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oughts2011. 7. 17. 04:05

스토리텔링 마케팅: 상품 특성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관심을 가지고 반응하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풀어나가는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기법
출처: 곽진민, 이은미 (2009. 11), "브랜드에 생명을 불어넣는 스토리텔링 마케팅," KT경제경영연구소

 
 
사실 스토리텔링 마케팅은 알고 보면 매우 간단한 원리를 갖고 있습니다. 알리고자 하는 대상을 맹목적으로 알리려 하지 말고, 상대방이 반응할만한 이야기를 끼워넣어 알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술자리에서 하는 대화와 다를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다 해도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와 전혀 상관없이 불쑥 꺼내선 안되죠. 맥락(컨텍스트)과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어도 다른 친구의 말을 잘라먹으면서 난데없이 꺼냈다가는 썰렁하다는 핀잔과 함께 벌주를 마시게 마련입니다. 
 
맥락과 타이밍은 그렇다쳐도, 어쨌든 스토리텔링 마케팅을 하려면 '이야깃거리'가 있어야 합니다. 마케터들은 이 '이야깃거리'를 찾기 위해 골몰합니다. 회사의 창업 비사에서부터 브랜드명에 얽힌 이야기, 회사 구성원이 가진 에피소드 등에서 그럴듯한 이야깃거리를 찾거나 혹은 만들어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곤 하죠.
 
대부분 그렇듯이 이야깃거리는 사람들 안에 있습니다. 최근 봇물처럼 쏟아지는 다양한 서바이벌 프로그램들 - 슈스케, 위대한 탄생, 그리고 나가수 까지도 - 은 출연자의 재능을 내세우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그들의 이야기를 파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훈남형의 존박이나 뮤지션스러운 장재인이 아닌 허각을 우승자로 만들었고, 데이비드오가 아닌 (김태원과) 백청강에 더 큰 박수를 보냈으며, 임재범의 노래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물론 이들은 모두 그에 걸맞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할 수 있지만, 이들을 영웅으로 만든 것은 엄밀히 말해 그들의 실력이 아닌 '이야기'였습니다. (물론, 이를 간파한 기획자들의 작전도 간과할 수는 없겠지만요.) 
 
이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만일 '이야기'를 쏙 빼고 실력으로만 출연자를 평가한다면 아마 프로그램들은 서로 무척 비슷해질 겁니다. 굉장히 세련되고 진지한 전국노래자랑이 돼버릴 수도 있겠네요. 어쩌면 최고의 가창력을 가진 가수를 뽑게 될지는 몰라도 마케팅 측면에서는 빵점을 면하기 어려울 겁니다.
 
 
오늘 대구 육상 선수권대회에 대한 신문기사를 하나 읽었습니다. 솔직히 저도 거의 관심이 없던 행사인지라 그냥 지나칠 수도 있었을텐데, '여신급 '허들 공주' 깁스한채 한판붙자..' 라는 제목에 낚여 클릭을 했습니다. 우리나라 여자 허틀 100m 대표인 정혜림 선수에 대한 기사더군요. 미안하지만 저는 그녀가 ‘허들 공주’라는 별명을 갖고 있는줄도, 한국 육상의 얼짱 선수로 불리는 줄도 몰랐습니다. 기사를 읽어내려가다 제 눈길을 멈추게 한 부분은 (그녀의 사진이 아니라) 기사 말미에 있던 그녀의 말이었습니다.
 
  

“대구 대회는 그냥 대회가 아니라 선진국만 개최하던 축제다. 우리가 그걸 개최하는 것이다. 잘 모르는 것 같아서 안타깝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육상이 이런 매력이 있구나’라고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좋겠다. (중략)
선수들 한 명 한 명을 눈여겨 봐주시면 그 선수 경기를 한층 더 재밌게 보실 수 있다. 선수들은 국민의 응원으로 성장해간다. 많은 애정의 눈길을 부탁드린다.”

 
 
이쯤이면 제가 이번에 하고 싶은 이야기에 대해 눈치를 채셨을 겁니다. 바로 대구 대회의 마케팅에 대한 것입니다. 

 

 

 
 대구 대회 마스코트가 삽살개를 모티브로 한 '살비(SARBI)'라는 것, 알고 계셨나요? (전 몰랐습니다. -.-) 

 

  
굳이 정혜림 선수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우리가 대구 대회에 대해 언론들로부터 듣는 메시지들은 대동소이합니다. 세계 4대 국제 경기의 하나이다, 그랜드슬램, 국민의 관심이 너무 낮다, 표도 안팔렸다, 선수들의 실력이 아직 뒤떨어져 안방에서 들러리 서게 생겼다... 요약하면 간단합니다. "이렇게 대단한 대회를 유치했는데 국민들은 잘 몰라주고 관심도 없다. 선수들의 메달 획득 가능성은 낮아도 전세계의 축제이니 와서 보고 즐겨라." 
이거, 88 서울올림픽 때 지겹게 듣던 이야기의 반복입니다.
   
 
조직위의 활동 역시 위의 기조와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합니다. 대회 관련 이미지를 찾기 위해 구글 검색을 해봤더니 조직위 홈페이지는 검색결과에 나오지도 않더군요. (주: 홈페이지는 나중에 별도로 찾았는데 여기입니다.)  대신 페이스북 페이지가 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홈페이지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들어가봤는데, '전통적인 홈페이지 운영'과 크게 다르지 않은 분위기더군요. 
 

