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말씀드리지만, 이 포스트에서 다루고 있는 삼성생명 캠페인의 이야기는 캠페인 기획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제가 만들어 낸 100% 허구이며, 삼성생명의 실제 의도 혹은 이 캠페인이 실제 개발된 과정과는 전혀 무관합니다.
1. 짜여진 틀에서 벗어나기
- 주어진 사실에 도전하기
- 질문과 대답의 반복으로 브랜드의 '가치'를 이끌어내기
2. 가치를 구체화하기
- 전달이 아닌 공감 창출하기
3. 주어진 목적 재해석하기
4. 구체화와 시각화, 전략과 아이디어 나누기
마케팅 캠페인의 기획은 브랜드의 ‘가치’를 소비자에게 전하는 과정의 기획이며, 이는 위의 4단계로 요약될 수 있다고 지난번 포스트에서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요, 오늘은 그 나머지 이야기입니다.
2. 가치를 구체화하기 - 전달이 아닌 공감 만들기 (Make it shared not told)
죽지 말라는 메시지는 숭고하지만 자칫 공익광고가 되기 십상인 주제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2.4분에 한 명씩 목숨을 끊는 대한민국. 여러분은 소중합니다. 힘내세요.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이런 식이 돼버리는 거죠.
이건 옛날 방식입니다. 지금은 죽으려는 사람을 하나씩 찾아가야 하는 세상입니다. 타겟에게 일일이 직접 말을 걸어도 들어줄까 말까한 세상이지요.
그렇다면, 죽으려는 사람을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목숨을 끊는 곳은 어디일까요? 한강 다리, 유명한 절벽, 펜션? (죽는 장소)
수면제 파는 약국, 연탄 가게. (죽는 방법)
혹은 자살 사이트, 자살 카페를 떠올릴 수도 있겠네요. 타겟(?)을 가장 많이 만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곳들에 삼성생명의 메시지를 써붙이면 될까요?
‘2.4분에 한 명씩 목숨을 끊는 대한민국. 여러분은 소중합니다. 힘내세요. 살아주세요. 여러분을 응원합니다. 삼성생명.’
이렇게 표지판에 쓰면 될까요? 한강 다리에, 절벽에, 펜션에, 약국 앞에, 혹은 자살 카페에?
나쁘진 않지만, ‘따뜻한 느낌’보다는 ‘절박한 느낌’이 너무 강합니다. 우리의 캠페인은 자살 방지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사람들의 삶을 생각한다는 따뜻한 감성이 전달되어야 하니까요. 게다가 이런 캠페인은 어딘가에서 본 것 같기도 합니다. 일본 어느 자살 명소에 어떤 표지판을 붙였더니 자살율이 떨어졌다는 이야기를 얼핏 들은 적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연탄 가게나 약국에 붙이는 건 말이 아예 안됩니다. 죽으러 가는 사람보다 살기 위해 가는 사람들이 더 많은 장소니까요. 수면제 박스에 메시지를 인쇄해서 붙이는 것도, (불법인) 자살 카페를 찾아 메시지를 내보내는 것도 모두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위에서 나온 이야기들 모두 ‘머리’에 가까운 생각들입니다. 표지판을 세우고, 상담 전화를 설치하고, ‘생명은 소중하다’는 광고를 보여주고.. 이는 죽지 않으려는 보통 사람들이 죽으려는 사람들에게 ‘죽지 말라’고 조언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사람들이 왜 스스로 목숨을 버릴까요?
자신의 목숨이 소중하지 않다고 생각해서가 아닐 겁니다. 대부분의 경우 그 반대로, 소중한 목숨을 버림으로써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은 거겠죠.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너무 힘드니까. 붙잡을 끈이 다 떨어져서 하나도 남지 않았으니까.
주위를 둘러보면, '그런 정신 자세로 공부를 하면 서울대를 왜 못가겠느냐', '죽을 각오로 일하면 빚을 왜 못갚겠느냐'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차고 넘칠 겁니다. 하지만 죽으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건 그런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죽지 말라는 이야기를 못들어서 죽는게 아니라 어쩌면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죽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마지막 순간에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용기를 내서 죽음의 공간에 선 사람들입니다.
뒤돌아볼 곳 없이 마지막 순간에 처한 사람들의 마음을 논리나 감성에 호소하는 짧은 글로 돌린다는 발상 자체가 어쩌면 너무 ‘차가운’ 것은 아닐까요?
이런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은 가족이나, 혹은 본인 자신일 겁니다.
이들이 스스로 마음을 열고 마음으로 돌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말을 잘 거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살 예방 상담전화 대화가 아니라, 소비자에게 말을 거는 메시지를 의미합니다.)
하다못해 길거리에서 ‘도를 아시냐’고 묻는 사람들을 떠올려 봐도, ‘도를 아느냐’고 바로 묻는 아마추어는 없습니다. 기가 좋아보인다거나, 질문이 있다거나, 그 전에 눈을 맞춘다거나 하는 식의 단계가 있지요. 조금씩 마음을 열게 하는 겁니다. 도를 파는 사람들도 그만큼은 노력하는데, 마케터라면 그 이상은 해야 합니다. 조금씩 말을 걸고, 조금씩 우리와, 스스로와 대화할 수 있게 하는 겁니다.
생각해 보면,
그날 죽으려는 사람도 아침엔 어디에선가 일어났을 겁니다.
어쩌면 아침을 먹었을지도 모르죠. 하루종일 마음을 다잡고,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누다가, 그리고 자기가 생각했던 ‘장소’로 갈 겁니다.
