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에 한 편 씩 올리겠다는 다짐이 무색하게 한 달이나 건너뛰었네요. 이번 편은 책의 임파워먼트에 관한 내용입니다. '책'이라고 쓰긴 했지만 사실은 책을 필두로 한 인쇄매체와 사람들의 읽는 습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분량이 길어 두 번에 나누어 올립니다. ('읽는 행위의 지평을 넓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는 2편에 나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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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책'이라는 매체가 Empowerment라는 개념과 결합될 경우 어떤 변화와 기회가 만들어지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자연히 종이책과 eBook에 대해 이야기하게 될텐데, 그 전에 잠깐 책이라는 매체의 역사에 대해 알아볼까요?

 

책(冊)은 본디 대나무 조각을 엮은 모습을 상형화한 것입니다. 종이가 없던 시절, 대나무의 마디를 잘라내고 마디 사이를 세로로 쪼개 불을 쬐어 기름을 빼고 껍질을 벗겨낸 뒤 그 위에 글자를 적었습니다. 위아래는 20~25cm정도의 길이지만 폭이 고작 몇 cm에 불과했기 때문에 한 줄 씩 글자를 쓸 수 있었습니다. 이를 '죽간(竹簡)'이라고 일컬었는데 몇 장의 죽간을 가죽이나 비단 끈으로 엮은 것을 표현한 것이 '죽책(竹冊)' 또는 '책(冊)'이라는 한자가 되었습니다. 중국의 고전이 간결하고 함축적으로 쓰여진 데는 한자가 뜻글자라는 점 외에도 죽간이라는 기록 매체의 특성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하죠. (임형석, '중국 간독시대, 물질과 사상이 만나다')

 


 

진시황이 분서갱유로 태운 책들 역시 종이책이 아니라 죽간들입니다. 중국에서 책이 죽간이 아닌 종이에 기록되기 시작한 것은 서기 105년 채륜이 종이를 만들었을 때 부터입니다. (이집트의 파피루스는 기원전 2세기까지도 거슬러 올라갑니다만.) 우리나라에서 종이책이 자리를 잡은지 천 년이 흐른 뒤에도 죽간은 종이와 달리 특별한 권위를 가진 것으로 인식되었나 봅니다. 조선시대에 와서도 왕세손이나 왕세자비를 정할 때 책봉문을 죽간에 새겨 내렸다는 걸 보면 말이죠.

 

그러니 어쩌면 옛날에 종이책을 처음 접한 사람들은 "어찌 글자를 종이 따위에 써서 보관한다는 말인가!" "성현의 말씀을 보존하기에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책은 역시 대나무를 넘겨가며 읽는 것이 제맛이거늘.." 하며 탄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전에도 그랬듯 eBook이 등장한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은 '책'이라는 기존 매체가 주는 향수가 사라지는 것을 아쉬워합니다. 책장을 넘기는 '아날로그적인' 느낌부터 종이를 접어 북마크를 해두는 느낌, 책을 읽어감에 따라 자라는 고운 손때와 책장에 꽂아두었을 때 느껴지는 뿌듯함(?), 넓은 서점을 돌아다니다 좋은 책을 우연히 발견하는 느낌, 그리고 책을 매개로 만들어지는 갖가지 인연과 사연까지, 책이라는 매체에 얽힌 사람들의 애착과 느낌은 다양합니다. 아무리 좋은 eBook이 나와도 종이책이 주는 인간적인 느낌까지 전달할 수는 없을거라고 사람들은 이야기합니다. eBook이 아무리 책장을 넘기는 이미지를 구현하고 밑줄을 치고 메모를 할 수 있게 해도 종이가 주는 느낌은 절대 재현할 수 없다고 말이죠. 


책 시장의 규모는 제한되어 있으니 eBook이라는 새로운 종류의 책이 대중화 될수록 종이책의 시장은 어느 정도 축소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eBook이 책 읽는 문화를 바꿔버릴까 아쉬워하겠죠.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종이신문의 시장이 쪼그라든 것처럼 종이책 역시 비슷한 길을 걸을까 걱정할 겁니다. 하지만 (종이책이 아닌) 책 시장 자체가 eBook 때문에 축소될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책을 비롯한 인쇄 매체의 시장은 그 형태가 디지털로 옮겨갈 뿐 '읽을거리의 시장' 자체는 eBook이 아니라 그 어떤 것이 나와도 영향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인쇄 매체의 시장을 축소시키는 것은 eBook이 아니라 사람들의 생활 습관이죠. eBook을 비롯, 스마트폰, 인터넷, 각종 디지털 기기는 기껏해야 시장 축소의 속도를 빠르게 하는 촉매 정도의 역할을 할 뿐입니다. 


