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폰이든 티켓몬스터든 혹은 위메프든 소셜커머스가 공동 구매에 그치고 있다는 비아냥을 벗어나 장기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사용자 개인의 역할을 확장해야 합니다. 사용자의 역할 확장이란 구매자, 입소문 전파자, 혹은 구매 유발자의 역할 이상으로 권한을 확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재의 (이른바) 소셜커머스 서비스들은 모두 개인 구매자들을 모으는 것에 치중하고 있습니다. 개인들로 하여금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등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혹은 친구에게 전화를 걸든) 매력적인 할인 혜택에 대해 소문을 퍼뜨리게 하여 목표했던 참여자/구매자 수에 도달하게  함으로써 할인을 제공하는 업체/매장에게는 최소한의 마케팅 효과를 보장하고 개인들에게는 할인 혜택을 제공하며 소셜커머스 업체에게는 수수료 수익을 가져다주는, 말하자면 일석삼조의 프로세스입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세 가지 장점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이므로 이 중 하나라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경우 소셜커머스의 비즈니스 프로세스 전체가 흔들리게 됩니다. 문제는 이 세 가지 장점 중 '마케팅 효과'가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소셜커머스가 등장했던 초기에는 '소셜'을 활용한 듯한 서비스의 특징과 파격적인 할인율에 힘입어 업체/매장을 알리는 기제가 어느정도 작동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셜커머스라는 시스템이 일상화돼버린 후, 유사한 서비스가 우후죽순 등장한 후에는 신선함은 거의 없어졌고, 소셜커머스의 할인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많은 업체들은 프로그램을 통해 구매를 한 소비자들이 일회성 소비에 그칠 뿐 반복 방문 혹은 충성도 제고에는 효과가 없었다고 불만을 터뜨리게 되었습니다. 물론 일부 몰지각(?)한 매장/업체들이 소비자에게 잘못을  저지른 일도 많았습니다만.


이제는 소셜커머스의 관건은 누가 더 매력적인 제품/매장을 찾아내서 파격적인 할인을 제공하는지가 돼버렸습니다. 이전투구의 시기로 접어든 셈입니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마케팅 효과가 담보되지 않는 상황에서 현재의 모습이 계속될 경우 소셜커머스는 '쿠폰 마켓'으로밖에는 진화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이같은 상황의 해결책은 참여하는 업체들의 마케팅 효과를 올려주는 것 뿐입니다. 그러나 기존의 소셜머커스 프로세스는 마케팅 효과를 향상시키는 것에 한계가 있습니다. 기존 프로세스는 소비자를 구매자/입소문 전파자로만 간주하기 때문에 무슨 방법을 취하든 결국 소비자가 해당 딜을 보게 하고, 관심있는 소비자를 모아서 참여하게 하는 것에 그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소셜커머스에서의 임파워먼트는 이와 같은 소비자의 역할을 파격적으로 확대함으로써 마케팅 효과를 제고하는 것에 주안점을 둡니다. 소셜커머스는 개인 소비자들을 모으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그들이 주도권을 가질 수 있게 해주어야 합니다. 현행과 같이 (매력적인 딜을) 구경하고, 소문 내고, 할인을 받게 하는 것 외에 또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도록 힘과 기회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사룔자에게 좀 더 많은 권한을 주는 것 만으로도 기존의 마케팅 효과는 크게 향상될 수 있습니다. '소비자의 관여와 인터랙션이 높아질 때 마케팅 효과도 높아진다'는 것은 디지털 마케팅의 가장 핵심적인 원칙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기회를 부여 받았을 때 스스로 새로운 기회를 찾아냅니다. 싸이월드가 그랬고 이베이, 페이스북, 트위터 등 성공한 서비스의 대부분은 서비스 기획자가 생각했던 효용 이상의 무언가를 사용자들이 스스로 찾아내고 실행함으로써 폭발적인 성장의 계기를 맞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소셜커머스에서의 임파워먼트는 파편화된 소비자들이 모여 공동구매를 하도록 하는 것을 뛰어넘어 판매는 물론 거래를 촉진하는 것까지 사용자에게 맡겨버릴 때 진정한 성장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쿠폰이든 할인이든 주어진 과실을 따먹는 것을 넘어 과실을 직접 만들어내고 더 넓은 기회를 사용자들이 직접 만들어 낼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 사람들이 소비자를 넘어 진정한 '사용자'가 될 수 있게 해 줄 때가 소셜커머스에서의 Enabling "by" Empowering 이 적용되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이같은 임파워먼트는 (LBS에서의 임파워먼트와 마찬가지로) 사용자들이 스스로 재미와 의미를 만들어내게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우리는 흔히 '소비자가 아니라 사용자다'는 말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사용자는 적극적인/능동적인 소비자가 아니라 스스로 기회를 만들어 내는 참여자입니다. 서비스 기획자가 이들을 (능동적이든 적극적이든) 소비자로 간주하면 이들은 소비의 틀에서 빠져나오려 하지도 않고 당신을 위해 새로운 기회를 창출해 주려 하지도 않습니다. 사용자들은 서비스의 ‘의미’를 인식하는 순간 스스로 강해지고, 스스로의 활동 공간을 넓히며, 그 과정에서 재미와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고, 궁극적으로 당신(서비스 운영자)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 주게 마련입니다. 


