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각각 이노션, SK M&C, 제일기획. 본 포스트와 딱히 관련이 있는 곳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우리나라 대행사들 중에서는 가장 활발하게
소셜 미디어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곳이라 생각되어 올렸습니다.


광고 대행사가 꼭 '대행사'여야 할까요? 이 글은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광고업의 미래에 대해 핑크빛 예상을 하는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이런 전망은 최근에 등장한 것은 아닙니다. 제가 광고학과로 유학을 처음 갔던 때가 96년이었는데 당시 미국의 교수님들이 그러시더군요. "백인 남학생들이 얼마 없는 학과는 사양길에 접어들었다고 봐도 좋다." 차별적인 요소가 있는 위험한 말이긴 하지만, 현실은 분명 그것이 사실임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전통적인 광고, 커뮤니케이션, 소비자 심리를 주요 커리큘럼으로 하던 미국의 광고학과들은 대부분 한국인, 중국인, 미국 여학생으로 채워지고 있었고, 백인 남학생들은 대부분 경영학과 쪽으로 눈을 돌렸죠. 그 후 10여년이 흐른 지금 결과가 어떤지에 대해서는 여러분도 잘 아실테니 넘어가기로 하고..


이 때만 해도 TV를 필두로 한 4대 매체의 위용이 건재했던 시절입니다. 학생들은 광고에 어떤 유명인사를 등장시켰을 때 가장 광고 효과가 높아지는지에 대해 연구했고, 교수님들은 광고가 사회에 미치는 파장과 사회적 책임에 대해 논했습니다. IMC에서 광고는 나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고,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등장하긴 했지만 (소셜 미디어는 커녕) 온라인 배너 광고가 광고의 중요 흐름으로 인식되기도 전입니다. 광고의 효과는 (최소한 겉에서 보기에는) 여전히 강해보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광고학/광고업에 대한 전망은 밝지만은 않았습니다. 광고라는 패러다임이 추진력을 잃어가게 된 이유는 '대행업'이라는 업(業)의 한계 때문이었습니다. 소셜 미디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한참 전, 이미 마케팅 업계에서는 '관계 마케팅'이라는 화두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대중 소비자와 대비되는) 기 구매자와의 관계 수립, 혹은 잠재력 높은 구매자와의 관계 수립을 위해 어떤 커뮤니케이션을 펼쳐야 하느냐가 주요 논점이었지요.

다양한 전략과 전술이 등장했지만 전통적인 광고나 PR 대행사가 아닌 마케터가 직접 관장하는 마케팅이 중요하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습니다. 관계의 관리는 분명 쉬운 일이 아니지만 (즉 대행사에게 시키고 싶지만), 누가 대신해 줄 수 있는 성격의 일이 아니라는 데에 중지가 모아진거죠.

눈치채셨겠지만, 이 때 이루어진 논의는 최근 소셜 미디어 마케팅을 두고 벌어지는 논의와 매우 흡사합니다. '소셜 미디어 마케팅을 어떻게/누가 해야 하느냐'에 대한 논의가 미국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활발히 이루어지는 것은 어쩌면 미국의 경우 이같은 논의가 이미 이루어진 적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관계 수립 및 관리에 있어서 주인공은 관계 당사자들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당사자'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로 브랜드(혹은 마케터, 광고주)와 소비자이지 대행사가 아닙니다. 물론 대행사가 광고주에 대한 모든 내용을 꿰뚫고 광고주를 100% 대신해서 소비자와 커뮤니케이션할 수만 있다면야 별 문제가 없겠지만, 현실에는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없죠. 100% 종속된 인하우스 에이전시라고 해도 광고주를 완벽히 대변할 수는 없습니다.

소셜 미디어가 주요 화두로 떠오르는 요즘, 관계 관리라는 주제는 예전보다 더 유용해졌습니다. 소비자와의 커뮤니케이션은 과거보다 더 간편해지고 빨라졌습니다. 소비자의 피드백은 직접적이고 즉각적이며 폭발적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소비자는 같이 어울릴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브랜드를 선호하며, (홍보팀의 주도 하에 뿌려대는 보도자료와 공식 답변 뿐만이 아닌) 인간적인 성격과 화법을 가진 브랜드와의 직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기대합니다.

즉, 소셜 미디어의 등장으로 관계 마케팅은 이전보다 훨씬 강력하고 중요해졌습니다. 이 구도에서 광고/PR 대행사의 역할은 크지 않아보입니다.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가 등장하기 전부터 이미 그 역할이 축소되고 있었는데, 이제는 소셜 미디어라는 새로운 현상(phenomenon)까지 생겼기 때문입니다. 물론 대행사들은 소셜 미디어가 자신의 업에 미칠 악영향을 가늠하고 나름대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어떤 곳은 소셜 미디어 전담팀을 만들기도 하고, 어떤 곳은 소셜 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사업 기회를 탐색하기도 하며, 소셜 미디어에 정통한(?) 인력을 채용함으로써 경쟁력을 강화하기도 하죠.

하지만, 이 모든 활동은 여전히 '광고주를 위해 우리가 그들의 업무를 대행하겠다'는 생각, 혹은 '광고주의 소셜 미디어 마케팅을 옆에서 돕겠다'는 생각을 기본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많은 광고주들은 대행사가 짜 놓은 이 같은 판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말이죠. 광고주들은 소셜 미디어라는 주제가 아직 그들에게 너무나 복잡하고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음 편에서 계속됩니다.]


Posted by eca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