함으로써, 혹은 옴니아2로 '아이폰 잡는 삼성' 포지션을 강화하려고 했습니다. 엘지는 야심차게 내놓은 블랙라벨 시리즈로 '아이폰보다 쿨하게 생긴' '디자인 엘지'의 포지션을 강화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하지만, 두 회사 모두 아이폰처럼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거나 (예: 앱스토어), 새로운 흐름을 안착시키지 못했습니다 (예: 터치 UI). 결과는, 삼성과 엘지가 단말기는 훨씬 많이 팔았어도 수익은 아이폰이 훨씬 많이 가져가는 상황이 돼버렸죠. (참조: "빛 좋은 애니콜.싸이언, 실속은 아이폰")

삼성도 최근 삼성 앱스토어를 연다는 발표를 했고, 늦은 감은 있지만 트렌드를 따라가려는 듯 보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애플같은 오픈된 기업 문화가 없는 상황에서, 아이폰.아이팟같이 개방적인 모바일 디바이스가 크게 부족한 상황에서, 삼성 앱스토어가 내세울 수 있는 장점이 무엇일지에 대해서는 저는 회의적입니다. 결정적으로, 삼성은 여전히 하드웨어의 우월성이 시장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의 모든 하드웨어 관련 이슈는 소프트웨어로 인해 해결될 수 있다는 말이 돌만큼, 하드웨어 위주의 IT는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습니다. Twitter 같은 서비스는 물론, 휴대전화나 TV, 디지털카메라, MP3P 등의 기기 역시 이 흐름을 거스르지는 못할 것으로 보입니다. 기사에서도 "제대로 된 인터넷 기반 플랫폼을 갖추지 못한 하드웨어 기업은 소프트웨어 업체의 하청공장으로 전락하는 신세가 될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지요.

더 좋은 스펙, 더 뛰어난 성능, 더 싼 비용으로 소비자를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그런 생각으로는 Twitter같은 서비스를 최초로 만들어 낼 수도, 혹은 기존의 인기 서비스를 앞지를 수도 없습니다. 소비자들이 원하는 가치를 고민하되, 모든 답이 들어있는 완벽한 서비스를 내놓으려고만 하지 말고 (즉, 스펙으로 승부하려 하지 말고), 사용자들로 하여금 함께 만들어가는 열린 서비스를 내놓는 것, 우리나라에서는 너무 무리한 발상의 전환일까요?

 

 

Posted by ecarus

박수 마케팅은 기업이 사용자로부터 박수를 받기 위한 마케팅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용자가 원하는 것은 인정과 박수라는 인식 하에 그것을 효과적으로 제공하기 위한 기획입니다. (아울러 그 박수는 기업이 소비자에게 해주는 것보다, 다른 사용자들이 내 소비자에게 쳐주도록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는 인식도 중요합니다.)

사용자가 추구하는 '칭찬'과 '박수'는 사용자 자신의 자존감을 과시하기 위한 것이며, 따라서 신뢰(trust)와 평판(reputation)이라는 두 요인으로부터 비롯됩니다.

첫째, 어떤 링크를 친구들에게 소개하면서 그에 대한 칭찬을 들으려면 '나를 믿어, 너는 이 링크를 분명히 좋아할거야'라는 신뢰, 즉 '내가 추천하는 것은 네가 좋아할 것이다'라는 '공감'을 바탕으로 한 신뢰가 깔려 있어야 가능합니다.

둘째, 링크를 친구들에게 소개하면서 박수를 받으려면 '나는 이런 재미있는 (혹은 유용한) 리소스를 알고 있어. (넌 몰랐지?) 나에 대해, 혹은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나를 Follow해 (혹은 내 블로그를 구독해)' 라는 (때때로 정보의 비대칭성--information asymmetry--에 기인한) 자존감/자부심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 경우 역시 '아 이 사람은 나보다 많은걸 알고 있군'이라는 믿음을 주는 것이 필요하죠.

칭찬과 박수를 얻기 위한 신뢰, 그리고 상호 신뢰를 쌓기 위한 사용자들의 노력이 현재 인터랙티브 환경, 인터랙티브 마케팅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신뢰는 아울러 '감사 (appreciation)'로 더 잘 획득될 수 있습니다. 감사를 얻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다른 사람을 소개하고, 공을 돌리고, 다른 사람의 콘텐츠에 링크를 걸어주며, 출처를 밝히는 것입니다. 아주 기본적인 일이지만, 잘 안지켜지는 일이기도 합니다. ^^

박수를 향한 열망과 이를 위한 신뢰는 바로 모든 사이트의 트래픽을 증가시키기도 하고, Google의 검색 알고리듬의 핵심이 되기도 하는 요소입니다. (Reputation과 trust야말로 Google에게 가장 중요한 통화(currency)인 셈이죠.)

박수와 칭찬은 SNS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현됩니다. 블로그에서 '인정' 혹은 '칭찬'을 받기 위한 노력은 댓글(코멘트) 혹은 트랙백으로 나타납니다. Twitter는 RT와 Follower의 수라고 할 수 있겠죠.



Posted by ecarus

'Applause marketing'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박수마케팅' 이겠네요. 소셜미디어 마케팅을 위시한 웹2.0 마케팅을 묘사하는데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기본적으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고, 인정, 존중해 주고, 인기가 있길 바라며, 박수받길 바란다는 이야기입니다. 웹2.0을 들먹일 필요도 없이 너무 당연한 이야기죠. 그런데 여기에 '마케팅'이라는 단어가 붙는 것은 그런 가치를 사람들(즉, 소비자 혹은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입니다.