종이책과 종이신문 시장은 (적어도 우리나라와 미국에서는) 예전부터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종이신문이야 말할 것도 없고 종이책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출판 시장은 도리어 커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우리 눈에 수치로 나타나는 국내 출판 시장의 상당 부분은 참고서와 잡지, 그리고 얼마 되지 않는 베스트셀러가 차지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게다가 베스트셀러의 다양성은 해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지요. 예컨대 베스트셀러로 뽑히는 책의 장르 다양성이 줄고 있다는 점 - 말하자면 '성공학' 분야의 도서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는 점, 소수의 베스트셀러가 전체 출판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 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같은 추세가 나타내는 현실은, 우리는 이제 '진지한' 읽을거리를 찾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당장의 필요를 위한 참고서, 성공서를 읽고, 어떤 책이 좋을지를 고민하기보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베스트셀러를 찾으며, 스포츠 신문, 인터넷, 텔레비전 등 피로하지 않게 소비할만한 읽을거리와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 깊이 생각할 필요가 없는 볼거리를 찾습니다. 뭔가가 궁금할 때 사람들은 과거의 배움과 지식에서 답을 구하기보다 검색창에 질문을 쳐넣습니다. (그리고 이런 방식으로 찾아낸 즉각적이고 표면적인 지식을 내 것으로 소화하려 하기보다 '모르면 또 검색하지' 라고 생각하며 흘려버립니다.) 

 

이 같은 추세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책 읽지 않는 문화, 배우지 않는 문화,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는 문화, 읽지 않아도 큰 지장 없는 문화가 생겨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은 책에서 얻는 지식이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고 구닥다리 옛이야기처럼 치부되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존경받지 않는 (존경받는 어른들이 드물기도 하지만) 시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이는 자연스레 잘 숙성된 글로 표현되는 지식과 콘텐츠를 찾는 사람을 줄어들게 합니다. 니즈가 줄어들면 자연히 양질의 콘텐츠도 줄어들 수 밖에 없죠. 이는 결과적으로 교육의 질을 떨어뜨림으로써 또다시 글과 지식의 질을 낮추는 악순환을 낳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쇄매체 시장에서 종이책과 신문이 처한 위기의 본질입니다. 디지털, 모바일, 인터넷은 이같은 현상을 보여줌과 동시에 가속화 할 뿐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문제는 사실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더 크게 나타나는 문제라는 점입니다. 일본이나 중국은 잘 모르겠지만 서유럽의 경우 위에서 말한 악순환은 미국만큼 발현되지 않는 듯 합니다. 섣부른 일반화일 수 있지만, 유럽만 해도 신문을 열심히 읽는 문화가 아직 남아있는 편입니다. 독자들은 신문을 통해 사회적인 이슈를 파악하고 지식을 습득하여 이를 스스로의 삶에 사용하는, 즉 '진지한 읽기를 통해 꾸준히 정보를 소화하는 프로세스'가 남아있습니다. 

 

이는 유럽의 디지털 환경이 뒤쳐졌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의 '읽는 습관'과 '활자의 권위'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유럽에서도 황색 언론이 발흥했지만 신문사와 신문기자는 신문의 권위와 신문 읽는 문화의 진지함, 매체의 신뢰를 지키고자 노력하고, 신문사는 권력과 거대 자본으로부터 소유를 독립시킴으로써 중립을 지키고자 노력합니다. 그리고 사회는 기자들(을 포함한 노동자들)의 고용을 안정시키는 시스템을 제공함으로써 이 같은 선순환 구조를 지원하지요. 덕분에 기자들은 말초적 기사로 독자들을 현혹할 필요가 적어지고, 안심하고 자신의 전문성을 높이는 데 노력할 수 있으며 더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데 주력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신문을 '소식지'로서만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정보와 지식, 시각의 보급처로 여기게 되고, 신문은 중요한 사회적 교육 수단으로 기능하게 됩니다. 