마지막 길이죠.
혼자일 겁니다.
혹시라도 걸어서 간다면 이런저런 생각, 정말로 ‘마지막 생각’을 하겠지요.
이들이 걸으면서 하는 생각은 모두 다르겠지만, 이들을 말리고 싶다면, 이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해야 할 주제는 아마도 ‘따뜻한 일상’과 ‘말 들어주는 친구’일 겁니다.
그렇다면 그 길을 '따라가며' 말을 건네야 합니다. 조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따뜻한 일상과 따뜻한 친구를 떠올리게 해야 합니다.
그 길은 어디일까요? 바로 ‘다리’가 되는 것입니다.
도심 속에 있지만 한강의 다리는 가장 사람이 없는 곳입니다. 자동차와 물이 흘러갈 뿐 혼자 있게 마련인 장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강 다리에는 자살 방지 상담 전화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이성적인’ 접근입니다. 고민을 듣고 말려줄테니 전화를 걸라는 건데, 효과가 있겠지만 이를 우리(브랜드)가 또 설치할 수도 없고, 우리의 접근과도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스스로 말을 걸고 대화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다리 위를 같이 걸으며 말을 건네기로 합니다. 따뜻한 일상과 따뜻한 친구를 떠올릴 수 있도록.
사람들이 다리 위를 걸어갈 때 그 발걸음을 따라가며 조금씩 말을 겁니다. 왜 그래? 전화는 해봤어? 밥은?
차근차근. 마치 도를 팔듯이.
저는 '생명의 다리'는 이렇게 해서 탄생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마지막 길까지 따라가며 생각하는, 말을 건네주는 삼성생명.
3. 주어진 목적 재해석하기 - Reinterpret and Recreate Given Objective.
캠페인 아이디어를 만드는 데 있어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앞단계에서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졌듯, 남들보다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됐다 싶을 때 한 번 더 생각해 보는 것. 이렇게도 꼬아보고 저렇게도 상상해보고, 광고주와 소비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충분하다 싶어도 또 곱씹어보는 것. 아이디어는 엉덩이 싸움이라는 말처럼, 이 단계는 인내심이 관건입니다.
캠페인 아이디어, 혹은 캠페인 전략의 대부분은 '캠페인 목적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광고주로부터) 뻔하게 주어진 듯한 캠페인의 목표라 해도 이를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혹은 이를 어떻게 재포장하느냐에 따라 캠페인의 성격은 크게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적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 뿐 아니라 '목적을 새롭게 재해석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중요해지지요. 전략과 아이디어의 대부분이 목적을 재해석하고 새로운 모습으로 재탄생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끊임 없는 자문’과 ‘끊임없는 생각’이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4. 구체화와 시각화, 전략과 아이디어 나누기
캠페인 전략의 핵심 산출물(Deliverable)은 제품이나 브랜드, 혹은 캠페인의 ‘가치 포지셔닝’입니다. 이는 소비자로 하여금 어떤 가치에 공감하게 하느냐 하는 것으로, 제품이나 브랜드의 특장점(Feature) 혹은 혜택(Benefit)을 포지셔닝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전략과 아이디어를 포괄하는 캠페인 기획 단계의 산출물은 이 '가치'를 효과적으로 메시지화 하고, 구체화(materialize), 시각화(visualize) 하는 것입니다. 생명의 다리를 예로 들면 ‘죽지 말라’는 메시지 도출까지가 전략, ‘다리’를 떠올리는 것 까지는 전략과 아이디어의 공존, 다리에 어떤 메시지를 넣을 것인가는 제작팀의 몫이 되는 셈입니다.
즉, 다시 말하면 캠페인의 '전략'이란 조각조각의 뼈로 이야기의 뼈대를 만드는 것, 주어진 목표를 재해석하여 메시지화 하는 것이며,
'아이디어'는 주어진 뼈대에 살과 이야기를 붙이는 것, 혹은 (위와 같은) 전략의 수립 과정을 풍성한 이야기로 만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Materialize와 Visualize가 주요 활동이 되는 셈이죠.
소비자의 참여를 제고하거나 인터랙티비티를 높이거나, 혹은 사용자의 권한을 강화하는 등의 다양한 마케팅 전략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이 모든 것들은 사실은 방법론에 불과합니다. 위에서 수립된 캠페인의 전략과 아이디어를 전파하기 위한 도구인 셈입니다.
소비자의 참여를 쉽게 하거나 Engagement Rate을 높이는 것은 여러가지 방법으로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러나 공감시키고자 하는 '가치'가 캠페인에서 분명히 드러나지 않을 경우 이런 상태에서의 참여는 공허할 따름입니다.
오늘 뉴스를 보니 'Gold Circle' 이야기로 유명세를 탄 Simon Sinek에 대한 기사가 났네요. ("삼성전자가 애플 이기려면…Why로 고객 사로잡아라") 어떤 제품을 좋아하는 것과 그 제품을 사랑하고 계속 빠지게 된다는 것의 차이를 설명하고, '소비자가 제품만을 평가하고 그 제품의 존재 이유를 모른다면 브랜드와 사랑에 빠질 수는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는데요, 이 글에서 말하고 있는 '가치'의 중요성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제가 이 글에서 말씀드린 캠페인 기획 단계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끊임없는 질문과 사고, (주어진) 목적의 재해석을 통한 캠페인 가치의 재정립과 공감대 형성이 가장 핵심임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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