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ribbles2015. 5. 2. 12:14

오늘(2015년 5월 2일)자 중앙일보에 "알맹이 빼고 가십만 남기는 '페북·트위터 깔때기'"(심서현 기자)라는 제목의 기사가 났습니다.

 

기사는 오바마 vs. 롬니, 고승덕 vs. 조희연 등의 선거 사례에서 중요한 논쟁의 본질 대신 트위터에서 제기된 말초적 소재에 대중이 얼마나 영향을 받았는지 살펴보고 소셜미디어의 역할에 대해 한탄합니다.

 

 

사진 출처: 중앙일보 "알맹이 빼고 가십만 남기는 '페북·트위터 깔때기'"

 

 

기자는 논지를 뒷받침하기 위해 국제 온라인저널리즘 세미나(ISOJ)에서 발표된 "금메달, 블랙 트위터, 안 좋은 머리 모양 : 개비 더글러스 논쟁 만들기"라는 논문을이 인용했습니다. 캐슬린 매클로이 미 오클라호마 주립대 교수가 쓴 논문은 美 ISOJ에서 최고논문상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 기사는 (싸잡아 비판하고 있는 페이스북과) 트위터의 작동 원리를 왜곡, 보도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위 논문을 기자의 논지를 뒷받침하는데 잘못 인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첫째, 트위터에 오르는 대부분의 가십과 선동적인 여론이 대중 매체의 역할 가담 없이 확대재생산되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소셜 미디어가 중요한 논쟁에 대해 본질 외 가십성 주제들도 다루는 것은 분명 맞습니다. 그러나 대중으로 하여금 가십성 주제에만 관심을 갖게 하고 본질을 외면하게 하는 것이 과연 기자가 주장하듯 소셜 미디어 때문일까요? 

 

오히려 가십성 주제를 확대재생산하는 것은 기존 언론입니다. 기사에 등장한 사례들 역시 이를 뒷받침합니다. 출처 불분명한 트윗을 대중에 회자시킨 것은 '전문 매체', '허핑턴포스트' 등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트위터, 페이스북 등의 소셜미디어는 기본적으로 개인의 의견을 표출하는 공간입니다. 소셜미디어의 독자들도 이를 알고 있습니다. 주요 쟁점에서의 핵심 논점을 짚어주는 것은 아직까지는 소셜미디어가 아닌 '의제설정 기능을 갖추고 이를 독자들에 제시하는 전통 매체'의 역할입니다. 즉, 소셜미디어에서의 다양한 목소리 중 가십만 남기고 논점을 축소해 온 것은 기존 언론입니다. (이는 어쩌면 핵심 논점은 다루기도 어렵고 인기도 없는 반면, 가십은 알아듣기도 쉽고 구독율 제고에도 효과적이기 때문은 아닐까요?)

 

둘째, 기사에서 인용된 캐슬린 매클로이 교수의 논문("Gold medals, black Twitter, and not-so-good hair: Framing the Gabby Douglas controversy") -- 블로그PDF 버전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 은 기자가 소개한 것처럼 “트위터가 올림픽의 새 역사를 머리 모양 논쟁으로 변질시켰다"거나 “뉴스를 왜곡”했다고 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논문의 초점은 주요 매체들(mainstream media)이 트위터 내의 의견들을 어떻게 읽고 (잘못) 소개했으며, 이로 인해 여론이 어떻게 변질되었는지를 다루는 내용입니다.(즉, '깔때기로서의 소셜미디어'가 아니라, '잘못된 확성기'로서의 대중매체에 대한 논문인 셈입니다.)

 

언젠가는 대중들이 대중매체(특히 신문 등 인쇄매체)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소셜 공간에 흐르는 정보들만으로 여론을 짐작하고 자신의 의견을 정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특히 소셜 콘텐트의 분석 기법이 지금보다 더 발달하고, 버즈피드와 같은 디지털 매체들이 이런 분석을 기반으로 더욱 파워풀한 기사를 만들어냄으로써 기존 유력 매체의 (인사이트 기반) 영향력을 능가하게 된다면, 그 때는 소셜미디어가 가십성 기사만을 남긴다는 이런 기사가 타당성을 얻을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침에 신문 기사를 읽다가 덕분에 논문까지 찾아서 읽어보게 됐네요. 생산적인 토요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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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ca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