 

이야기가 잠시 옆으로 샜는데 본론으로 다시 돌아오자면, 우리나라와 미국에서 나타나는 인쇄 매체의 위기는 eBook이나 디지털 기기 같은 기계적 요인이 아니라, 사람들의 읽는 습관, 인쇄 매체가 사회 교육에서 맡고 있는 역할, 그리고 제대로 된 언론의 부재와 같은 사회적 요인에 더 크게 기인합니다. 디지털 기기는 사회적인 흐름을 가속화할 뿐입니다. 사람들이 가벼운 읽을거리를 찾는다면 디지털 기기와 콘텐츠는 가벼운 읽을거리를 더 쉽게 접하게 해줄 것이고, 사람들이 진지한 읽을거리를 찾는다면 eBook과 태블릿 등은 진지한 콘텐츠를 쏟아낼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애플이 최근 소개한 iBooks Author 프로그램디지털 교과서 사업은 재미있는 함의를 갖습니다. 이 두 가지 이니셔티브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키워드는 두말할 것도 없이 '임파워먼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파편화되어 있던 개인 저자들(author)을 임파워하는 것이 iBooks Author라면 디지털 교과서는 교사와 학생을 임파워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하지만 여기에 추가해야 할 중요 수혜자는 바로 일반 독자, 즉 일반 대중입니다. 바로 모든 사람의 저자화(著者化)와 디지털 교육 콘텐츠의 대중화를 통해서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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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ecarus

임파워먼트의 네번째 주제는 디바이스, 그 중에서도 스마트폰입니다. 사용자에게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임파워먼트'의 대상은 인터넷 서비스와 같은 소프트웨어에만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스마트폰 같은 하드웨어의 기획과 설계, 디자인은 물론, 디바이스의 활용하는 방법과 디바이스를 바라보는 관점에 있어서도 '임파워먼트'라는 개념을 통하여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의 제목은 (스마트폰의) "enabling 'by' empowerment"라고 했습니다. 영어를 쓰고 싶어서가 아니라, 마땅한 우리말을 찾을 수가 없더군요. 짧은 우리말 실력이지만, "enabling 'by' empowerment"를  굳이 번역해 보자면 '소비자에게 기회와 권한을 줌으로써 그들의 능력을 향상시킨다'는 의미입니다. 스마트폰을 사용함에 있어서도 사용자에게 더 많은 권한을 줄 때 스마트폰의 역할과 함의가 확장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스마트폰이든 피처폰이든 '전화기(폰)'의 일차 목적은 '연결'입니다. (그 외의 목적으로 전화기를 들고 다닌다면 그건 휴대용 컴퓨터이거나 PDA이거나 내비게이션이라고 보는게 맞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연결’은 대화 상대방과의 연결 뿐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의 연결, 정보와의 연결 등 다양한 모습을 갖지만, 결국은 ‘끊어지지 않고 연결되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어로 하면 'stay connected' 정도가 되겠네요.


사람들 사이를 '연결'하는 것은 전화 통화와 메시징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통화는 KT/SKT 같은 통신 서비스를 통하는 것 외에도 다양한 VoIP 서비스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일단 '통화'에 대해서는 미루어두고 지금은  메시징을 통한 연결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SMS는 휴대전화의 가장 오래된 기능 중 하나입니다. 통신사를 막론하고 누구에게나 문자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켰죠. (예를 들어 하루에 수백통의 문자를 주고받는 중고생들을 생각해 보세요.) 스마트폰이 등장한 후 카카오톡 (이하 '카톡') 같은 SMS 앱이 등장했을 때 사실 저는 그 성공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습니다. 문자 메시지는 이미 범용적으로 제공되는 서비스라는 점, 앱을 별도로 내려받아 앱을 쓰는 사람들끼리만 메시징이 가능하다는 점, 그리고 광고 외의 수익화 방안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장점이라고는 다른 나라에 사는 사용자들끼리 자유롭게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다는 점 정도..? 제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죠. ^^; 
카톡의 성공의 근간을 살펴보면 'Enabling by Empowerment' 개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전히, 카톡의 성공은 어떤 사람에게는 기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카톡의 성공을 들여다볼 때에는 카톡 이전에 이미 국내외 여러 메시징 서비스가 있었으나 그 어느 것도 카톡만큼 성공하지 못했음과, 카톡이 기존 문자 메시지 서비스, 메신저 서비스와 차별화된 효용성을 제공했음에 먼저 주목해야 합니다. 