 
 

이 페이지를 준비하신 분들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솔직히 저는 '대회 개요-개최 효과-개최 이념-목표...' 등으로 이어지는 구성을 보면서 육상연맹이 만든 파워포인트 자료를 보고 있는줄 알았습니다. 눈에는 예쁘게 보이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을지는 몰라도, 이곳에서 내뿜는 메시지는 비슷했습니다. "이렇게 대단한 대회를 유치했는데 여러분이 잘 모르시니, 이게 얼마나 대단한 이벤트인지 잘 읽어보시고, 영광인줄 알고 와서 구경들 하시라!" 
 
 
 
비록 지금은 사람들의 관심이 미미하지만 대회가 더 가까워지면 모든 신문과 방송이 열심히 나팔을 불 것이고, 이를 모든 인터넷 언론들이 받아쓰면서 8월이면 거의 모든 대한민국 국민이 대구 대회에 대해 알게 될 겁니다. 하지만 대회가 끝나면 우리나라 육상은 다시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갈겁니다. 관심 없는 비인기 종목으로. 그리고 학생들로 채워졌던 경기장은 애물단지로.
 
대구 대회든 평창 올림픽이든 이제는 이런 이벤트를 알리는 방법이 좀 세련되게 변해야 합니다. 페이스북이든 TV 광고든 뭐든 일단 대회를 널리 알려 일단 사람을 모으고 보자는 인식으로부터 벗어나, 사람들이 꾸준히 관심을 가질 여건을 만드는 것이 마케터와 홍보 담당자들이 할 일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위에서 정혜림 선수가 말한 것처럼 선수들 한 명 한 명을 눈여겨 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번 대회가 얼마나 국가적으로 중요한지 주입시키거나 종목별 관람법을 교육시키는 것은 전형적인 88년식 애국 마케팅입니다. 동시에 '나는 담당자로서 할 일을 했다'는 면피용 마케팅이기도 하죠. 대구 대회나 평창 대회의 마케팅은 변화된 사람들의 입맛에 맞춰야 합니다. 출전한 선수들이 갖고 있는 이야기를 최대한 알리고 활용해서 소비자로 하여금 선수 개인에게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정답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메달이나 승패와 관련 없이 그 선수의 경기를 관심을 갖고 재미있게, 집중해서 볼 수 있게 되니까요. (전국노래자랑과 슈스케와 나는가수다를 볼 때 서로 다른 시청 패턴을 생각해 보세요.) 
  
출전한 선수들이 갖고 있는 이야기를 활용한다는 것은 메달을 따고 난 다음에 그 선수의 성장사를 짚어주고, 고향에서 TV로 시청 중인 마을 사람들의 잔치 모습을 보여주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입니다. 우리가 활용해야 하는 이야기는 '승자의 삶을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출전자가 밟아가고 있는 과정'에 대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차이입니다. 금메달리스트와 챔피언의 삶을 보여줄 떄에는 '이렇게 하면 역경을 딛고 성공할 수 있다'는 교훈이 전달됩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에는 울컥 감동이 밀려오지만,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챔피언은 챔피언이고 소비자는 (챔피언이 아닌) '일반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위인전을 읽는 것과 같은 효과입니다. 몰입은 강하지만 매우 순간적입니다.
 
하지만 도전하고 있는 출전자의 삶을 보여준다는 것은 소비자가 출전자의 이야기에 빠져들고, 출전자와 함께 도전하고 있는 듯한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위인전이 아니라 위인의 성장을 옆에서 지켜보는 느낌이라고 할 수 있겠죠. 몰입은 덜 강력할지 몰라도 장기적이고 충성도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평창도 마찬가지지만 대구 대회의 마케팅은 이같이 출전자 개인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소비자의 장기적인 감정이입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선수들이 어떤 꿈을 갖고 있고, 어떤 노력을 해왔으며, 이들이 지금 서 있는 대구의 스타트라인은 이들이 꿈을 이루는 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풀어줌으로써 시청자로 하여금 (자신이 응원하는) 선수가 스타트라인에서 느낄 긴장과 흥분을 공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비록 메달을 따지 못해도 최고의 선수들과 겨루었다는 자체만으로 대단하다는 환희를 함께 느끼며, 대리 만족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것, 이렇게 '영웅의 이야기'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이런 '스토리텔링 마케팅'이 필요합니다.  
  
꼭 메달을 따야만 성공인가요? 육상이나 동계 스포츠 같은 비인기 종목에서는 '응원하고 싶은 마이너'가 특히 많을 겁니다. 영화 '국가대표'와 '우생순', '쿨 러닝'에서 배웠듯, 김태원, 임재범, 허각, 백청강, 이태권을 볼 때 느끼는 것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제 그들의 메달 색깔이 아니라 그들의 도전과 삶과 이야기에 열광할 준비가 충분히 되어 있습니다.  

 
 

사족.
'그랜드슬램'이니 '세계 4대 스포츠 이벤트'니 하는 말들은 제발 좀 그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말들을 계속 쓰는 것 자체가 사실은 '우리나라같은 변방에서 이런 대형 이벤트를 주최하게 된 것은 대단한 쾌거'라는 88년스런 자조적인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니까요. 그리고 이런 이벤트 개최의 성공 여부를 관중 동원, 국가별 메달 수로 따지는 촌극도 그만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개인들이 조금씩 이루어가는 꿈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고 감동적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으니까요.

Posted by eca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