인터랙티브 마케팅의 초기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경품이 범람하던 시기였습니다. 마케터들은 온라인이라는 채널을 이용함으로써 절감된 마케팅 채널 비용을 (소비자에게 다가간다는 구실로) 엄청난 경품으로 뿌렸습니다. 여전히 흔히 볼 수 있는 '대박 페스티벌' 등이 모두 그 아류입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경품을 받는 것에 의외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경품을 탄 소수야 모르겠지만, 메시지에 노출된 소비자들에게서는 거의 브랜딩 효과를 발겨할 수 없었던거죠. 때문에 '온라인 내 소비자, 즉 사용자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가 촉발되었고, 우력한 답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applause' 즉 박수입니다.

예전 싸이월드를 쓰던 사람들, 지금 블로그를 쓰는 사람들, 그리고 Twitter 사용자들을 보면 고개를 끄덕이실 수 있을 겁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 뭔가를 남깁니다. 그리고 '쌍방향성'이라는 점을 내세우면서 '왔다간 흔적을 남겨달라'거나 '추천해달라'거나 '댓글을 달아달라'고 합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블로그 사용/방문시 하면 좋은 일들이긴 하죠.)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나의 존재를 널리 알려달라'는 욕구가 존재합니다. 인정받고, 존중받고, 박수받기 위해서 말이죠.

때문에, Applause marketing은 다른 말로 'telepresence marketing'으로도 불립니다. Applause marketing이 반드시 온라인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사용자 = 매체'가 되는 온라인상에서 그 특성이 가장 뚜렷이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온라인에서의 telepresence'와 연결되는 셈이죠. 

Twitter에서 오가는 대화를 보면 이 같은 패턴은 더 분명하게 발견됩니다. 얼마전, Twitter 대화의 40%는 잡담이라는 기사가 있었는데요, 사실 잡담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Twitter의 사용자들은 "왜" 자기의 140자 이야기를 올리고 있으며, 그 내용은 어떤 변화의 흐름을 보이고 있는가가 더 흥미있는 주제죠.

사람들은 Twitter에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올리더라도, 그것을 누군가 읽을 거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글을 씁니다. 처음에는 독백같은 잡담으로 시작하지만,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게 되고, 자신에게 말을 걸어주기를 원하며, Follower가 하나둘 늘어나면서 올리는 글의 성격은 조금씩 바뀌어 갑니다. 그리고 사용자는 두 갈래로 진화합니다. 첫째는 일상이 아닌 자신을 '과시'할 수 있는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는 갈래. 둘째는 자신과 가까운 그룹 구성원끼리의 커뮤니케이션에 침잠하는 갈래입니다.

첫번째의 경우, 사람들은 자신을 따르는 Follower를 만족시킬 수 있는 콘텐츠거리를 찾아 헤메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새로운걸 남보다 먼저 찾아 Twitter에 올립니다. 마치 Digg과 유사한 사용 패턴을 보이게 되는 겁니다. 그 내용이 더 많이 RT 될수록, 다른 사람들이 나를 더 많이 인용할 수록, 내 이름이 자주 발견될 수록 자신의 존재가치가 입증된 것처럼 뿌듯해하죠. (혹시 읽으면서 오해하실까봐 말씀드리지만, 이런 현상이 부정적이라는 뉘앙스는 절대 아닙니다. 당연히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니까요.) 이것은 비단 Twitter에서만의 현상이 아닙니다. 블로그 저자들을 보더라도 이는 매우 분명히 나타납니다. 블로그가 Weblog의 약자였던 것에서 알 수 있듯, 블로그는 웹에서의 활동에 대한 간단한 기록이 그 시초입니다. (마치 지금의 Twitter와 비슷했다고 할 수 있겠군요.) 하지만 사용자들이 늘어나고 독자들도 늘어나면서 블로그는 매체의 길을 걷게 됩니다. 파워블로그니, 프로블로거니 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애꿎은 보통 사용자들도 이제는 '한번 더 생각하고 글을 쓰는 상황'에 오게되었습니다. 애초 자유롭고 문턱이 낮은 개인 매체였던 블로그가 이제는 그닥 자유롭지만은 않은 매체가 되고, 보이지 않는 문턱이 대신 생겨버린 셈입니다.

두번째의 경우는 오히려 개인간 커뮤니케이션의 활성화라는 Twitter의 수립 목적에 가까운 사용 패턴을 보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90년대 우리나라 PC통신 환경처럼, Daum 카페처럼 진화하는 경향을 보이지만, PC통신과 카페가 그랬듯, Twitter라는 서비스의 새로움이 수명을 다하면 이 커뮤니케이션 패턴은 급속히 쇠퇴합니다. 사용자들은 또다른 새로운 서비스를 찾아 옮겨가는거죠. (이런 점에서, Twitter를 사용하는 두번째 경우도 역시 순수한 대인 커뮤니케이션 외에 '남들에게 새로운 서비스를 사용하는 나 자신을 보여준다'는 존재가치를 입증하려는 목적이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첫번째든 두번째든 telepresence, applause의 동기는 들어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Twitter는 엄청난 양적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덕분에 지금은 구글에 필적하는 지식의 보고, 혹은 새로운 eco-system을 구축하고 있다는 평가도 받고 있죠.

Twitter가 실시간 검색이라는 무기로 Google에 대적하고 있는 Twitter지만, 분명 개선할 여지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Twitter에서 지 식이 효과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 지식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그리고 편리하게 축적되고 공유되며 지식을 진화시키고 있는지는 미지수입니다. Wikipedia의 경우 지식의 진화에 있어서는 독보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요.

Twitter를 처음 만들 때는 이런 생각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현재의 진화방향을 올바로 읽고, 앞으로의 방향을 예측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Posted by eca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