카톡 이전에 이미 WhatsApp 이라는 어플리케이션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있고요.) 기능은 초기의 카톡과 동일했으며, 유료(그래봤자 2불 미만)라는 점이 약점이긴 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이 어플리케이션의 가치는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기 비싼 환경에 있는 사람들 간에 자유로운 문자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했다는 점이었죠. 건당 수 백 원의 비싼 요금을 물지 않고도 전세계 어느 곳에 있는 지인과도 자유롭게 문자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WhatsApp의 인터페이스는 카톡과 거의 유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WhatsApp은 우리나라에서는 카톡이 되지 못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카톡과 달리 유료 어플리케이션이었다는 점과 (초기에는) 그룹 채팅을 지원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고 생각됩니다. 특히 그룹 채팅은 카톡을 단순한 문자 메시지 어플리케이션을 넘어 채팅 혹은 메신저 어플리케이션으로 자리잡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국내 소비자들이 익숙해하고 좋아하는 기능을 잘 잡아낸 카톡의 주요 차별점이었다고 평가되죠. 사용자들로 하여금 더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 환경을 제공한 셈입니다. 카톡이 그룹 채팅 기능이 우리나라 사용자들에게 중요하게 평가된다는 시장 조사를 미리 했었는지 안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카톡은 그룹 채팅을 비롯한 몇몇 새로운 기능을 출시했고 이걸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는 사용자들에게 맡겼습니다.


만일, 그룹 채팅을 포함한 채팅 혹은 메신저 기능이 카톡의 주요 성공 요인이었다고만 평가할 경우 기존의 메신저 프로그램들은 왜 카톡 같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네이트온, MSN 메신저 등 내로라하는 메신저 서비스들 역시 스마트폰용 어플리케이션을 내놓았는데, 인터넷에서 구축된 사람들끼리의 네트워크를 모바일 환경에서도 접근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이는 일견 올바른 접근인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서비스들은 각각 자기 서비스 사용자들끼리만 이야기할 수 있게 했다는 치명적인 결점이 있었는데, 이는 휴대전화의 사용환경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고 데스크탑 사용 환경을 그대로 휴대전화에 적용함으로써 저지른 실수였습니다.


휴대전화 사용자들은 각각 인터넷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강력하고 Relevant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습니다. 바로 ‘전화번호부’입니다. 기존 메신저 프로그램의 사용자들은 컴퓨터가 켜져 있을 때에 키보드를 이용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대상일 뿐, 사람들이 갖고 있는 '가장 자연스럽고 훨씬 가까운' 네트워크는 전화기의 전화번호부 안에 저장되어 있는 지인들이고, 메신저의 친구 목록은 이와 절대 경쟁할 수 없음을 간과한 것이죠. 전화번호부에 기반한 카톡이나 WhatsApp과 달리 메신저들은 MSN 사용자들끼리, 네이트 사용자들끼리만 쓸 수 있는 폐쇄형 메신저를 고집하다가 결국 경쟁에서 밀려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카톡(을 비롯한 모바일 메시징 서비스들)의 성공 요인은 ‘기존의 전화번호부와 연동’하여, ‘무료’로, 일대일 혹은 단체 ‘채팅’을 가능하게 한 것이라고 요약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는 사실 스마트폰 사용자들로 하여금 기존 문자 메시지보다 좀 더 ‘자유로운’ 메시지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한 것 이상 아무것도 아닙니다 – 즉 ‘Enabling by Empowerment’의 사례가 되는 것이죠.


전화기의 ‘연결’이라는 특성에 기반한 Enable/Empowerment가 카톡에 의해 일부 구현됐다면, 이후에는 어떤 종류의 ‘연결’이 전화의 새로운 킬러앱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무엇을 ‘연결’함으로써 사람들을 Empower하고 Enable할 수 있을까요? 


(1) 사람들의 '관심사'를 연결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전화기는 기본적으로 ‘사람을 어딘가에 연결되어 있게 유지하는 도구’라는 점을 되새겨야 합니다. 전화를 받고 걸 수 있게 네트워크 내에 유지시키는 것이 일차적 기능이라면, 이 같은 ‘연결 유지 상태’를 활용하는 다양한 방법이 나타날 수도 있을테니까요. 