Posted by ecarus

포스퀘어, 고왈라, 혹은 국내의 아임인 등 현존하는 모든 위치기반 소셜 서비스(Location-based Service, LBS)의 한계는 그것이 주는 ‘재미’에 한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페이스북 플레이스나 옐프 등 위치 외에 부가적인 가치가 있는 경우 (예를 들어 페이스북은 소셜 네트워킹에, 옐프는 POI-Point of Interest 소개에 더 방점이 찍혀있는 경우죠) 는 이러한 한계에서 약간 비껴나 있지만 순수하게 장소 체크인 활동으로부터 시작한 서비스의 경우 ‘지속적으로 사용해야 할 효용성'이 부족합니다.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소셜 네트워크는 지인들과 소통하고자 하는, 말하고 싶은, 혹은 남들에게 주목받고 싶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에 직접 닿아 있습니다. 따라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커뮤니케이션형 소셜 서비스들은 쓰다가 중단했을 때 어느 정도의 상실감을 느끼게 마련이죠. 이는 심심하다는 것 이상의 중요한 상실감입니다.  


하지만 LBS는 그렇지 못합니다. 내가 어느 곳에 있었다는 것, 어디에 누가 있다는 것, 어디를 가면 주로 누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와 거리가 멉니다. 마치 매일 일기를 쓰면 삶이 풍요로와질 수는 있지만, 쓰지 않아도 살아가는 데에는 불편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혹은 열심히 사용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그만두더라도 상실감을 느끼지는 않습니다. 간단히 말해 LBS는 ‘하면 좋지만 안해도 그만인’ 서비스인 셈이죠. 


Brightkite를 필두로 LBS라는 서비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그리고 수많은 매체들은 독특한 ‘게임 요소’를 언급하며 새로운 서비스의 출현에 관심을 표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간과한 것은 앞서 말한 ‘하면 좋지만 안해도 그만’이라는 서비스의 본질적 성격입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그 어떤 게임도 영원히 재미있지는 않다’는 사실 역시 간과되었습니다. 


