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s2010. 1. 4. 05:12

잘 다니던 대기업을 작년에 그만두고, 작은 벤처(?)에서 일을 시작한지 벌써 반 년이 넘었습니다. 

그때와 달리 올해에는 제가 스스로 새로운 조직을 꾸리고 조직의 문화를 만들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되었습니다. 조직당하는 입장에서 조직하는 입장으로 바뀌다보니, 예전에 조직당하던 당시 아쉬웠던 점들이 먼저 생각나더군요.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그 무엇에 의한 지배와 통제'를 근원적인 두려움으로 갖고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이는 절대적인 신, 혹은 절대 권력에 대한 갈망과 회귀를 낳기도 했지만요.) 다시 말해 인간은 만일 자신들이 누군가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면, 통제의 주체는 반드시 자신들이 제어할 수 있는 무엇(something), 혹은 제어할 수 있다고 믿어지는 무엇이기를 희망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조직 운영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 만들어 낸 통제 주체의 한 예가 '인사 평가 시스템'입니다. 조직의 평가 시스템은 지배와 피지배를 드러내는 작은 예이지만, 적절한 예이기도 합니다. 

예전에 대기업의 인사 시스템을 겪으면서 '효율성에 지배당하는 인간성'이라는 분석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인간은 자신을 포함한 조직의 구성원을 통제하기 위해 고과 시스템이나 각종 평가 제도라는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냈는데, 이는 편리하고, 객관적이며, 효율적이기까지 한 장점이 있다고 생각되었죠. 그러나 이를 통한 통제는 '객관성'과 '효율성'의 극대화를 추구하다보니 정작 '인간성'과 '이성'이 경시되고, '규율'과 '논리'만이 중시되는 폐단을 낳았습니다. 결국에는 그 시스템을 처음 고안해낸 인간들마저 시스템의 희생자가 되어갔지요. 

이 시스템에 익숙해지면 조직의 구성원들은 누군가를 보고 평가할 때 '내가 아는 아무개'보다 '시스템에서 어떻게 평가된 아무개'를 먼저 떠올리는 데 익숙해지게 됩니다. 언젠가 제가 시스템을 고안해야 하는 입장에 서게 된다면, 효율성은 조금 떨어질지 몰라도 (평가/통제 대상으로서의 아무개 보다) 사람 그 자체를 떠올릴 수 있는 시스템, 그리고 '인간의 시선'을 가진 조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요.. 이제 그 시험대에 선 셈입니다.

 

또하나의 시험대에도 동시에 서게 되었는데, 조직을 어떤 질서로 운영할 것이냐에 대한 시험대입니다. 

저는 항상 조직을 운영함에 있어서는 '논리'를 기반으로 한 위계를 세우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나이나 직급에 의한 것이 아니라 토론을 통한 논리의 정합성에 따른 위계질서가 바람직하다는 것인데요, 누군가 나를 논리로 설복할 수 있다면 나는 그에 동의하고, 반대로 나의 논리가 상대방의 논리보다 '논리적'이라면 상대방이 나에게 동의하는게 맞다는 것입니다.

만일 쌍방의 논리가 도저히 합일점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평행을 달릴 때, 혹은 토론 당시에는 어느쪽이 논리적인지 확인이 불가능한 경우라면 직급이나 나이에 따르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직급은 업무에 대한 책임의 정도와 대개 비례하고, 나이는 경험과 비례하니 말입니다.) 이처럼 논리를 위계의 기반으로 하는 것은 기존의 조직 문화와는 많이 다른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일반적 조직에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이기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상명하복'의 관습 때문이라면 곤란하다고 생각합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보다 경험과 지식에서 앞서 있고, 그로부터 비롯된 논리가 아랫사람의 논리보다 탄탄하기 때문에 윗사람을 따르는 것이라면 합리적이겠지만, 무조건 직급에 의한 상명하달식의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면 그 조직의 발전에는 해가 되지 않을까요? 아랫사람이라도 윗사람보다 좋은 논리를 갖고 있다면 윗사람이 그에 동의해 주는 것이 합리적일 것입니다. 

따라서, 누가 더 좋은 논리를 갖추고 있는지가 관건이 됩니다. 좋은 논리를 갖추기 위해서는 (1) 지식이 많고, (2)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훈련이 잘 되어 있으며, (3) 다른 사람들보다 한 번 더 생각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따라서 윗사람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지금보다 훨씬 더 깊은 연구와 자기계발을 해야겠죠. (다른 말로, 윗사람들은 기존 문화보다 피곤해지는 셈입니다.)

조직의 상하질서는 이처럼 논리, 그리고 논리를 뒷받침하는 지식과 경험, 훈련에 대한 존중(respect)를 기반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나이와 '짬밥'에 대한 무조건적인 respect는 너무 20세기 중반적이니까요.


Posted by ecar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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