전화번호부에 있는 나의 지인들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에 등록된 친구들보다 나와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전부 그런건 아니지만 서로에 대한 접근성이 더 뛰어난것 만큼은 분명하죠.) 다시 말해 이들은 나에게 어느 정도는 관심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거나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것 외 ‘다른 용도’로 이 네트워크가 활용될 수도 있는데, 예를 들면 네이버의 지식인 서비스 혹은 Quora, (지금은 사라진) Aardvark 같은 Q&A 서비스를 지인들에 국한된 모바일 Q&A 서비스로 만드는 것도 가능합니다.


보통 사람들의 일상을 떠올려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궁금한 것이 생겼을 때 검색을 하거나 주변의 알만한 지인에게 물어보게 마련입니다. 저녁 회식 장소를 정하기 위해 맛집을 찾거나, 아이가 아프거나, 볼만한 영화를 추천해달라고 할 때 우리는 인터넷을 뒤지거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 전에 주변에 있는 가까운 사람 (주: 여기서의 '가까운 사람'은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금방 연락하기 좋은 사람, 즉 심리적 거리가 가까운 사람을 포함합니다) 에게 조언을 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문가가 아니라도 말이죠. 이처럼 일상 속에서 궁금한 점이 생겼다거나 혹은 뭔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을 때 지인들에게 단체 메시지를 보내고 그들의 답을 기다리는 서비스가 구현될 수도 있겠네요. 채택된 답변을 제공한 지인에게는 소정의 보상을 제공하고, 이렇게 쌓여지는 정보는 ‘나’를 위한 유용한 데이터베이스가 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사람들의 지식들이 모인 소중한 자산이 된다. 사람들의 답변은 문자 메시지 같은 일방향적인 것이 될 수도, 혹은 사람들의 답변을 한 자리에 모아 작은 채팅이나 포럼처럼 만들어질 수도 있으며, 맛집, 육아, 영화 등 내가 관심 있어 하는 주제는 지인들의 답변과 맞물려 ‘어떤 사람이 어떤 주제에 관련 있는지’를 자동 분류하는 초석이 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육아에 관한 질문에 답하는 지인들은 자동으로 육아 카테고리에 등록이 되는 식이겠죠.) 


(2) '주변 사람'들을 연결


위에서 상상한 서비스가 ‘지인들’ 간의 네트워크에 기반한 Q&A라면,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그들이 있는 공통의 위치를 기반으로 한 Q&A 서비스를 만드는 것 역시 가능할 것입니다. 익숙치 않은 동네에서 어떤 장소를 찾거나 추천을 부탁할 때, 같은 지역에 있는 사람들, 혹은 그 지역을 잘 안다고 등록해 둔 사람들에게 한꺼번에 메시지를 보내 질문할 수 있겠죠. 이렇게 모아진 답변은 점진적으로 해당 지역에 대한 데이터베이스가 될 것이며, 지역 기반 소셜 네트워킹 (예: 모르는 사람들끼리라도 ‘지역’이라는 공통분모를 바탕으로 어울리도록 하는) 은 물론, 해당 지역의 새로운 (지식 기반) 커뮤니티를 구축하는 토대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위에서 예를 든 두 가지의 서비스가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닌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조사 없이 그냥 즉석에서 만들어낸 사례들입니다.)  하지만 어떤 형태가 됐든 제가 강조하고자 하는 바는 모바일 서비스든 모바일 디바이스든 '사용자에게 권한과 자유를 부여함으로써 새로운 기회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관심을 연결함으로써 사용자들에게 새로운 네트워크를 제공하고 이로 인해 사람들의 능력을 배가시키는 것, 혹은 주변에 위치한 사람들을 연결함으로써 즉각적인 지역 정보를 얻어내고 이로 인해 사람들의 능력을 늘리는 것. 이런 종류의 'Enabling by Empowerment'가 많은 것을 변화시킬 것이라는 점입니다.

통화 역시 마찬가지겠죠. 음성통화든 영상통화든 지금은 모두 어쩌면 '통화는 일대일 통화'라는 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통화'라는 행위의 어떤 점을 다시 들여다볼 때 '사람들에게 권한을 제공하고, 자유도를 높여 새로운 기회가 창출'될 수 있을까요? 그룹 통화(컨퍼런스 콜) 외 어떤 것을 새로운 가치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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