LBS가 등장한지 고작 2년이 지난 지금, 게임 요소에 의존했던 LBS는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절치부심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Mayor 시스템’을 심화시켜도, 주어지는 ‘뱃지’의 수를 늘리고 등급을 나누어도, 혹은 뱃지를 바탕으로 한 마스터 구조를 만든다 해도 (주: 말하자면 커피숍에 자주 가는 사람을 바리스타, 공항에 자주가는 사람을 젯세터라고 이름을 붙여 사용자들의 카테고리를 나누는 식), 그 게임 요소의 뿌리는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있었던 ‘뱃지’ 시스템에 기반한 것이기 때문에 흥미를 주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설사 이런 새로운 시도들이 신선한 재미를 준다 해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지루해져 버리는 구조임은 부인할 수 없죠. 결국 뱃지, Mayor 등의 체크인 횟수를 바탕으로 한 이른바 '게임 요소'는 그 한계가 명확하며, 서비스의 성장을 위한 곁가지 요소가 될 수는 있어도 서비스를 장기적으로 이끌어갈 핵심 성장 요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서비스의 장기 성장 동인, 그리고 사용자로 하여금 서비스를 반복 사용하도록 하는 것은 결국은 ‘효용성’입니다. 쓰다가 안썼을 때 상실감을 주는 본질적인 효용성. LBS가 100% 게임을 지향하는 것이 아닌바에야 재미는 부차적인 요소일 뿐입니다. (100% 게임이라 해도 재미를 지속시키고 제품 수명을 늘리기 위해서는 인간의 동기 – ‘이 게임은 ***한 장점이 있기 때문에 해야 돼’라고 느끼게 만드는 – 가 고려되거나, 혹은 도저히 끊을 수 없는 중독성을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효용성'이란 바로 ‘나에게 도움되는 무엇’을 의미하는데, 가장 대표적인 형태가 ‘경제적 이익’임은 두말할 나위 없습니다.


아쉽게도 기존의 Mayor나 뱃지 시스템은 이 같은 ‘도움’을 주는 데는 무척 취약합니다. 물론 공짜 커피를 얻어마시는 등의 잠깐의 우월감을 느낄 수는 있지만, 누구도 공짜 커피를 위해 꾸준히 체크인을 할 수는 없으며, 어떤 가게도 Mayor에게 무한정 공짜 커피를 제공하지는 않습니다. 


이럴바에야 소셜커머스에서 제공하는 쿠폰이 서비스의 효용성을 좀 더 직접적으로 제시하는 장점이 있습니다. 문제는 쿠폰이라는 도구 자체가 이제는 너무 일상화 되어있는데다가 (서울 시내 거리에서 뿌려지는 수많은 헬스클럽 할인 전단지를 생각해 보면 아실 수 있습니다), 쿠폰의 효용성이 대체로 소비자의 심리적인 Threshold를 극복할만큼 대단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소비자의 심리적 문턱을 넘지 못하는 몇 가지 대표적인 이유 - 서비스 제공자가 만든 쿠폰은 사용자가 원하는 장소 혹은 관심 있는 분야의 쿠폰이 아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간혹 사용자와 들어맞는 쿠폰이라고 해도 사용자가 원하는 시간대와 안맞을 수도 있고, 할인폭이 작아서 흥미를 끌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소셜커머스는 ‘반값’이라는 큰 할인폭으로 소비자의 시선을 끌고, 소비자의 평소 관심(예: 맛집, 건강, 여행 등)을 파악한 후 그에 맞는 쿠폰을 보내주기도 하며, 소비자가 있는 장소 주변에 한정된, 혹은 지금 당장 사용해야 하는 할인을 제안하기도 합니다. 모두 쿠폰의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상식적인 접근들이죠. 


그러나 어떤 시도가 됐든 이들은 모두 쿠폰의 일방향적 성격에 기반한 것들입니다. 사용자가 원하는 가게에서, 원하는 시간대에, 만족스러울 정도의 할인을 받게 하기 위해 소셜커머스 업체들은 최대한으로 맞춰진 (customized) 쿠폰을 제공하려고 노력하지만, 이는 당연히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이쯤에서 두 갈래로 써내려온 이야기를 정리하자면, 첫째, 효용성이 낮다는 LBS의 단점은 사용자에게 좀 더 직접적인 효용성 (예: 쿠폰) 을 제공하는 것으로 돌파를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둘째, 쿠폰의 근원적인 단점은 서비스 제공자가 사용자의 필요를 짐작하여 만들고, 사용자에게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 두 가지 단점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편이 바로 사용자 임파워먼트입니다. 


임파워먼트는 사용자들이 스스로 재미와 의미를 만들어내게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LBS 서비스 제공자는 지도와 지도 위 소셜 공간, 그리고 그 안에서 사용자들이 자유롭게 가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도구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이를 통하여 효용성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Mayorship이 됐든 뱃지가 됐든, 아니면 또다른 보상이든 그것을 가장 잘, 적시에 알 수 있는 것은 기획자가 아닌 소비자입니다.* 그러므로 그들로 하여금 새로운 보상을 만들어낼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한 LBS의 진화 방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부터 열까지 소비자에게 맡긴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용자가 원할 만한 가치를 미리 예측하고 설계하며 방향을 제시하되, 사용자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가치에 맞추어 재빠르게 변신하는 기획, 이를 가능케 하는 유연한 구조가 중요하다는 의미입니다. 


* 스티브잡스가 ‘소비자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기 전까지는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고 했지만, 세상의 모든 마케터가 잡스가 아닌 바에야 소비자의 직관과 집단 감성에 의존하는 편이 오히려 덜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ecarus

empowerment trend

어떤 영역이 됐든 – 새로운 서비스를 예측하는 것이든, 새로운 마케팅을 기획하는 것이든 – 중요한 것은 무엇을 보이느냐, 그리고 무엇을 보고 있느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선문답같은 표현입니다만, 보이는 것을 그려내는 것과 생각나는대로 그리는 것은 다르다는 말입니다. 미켈란젤로가 했다는 '(훌륭한) 조각은 돌 안에 갇혀있는 사람을 끌어내는 일'이라고 한 말과 비슷한 맥락이기도 하지요.
 
어떤 현상이나 모습을 미리 보고 있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큰 차이를 만들어냅니다. 아무리 뛰어난 기획자가 머릿속에 제아무리 훌륭한 계획을 그리고 있다 해도 그것이 전체의 흐름에 어긋나는 것이라면 혼자만의 공상에 그치는 것과 같습니다. 좋은 기획이란 결국 이미 벌어지고 있는 현상에서 거대한 흐름을 읽고, 그 흐름을 타고 더 크게 일어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이미 갖고 있는 일차원적인 인식을 스스로 깨는 것도 필요합니다. 페이스북을 친구 맺는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링크드인을 인맥을 만들고 관리하는 서비스로만 바라보는 단선적인 인식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뉴스’는 왜 항상 바깥에서 일어나고 나는 그것을 받아보기만 해야 하는가. 왜 매체가 생산해 낸 뉴스는 그 자체로 ‘완결된’ 콘텐츠의 모습을 띠어야 하는가. 왜 독자가 뉴스를 교정하고 만들어내고 참여할 수 없는가. 뉴스와 매체의 '근엄함'은 자체를 위해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그저 오래된 교조(도그마)인가. 날씨를 전하는 사람이나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은 왜 항상 지루하게 날씨만 보여주는가. 왜 주가(주식) 어플리케이션은 천편일률적인가?
 
관건은 끊임없이 '왜'라고 묻는 것입니다. 진실, 사실, 전통, 혹은 관습이라고 믿어왔던 모든 현상들에 대하여 한 번 더 '왜'라고 묻고, 스스로의 믿음이 단선적인 것은 아니었는지 자문하는 것입니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라는 현상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믿고 있는 명제는 무엇인지, 그것은 과연 참인지 아니면 참을 가장한 집단적 믿음인지 돌아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사람들은 정말 다른 사람들 (친구, 가족 등) 과 연결되는 것을 좋아하는가. 내 소유물은 나누는 것보다 우선은 지키는 것이 정말 지혜로운 일인가. 무언가를 나눈다는 행동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우리가 답이라고 믿고 있는 것들은 과연 '참'인지, 혹은 다른 이유가 숨겨져 있는 것은 아닌지 깊이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무언가 ‘잘 보이지 않는 다른 이유’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원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내 것을 지키는 것보다 나누는 것이 때로는 더 큰 가치가 되어 돌아올 수도 있습니다.
 
이미 일어나고 있는 현상으로부터 시작하는 끊임없는 자문은 간혹 숨겨져 있는 큰 흐름을 '우연히' 발견할 수 있게도 합니다. 제가 읽은 흐름은 Empowerment, 말하자면 권력의 이동 쯤으로 해석할 수 있는 흐름이며, 이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고자 합니다.  


Posted by eca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